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스튜어트는 가사일을 기업의 차원으로 전환시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이다. 그녀는 MSLO(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를 운영하며 백만장자 기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는 <어프렌티스>의 새로운 버전인 TV쇼에 출연하고, 자신의 저술활동을 시작하는 등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사 스튜어트는 1941년 미국 뉴저지주 너틀리의 폴란드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서 정원 가꾸기까지 살림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배워나갔다. 마사의 아버지는 전문적인 정원 가꾸기 기술을 갖고 있었고 조부모는 요리 및 음식 보관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살림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하여 전문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대학에서 그녀는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그리고 대학 시절 모델로도 활동하여 여러 광고 매체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마사는 앤디 스튜어트와 결혼하였고, 딸 알렉시스를 낳았고 결혼 후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큰 수익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마사의 증권 중개 비즈니스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맞으며 끝나버렸고 1972년, 마사는 남편과 함께 코네티컷에 있는 오래된 농가를 매입하고 이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한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마사는 케이터링(출장연회) 사업을 목표로 잡고 농가를 현대식으로 개조하고, 지하에 꾸민 부엌에서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열정을 갖고 있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사 스튜어트의 음식 솜씨와 환상적인 테이블 세팅은 순식간에 입소문으로 번져나갔고, 곧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이때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1982년 마사는 그녀의 첫 번째 요리책 『엔터테이닝』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 주부들은 열광했고, 마사는 1987년 할인점 K마트의 컨설턴트 겸 대변인으로 발탁되어 그녀는 아줌마 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990년, 마사는 타임워너의 출판사업 부문과 제휴해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출간했고 이후 마사는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와 ‘현모양처의 살림법’을 책과 칼럼 등으로 내놓아 인기가 폭발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다.《마사 스튜어트 리빙》은 많은 독자를 확보했고, 마사 스튜어트의 TV쇼는 여섯 번이나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환상적인 손재주와 미모, 그리고 차분한 말솜씨로 마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마사의 책과 비디오 등은 덩달아 베스트 행진을 이어나간다.
1997년 마사는 가정생활 정보 제공과 관련물품 판매를 위한 출판, TV, 소매, 인터넷 마케팅 등의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MSLO(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99년 MSLO는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시가총액 10억 달러(약 1조2천억 원)의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해버렸고, 마사 자신은 여러 개의 잡지와 TV 프로그램, 웹사이트를 소유한 백만장자 기업가로 거듭나게 된다. 마사 스튜어트는 《포춘》에 의해서 ‘가장 유력한 여성 50인’에 두 번이나 선정됐고, 《타임》은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하는 등 기록 행진은 이어져나간다.
그러나 마사는 2002년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의 주식을 내부자 정보로 매매해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고발되며 위기에 봉착한다. 사실 그 회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주식을 판 것인데(이것으로 번 수익은 고작 4만5,000달러에 불과했다), 문제는 검찰과 판사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내부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한 혐의를 포함하여, 사법방해, 허위진술, 증권사기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에 대한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5개월의 선고를 받음으로써 그녀의 경력에 큰 추락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사퇴하였으며, 2004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복역하고 2005년 3월 6일에 만기출소하였다. 하지만 수감생활을 마친 마사 스튜어트는 오히려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사 스튜어트는 가사일을 기업의 차원으로 전환시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이다. 그녀는 MSLO(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를 운영하며 백만장자 기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는 <어프렌티스>의 새로운 버전인 TV쇼에 출연하고, 자신의 저술활동을 시작하는 등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사 스튜어트는 1941년 미국 뉴저지주 너틀리의 폴란드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서 정원 가꾸기까지 살림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배워나갔다. 마사의 아버지는 전문적인 정원 가꾸기 기술을 갖고 있었고 조부모는 요리 및 음식 보관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살림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하여 전문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대학에서 그녀는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그리고 대학 시절 모델로도 활동하여 여러 광고 매체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마사는 앤디 스튜어트와 결혼하였고, 딸 알렉시스를 낳았고 결혼 후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큰 수익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마사의 증권 중개 비즈니스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맞으며 끝나버렸고 1972년, 마사는 남편과 함께 코네티컷에 있는 오래된 농가를 매입하고 이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한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마사는 케이터링(출장연회) 사업을 목표로 잡고 농가를 현대식으로 개조하고, 지하에 꾸민 부엌에서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열정을 갖고 있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사 스튜어트의 음식 솜씨와 환상적인 테이블 세팅은 순식간에 입소문으로 번져나갔고, 곧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이때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1982년 마사는 그녀의 첫 번째 요리책 『엔터테이닝』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 주부들은 열광했고, 마사는 1987년 할인점 K마트의 컨설턴트 겸 대변인으로 발탁되어 그녀는 아줌마 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990년, 마사는 타임워너의 출판사업 부문과 제휴해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출간했고 이후 마사는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와 ‘현모양처의 살림법’을 책과 칼럼 등으로 내놓아 인기가 폭발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다.《마사 스튜어트 리빙》은 많은 독자를 확보했고, 마사 스튜어트의 TV쇼는 여섯 번이나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환상적인 손재주와 미모, 그리고 차분한 말솜씨로 마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마사의 책과 비디오 등은 덩달아 베스트 행진을 이어나간다.
1997년 마사는 가정생활 정보 제공과 관련물품 판매를 위한 출판, TV, 소매, 인터넷 마케팅 등의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MSLO(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99년 MSLO는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시가총액 10억 달러(약 1조2천억 원)의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해버렸고, 마사 자신은 여러 개의 잡지와 TV 프로그램, 웹사이트를 소유한 백만장자 기업가로 거듭나게 된다. 마사 스튜어트는 《포춘》에 의해서 ‘가장 유력한 여성 50인’에 두 번이나 선정됐고, 《타임》은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하는 등 기록 행진은 이어져나간다.
그러나 마사는 2002년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의 주식을 내부자 정보로 매매해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고발되며 위기에 봉착한다. 사실 그 회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주식을 판 것인데(이것으로 번 수익은 고작 4만5,000달러에 불과했다), 문제는 검찰과 판사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내부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한 혐의를 포함하여, 사법방해, 허위진술, 증권사기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에 대한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5개월의 선고를 받음으로써 그녀의 경력에 큰 추락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사퇴하였으며, 2004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복역하고 2005년 3월 6일에 만기출소하였다. 하지만 수감생활을 마친 마사 스튜어트는 오히려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