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의 운명은 저자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움직인 책은 당대를 뛰어넘어 이후 역사의 시금석이자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이에 이다북스는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숨어 있는 명저를 ‘이다의 이유’로 출간한다. ‘이다의 이유 13’ 『라 보에시의 복종의 기억』은 자유란 무엇인지 진진하게 고민하면서 독재에 복종하는 이유를 밝히고 어떻게 해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지 말한다.
Contents
복종에 순응하는 삶
왜 자유를 의심하는가
신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다
자유를 잃은 순간
우리 곁의 독재자
복종을 부르는 독
독재에 지배당한 이성
그들이 뒤에 숨긴 것
은밀하고 잔혹하게
독재자 곁의 독재자들
그는 사랑하거나 사랑받지 않는다
함께 배우고 행동하라
Author
에티엔느 드 라 보에시,김혜영
1530년 11월 1일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르 지방의 소도시 사를라에서 태어나 보르도 근처 제르미냥에서 1563년 8월 18일에 사망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뒤 삼촌 밑에서 자란 양육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대 문학을 접하며 교육받았고, 16세에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의 여러 작품을 번역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시를 쓸 만큼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특히 1548년경에 시대를 초월해 정치철학 분야의 중요한 문서로 자리잡은 《복종의 기억》(원제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으로 유명해졌는데, 당시 18세에 불과했고 오를레앙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1553년에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연구 중에 얻은 명성 덕분에 1553년 10월 앙리 2세로부터 궁정 서기관직으로 임명받았다. 1554년 5월에는 보르도 고등법원 고문이 되었는데, 원래 이 직위가 임명될 수 있는 연령보다 2년이나 어렸다. 이때 철학자 몽테뉴와 우정을 맺었다. 1560년부터 대법관 미셸 드 리피탈과 함께 종교전쟁 중이었던 구교와 신교의 평화로운 협상이 필요한 자리에 나서서 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쓴 책과 원고들을 몽테뉴에 게 넘겼다.
1530년 11월 1일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르 지방의 소도시 사를라에서 태어나 보르도 근처 제르미냥에서 1563년 8월 18일에 사망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뒤 삼촌 밑에서 자란 양육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대 문학을 접하며 교육받았고, 16세에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의 여러 작품을 번역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시를 쓸 만큼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특히 1548년경에 시대를 초월해 정치철학 분야의 중요한 문서로 자리잡은 《복종의 기억》(원제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으로 유명해졌는데, 당시 18세에 불과했고 오를레앙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1553년에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연구 중에 얻은 명성 덕분에 1553년 10월 앙리 2세로부터 궁정 서기관직으로 임명받았다. 1554년 5월에는 보르도 고등법원 고문이 되었는데, 원래 이 직위가 임명될 수 있는 연령보다 2년이나 어렸다. 이때 철학자 몽테뉴와 우정을 맺었다. 1560년부터 대법관 미셸 드 리피탈과 함께 종교전쟁 중이었던 구교와 신교의 평화로운 협상이 필요한 자리에 나서서 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쓴 책과 원고들을 몽테뉴에 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