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꿈꾸고 기획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세종의 언어에 관한 계획부터 집단지성의 협력 과정에 관하여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야말로 백성을 위한 글자를 원했던 세종대왕과 중생을 교화할 글자를 원했던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의 합작품이라고 한다면 자연스러운 설명일 것이다. 임금, 왕자들, 신하들의 조화로운 협력으로 인류의 값진 유산이 태어난 것이다! 세종대왕의 훌륭한 리더십에 맞추어, 그 어려운 과정을 수행한 집단지성의 헌신과 용기는 오늘날까지, 아니 먼 훗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DNA에 녹아있으리라! 창제 당시 조선의 정신은 협업과 창조로 이어진 시너지적 유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역할을 주고 공로를 돌린다. 과연 대왕의 리더십은 편가르기나 분열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신미를 포함한 집단지성이 실제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그 사실을 비밀로 하였는가? 그것은 숭유억불, 사대주의라는 엄중한 시대에 세종이 훈민정음의 탄생을 지켜나가고, 또한 신미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파스파 문자가 몽골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것과는 달리, 다행히도 훈민정음은 생명을 유지하였고, 결과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발달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더욱 꽃피우고 있다. 세종대왕은 온갖 분야를 총지휘하였고, 수많은 분야에서 문화적 중흥이 이루어졌고, 대마도 정벌 및 4군 6진 개척으로 국토가 확장되었다. 대왕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쓴 용인술이 뛰어났다. 의견의 충돌이 있는 경우,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내었다. 이때 수많은 책자가 보급되었고, 장영실이나 박연 같은 학자도 활동하였고, 결과적으로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런 배후에는 대왕의 확고한 지휘와 지지가 필수적이었으리라. 그리고 책임감 있는 대왕답게 1등 공신 신미에게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 과연 의리의 왕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다행히도 수수께끼의 해답은 곳곳에 남아 있다. 보통의 지능과 상식적인 추리력만 갖고 있다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신미의 역할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후세의 우리는 선인들에게 감사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Contents
I. 서론 ··············································· 10
II. 본론
1. 역사적 사실 ················································ 18
2. 『훈민정음해례본』 및 『언해본』에 나타난 증거 · ················ 44
3. 동일인의 저서에서 보이는 상반된 맞춤법 ····················· 67
4. 동일인의 저서에서 보이는 상이(相異)한 한자 표기법 ··········· 84
5.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범자(梵字) 자모를 참고했다는 증거 ······· 88
6. 아시아의 여러 문자 ······································· 109
7. 세종과 신미의 만남 ········································ 118
8.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와 목적 ······························· 149
9.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 법호 수여 ············ 162
10. 누가 훈민정음으로 기록을 남겼는가? ······················ 183
III. 맺음말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