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간병인, 가사도우미, 그리고 거리의 사진 작가
우리가 몰랐던 비비안 마이어의 놀랍고 이상한 삶
2007년 미국 시카고에서 현상하지 않은 필름이 가득 든 상자가 하나 발견된다. 창고 사용료를 내지 못한 누군가의 물건이 경매로 나온 것이었는데 필름 속에 담긴 사진들은 심상치 않았다. 1950년대 뉴욕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는 취객들, 해변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남자, 쓰레기통에 담긴 곰 인형, 길거리 웅덩이에 비친 기다란 그림자, 그리고 유리창에 비친 카메라를 든 여자 등등 평범한 사람들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는 데다 프레이밍과 감각이 뛰어난 사진들이었다. 무려 15만 장이나 되는 사진은 그간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 것이었고, 비비언 마이어라는 무명작가의 사진들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자 21세기 대중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도대체 비비언 마이어가 누구야? 이런 사진들이 어째서 뒤늦게 빛을 보게 된 거지? 놀랍게도 사진을 찍은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유모나 간병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 가사 노동자였다. 병적인 수집벽이 있었으며 그렇게나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진을 공개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비비안 마이어가 유별나고,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했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상자형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를 목에 걸고 세상을 향해 셔터를 눌렀던 여자. 비비안의 이상하고 신비로운 삶과 사진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비비안 마이어 : 거울의 표면에서』는 프랑스의 2000년생 그래픽노블 작가 폴리나 스푸체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21세기에 태어나 체계적인 예술교육을 받고 일찍이 자신의 책을 펴내게 된 젊은 작가와 괴팍한 거리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는 여러모로 대조된다. 비비안 마이어는 한 번도 사진을 배운 적이 없었으며, 유산으로 받은 집을 처분하면서 구입하게 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을 뿐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찍은 듯한 사진은 순간순간의 진실을 뛰어나게 포착해낸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는 채로 사진을 찍히고, 어떤 사람은 사진이 찍히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어떤 사람은 카메라 렌즈를 향해 어깨를 펴고 포즈를 취한다. 어른들은 취하거나 잠들어 있기도 하고 아이들은 울타리에 매달리거나 구두를 닦기도 한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포착하고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걸까. 사진 속에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거리의 소음도, 먼지를 피워올리는 바람도 담겨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담겨 있다.
젊은 그래픽노블 작가 폴리나 스푸체스는 비비안의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꼼꼼히 자료조사를 하고 오래오래 생각한 끝에 붓을 든다. 파울리나의 붓끝에서 비비안의 흑백 사진은 색채를 입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1952년 뉴욕에서 찍힌 취객들의 사진을 보자. 세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제 할 말만 늘어놓고 어깃장을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어느 뒷골목에 주저앉고 만다. “내 아들이 죽었어.” 지독하게 슬프고 너무나도 간단한 과음의 이유. 물론 비비안의 사진 속 모로 누워 정신을 잃거나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남자들에게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찰칵, 사진을 찍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는 비비안 마이어도 사연을 알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70년 뒤 젊은 예술가 한 사람이 사진에 담긴 보편적인 비극과 고통을 읽어내는 것이다. 사진은 순간을 찍지만 말할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읽어내는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비비안 마이어 : 거울의 표면에서』는 다소 어둡고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통해 비비안의 사진을 읽는 방식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Author
파울리나 스푸체스,박재연
프랑스-아르헨티나 출신의 만화 작가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그림과 함께했다. 완벽한 예술가이자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녀는 자신을 자극하고 성취감을 주면서 특별한 미덕을 지닌 그림 그리기로 눈을 돌린다. 파리 오귀스트 르누아르 고등학교에서 아동 일러스트, 만화, 판화를 전공하며 일러스트레이션 학위를 받은 후 자연스럽게 만화로 전향했다.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만화 프로젝트 『비비안 마이어 : 거울의 표면에서』는 졸업 작품이다. 폴리나 스푸체스의 작품은 숭고하고 매혹적이다. 붓으로 수천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채화와 과슈를 투명하게 다루며, 감정은 그림 하나하나를 관통한다. 항상 각 이야기의 중심에는 예외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여성이 있다.
프랑스-아르헨티나 출신의 만화 작가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그림과 함께했다. 완벽한 예술가이자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녀는 자신을 자극하고 성취감을 주면서 특별한 미덕을 지닌 그림 그리기로 눈을 돌린다. 파리 오귀스트 르누아르 고등학교에서 아동 일러스트, 만화, 판화를 전공하며 일러스트레이션 학위를 받은 후 자연스럽게 만화로 전향했다.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만화 프로젝트 『비비안 마이어 : 거울의 표면에서』는 졸업 작품이다. 폴리나 스푸체스의 작품은 숭고하고 매혹적이다. 붓으로 수천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채화와 과슈를 투명하게 다루며, 감정은 그림 하나하나를 관통한다. 항상 각 이야기의 중심에는 예외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여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