* 천재 악동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 「씬시티」 원작 출간!
미키 루크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제시카 알바의 매혹적인 몸짓, 브루스 윌리스의 고독한 눈빛을 잊지 못하는 영화 「씬시티」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바로 영화의 원작이자 미국 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씬시티』가 출간된 것이다.
사실 평단의 극찬과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영화 「씬시티」는 한국에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IMDB 회원들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화 순위에서 액션 무비의 전설 「터미네이터」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 작품이지만, 단순히 ‘씬시티’가 아닌 ‘프랭크 밀러의 씬시티’를 알지 못하는 한국 팬들에게는 그저 화려한 캐스팅과 뛰어난 시각 효과를 보여 준 영화로밖에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씬시티」는 그저 스타일이 뛰어난 액션 느와르 무비로 평가되기에 아까운 작품이다. 한 영화 잡지에 실린 것처럼 로드리게즈의 「씬시티」가 “영화의 미래를 보여 준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밑바탕에 프랭크 밀러의 카리스마 넘치는 작품 세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미국 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프랭크 밀러
1980년대로 접어든 미국 만화계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으로 대표되는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 붐이 점차 맥락을 잃어가고 슈퍼맨, 배트맨 등 미국 만화의 중심이었던 슈퍼 영웅들마저 생명력을 잃어가면서 소위 코믹스라 불리는 미국의 전통적인 만화 출판은 점차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한 것은 작가 정신으로 무장한 그래픽 노블(Graphic Noble)의 출현이었다. 최초의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윌 아이스너의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1978년), 만화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Maus)』(1986년 단행본 1권 출간) 등은 바로 이 시기, 만화에 새로운 미학을 불어넣고 정치, 사회, 철학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킨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올려놨을지언정 슈퍼 영웅으로 대변되는 미국 만화의 전통을 이어 가지는 못했다.
50대에 접어든 노쇠한 영웅 배트맨이 지친 몸을 끌고 다시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1986년에 발표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는 알란 무어의 『와치맨(Watchman)』과 함께 기존 슈퍼 영웅 만화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정신적인 혼란과 광기마저 보이는 배트맨과 부패한 정부의 앞잡이로 전락한 슈퍼맨, 이미 전작 『데어데블(Daredevil)』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프랭크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레이건 정부와 매스컴을 포함한 정치적인 문제를 건드림과 동시에 슈퍼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과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5년 뒤인 1991년, 미국 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90년대 최고의 화제작 『씬시티』가 출간되기에 이른다.
*『씬시티』, 강렬한 흑백 대비가 이뤄 낸 처절한 폭력의 미학!
2미터짜리 근육으로 이뤄진 순수한 폭력. 미키 루크가 열연한 캐릭터 마브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거리의 싸움꾼이자 실패한 뒷골목 인생을 살아가는 마브에게 어느 날 아름다운 여신이 다가온다. 그녀의 이름은 골디. 추악한 외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와 사랑을 나눈 그녀는 마브가 잠든 사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름밖에 모르는 하룻밤의 사랑을 위해 복수를 다짐하는 마브. 하지만 그녀의 죽음 뒤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가 윤곽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싸움을 시작했는지 깨닫게 된다. 씬시티를 지배하는 로크 가문과 맞서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씬시티』 1권 ‘하드 굿바이’의 주인공 마브는 프랭크 밀러가 구축한 씬시티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마브는 거칠다. 머리도 나쁘고 걸핏하면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다. 그는 ‘선’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에게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고집불통의 사내라는 점뿐이다.
씬시티에는 절대적인 ‘선’과 ‘악’의 개념이 혼재한다. 순수함과 죄악이 항상 함께 공존하는 곳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서 몸부림친다.(제시카 알바가 열연한 순수한 영혼의 소녀 ‘낸시’마저 스트립 댄서로 살아간다.) 그들이 보여 주는 멋진 액션과 모험은 그들이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프랭크 밀러가 그려 낸 강렬한 흑백 대비는 이러한 도시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려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1권의 백미 중 한 장면에 속하는 빗속에서의 마브의 독백 장면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괴물, 씬시티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내가 도망치지 않은 건 영웅이라서가 아니다. 무릎이 떨리고, 토하고 싶다. 웅크려 울고 싶다. 이게 어디가 영웅인가. 그저 술과 개 같은 싸움의 연속일 뿐인 삶이라 해도 죽음보다는 낫다.
아니, 난 영웅이 아니다. 뭐라 해도 그건 변함없다. 그저 골디를 쉽게 잊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어딜 가든 천사의 향기가 따라올 게다. 그 입술과 눈동자, 너무나 완벽한 몸. 목소리와 맛을 느낄 거고, 그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한편 함께 출간된 2권 ‘목숨을 걸 만한 여자’는 영화 「씬시티」에 나온 또 한 명의 주인공 드와이트의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이다. 불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진작가 드와이트에게 그를 배신한 옛 애인이 찾아온다. 다짜고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뒤늦은 사랑 고백을 하는 그녀를 드와이트는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이때 조연으로 등장하는 마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계속 반복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바로 1권과 2권은 씬시티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함께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시점으로는 2권이 조금 앞선다.)
아직 골디를 만나기 전인 우리의 순진한 마브도 드와이트를 도와 모험에 뛰어들게 되고, 결국 백만장자이자 씬시티의 유지인 남편으로부터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드와이트는 해서는 안 될 살인까지 저지르는데...... 과연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한창 제작 중인 영화 「씬시티2」에 포함될 에피소드로 알려진 2권 ‘목숨을 걸 만한 여자’는 1권에 이어 프랭크 밀러의 개성 넘치는 그림과 치밀한 플롯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이다.
* 씬시티 100배 즐기기!
씬시티는 심오한 만화가 아니다. 골치 아픈 철학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교훈적인 내용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오히려 유해한 내용으로 가득 찬 만화 교과서라 할 만하다. 살인과 강간, 분륜, 거기에 식인까지...... 그렇다면 씬시티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부분의 성공한 만화가 그렇듯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고담시가 없었다면 배트맨이 과연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뉴욕이란 도시가 없다면 슈퍼맨은 어디를 날아 다녀야 할까? 배트맨의 또 다른 주인공이 고담시라면 씬시티는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주인공이고 작품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음모와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 부패한 공무원과 타락한 경찰이 득실거리는 곳. 씬시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멋진 저택이나 자동차,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현재의 삶을 자조한다. 폭력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하게 허락된 방식이다. 작가가 1권과 2권의 이야기를 나란히 진행한 이유도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 ‘씬시티’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 외에도 얼마나 많은 거리의 주인공들이 씬시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까.......
굳이 프랭크 밀러의 강렬한 흑백 대비가 아니더라도 씬시티는 어둡다. 씬시티의 주인공들은 아침이 되면 몸을 추스를 곳을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밤을 기다린다. 마브의 독백처럼 어둠이 내리고 씬시티의 주인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다.
“공기가 식으면 거리의 소리가 바뀐다. 양복쟁이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요새로 향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주판을 튕기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못 들은 체한다. 씬시티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애써 생각지 않으려 한다.”
뉴욕보다 폭력적이고 고담시보다 어두운 도시,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 씬시티의 매력이야말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목숨을 건 사투에 생명력을 실어 주는 이 만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2006년 하반기, 『씬시티』 완간!!!
세미콜론은 올해 하반기 안에 『씬시티』 일곱 권을 모두 출간할 계획이다. 좀 더 서둘러 독자들을 찾고 싶지만 만화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을 함부로 출간할 수 없는 탓에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다. 특히 프랭크 밀러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작가로 유명하다. 수많은 할리우드의 제의를 뿌리치고 결국 로드리게즈라는 임자를 만날 때까지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릴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그이기에 이번 한국어판을 낼 출판사를 고르는 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작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미콜론은 한국어판의 레터링 작업을 할 작가를 고르는 데에 엄청난 신중을 기해야 했다. 원서의 그림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미콜론이 선택한 해답은 이미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에서 그 세심한 작업을 인정받은 만화가 김수박이었다. 원화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한글 고유의 맛을 살린 그의 레터링 작업에 눈 높은 프랭크 밀러도 승낙을 하고야 만 것이다.
평소 프랭크 밀러를 좋아하던 만화가 이우일도 흔쾌히 추천사를 써 주었다. 원서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에 따로 책을 보낼 필요도 없이, 그는 한 마디 말로 명쾌하게 『씬시티』를 정의 내렸다. “프랭크 밀러의 씬시티는 빛의 예술이다.”
이러한 찬사의 주인공 프랭크 밀러는 현재 로드리게즈 감독과 함께 「씬시티2」 촬영에 여념이 없다. 이외에도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하는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해를 보낼 전망이다. 그를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지루한 기다림이 되겠지만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그이기에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의 영화가 또 다시 맥락 없는 영상만으로 평가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출간된 『씬시티』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Author
프랭크 밀러,김지선
1957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1977년 골드키 코믹스의 《더 트와이라잇 존》을 통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년 뒤인 1979년, 맹인 슈퍼 영웅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진 『데어데블』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은 그는, DC 코믹스로 자리를 옮겨 일본 시대극과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로닌』을 발표하며 만화가로서 입지를 다져 갔다. 특히 1986년 그가 발표한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슈퍼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킨 80년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1991년 출간된 『씬시티』는 수많은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프랭크 밀러를 미국 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프랭크 밀러의 작품은 알란 무어나 닐 게이먼과 대조적으로 남성적이고 거친 선이 특징이다. 초기에 발표한 『데어데블』에서부터 나타난 이러한 경향은 『로닌』,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등을 거치며 강한 개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씬시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된다. 또한 그는 「로보캅」 2, 3의 각본을 쓰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영화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그의 작품 중 『씬시티』, 『데어데블』, 『엘렉트라』 등은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씬시티』라는 걸작을 낸 이후에도 그는 『배트맨 : 원 이어』, 『300』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57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1977년 골드키 코믹스의 《더 트와이라잇 존》을 통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년 뒤인 1979년, 맹인 슈퍼 영웅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진 『데어데블』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은 그는, DC 코믹스로 자리를 옮겨 일본 시대극과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로닌』을 발표하며 만화가로서 입지를 다져 갔다. 특히 1986년 그가 발표한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슈퍼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킨 80년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1991년 출간된 『씬시티』는 수많은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프랭크 밀러를 미국 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프랭크 밀러의 작품은 알란 무어나 닐 게이먼과 대조적으로 남성적이고 거친 선이 특징이다. 초기에 발표한 『데어데블』에서부터 나타난 이러한 경향은 『로닌』,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등을 거치며 강한 개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씬시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된다. 또한 그는 「로보캅」 2, 3의 각본을 쓰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영화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그의 작품 중 『씬시티』, 『데어데블』, 『엘렉트라』 등은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씬시티』라는 걸작을 낸 이후에도 그는 『배트맨 : 원 이어』, 『300』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