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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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6/10
Pages/Weight/Size 148*210*20mm
ISBN 9791198716101
Categories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Description
청춘의 고뇌와 방황과 불안한 미래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헤세의 단편들 1 『회오리바람』

헤세의 단편들 1 『회오리바람』에는 총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칠월Heumond」과 「라틴어 학교 학생 Der Lateinschuler」은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가 1907년에 발표한 단편집 『이 세상 Diesseits』에 실린 다섯 편 가운데 두 편이다. 「회오리바람 Der Zyklon」과 「청춘은 아름다워라 Schon ist die Jugend」는 작가가 1916년에 발표한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라』에 처음 실렸다. 앞의 두 작품과 「청춘은 아름다워라」는 작가가 이십 대 후반에 쓴 작품들이며, 생성 시기로 보면 작가가 삼십 대에 쓴 「회오리바람」이 가장 나중에 나온 작품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헤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단편의 주인공들은 「칠월」과 「라틴어 학교 학생」에서는 열여섯 살의 라틴어 학교 학생, 「회오리바람」에서는 열여덟 살의 공장 수습생, 「청춘은 아름다워라」에서는 타지에서 성공하고 금의환향한 이십 대의 청년인데, 헤세 역시 같은 나이에 라틴어 학교를 다녔고, 시계 공장 수습생을 지냈으며 이십 대에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작가가 묘사하는 고향의 풍경은 헤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칼프(Calw)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 단편들은 작가 헤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깔린 기본적인 정서와 철학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들이며, 나아가 누구나 갖고 있을 어린 시절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추억,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 어른이 되어 가며 겪는 유년 시절과의 고통스러운 결별,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새 출발 등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이야기들이다.
Contents
칠월 7
라틴어 학교 학생 65
회오리바람 115
청춘은 아름다워라 139
작품 해설 193
Author
헤르만 헤세,임호일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