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이해인의 팬이었던 주변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해인의 시집에 큰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리얼리스트가 되기를 갈망하여 살았다. 시를 쓰는 나를 리얼리스트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하는데, 세계가 나를 그렇게 불러주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던 때가 있었다. 시인의 임무는 세계의 모순을 고발하고 그 질곡의 역사를 증언하는 피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구상유취의 내게 이해인의 시집이 눈에 들어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책장에 1984년판 『민들레의 영토』와 4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된 『민들레의 영토』가 꽂혀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연구자 박종덕이나 시인 박현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연이 필연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우연히’ 구입한 전집의 책장을 떠들어보다가 ‘수도원 생활을 하는 수녀님이 현실적 삶의 아픔을 아느냐, 수녀님 시는 맹물 같고 자장가 같다’, ‘소녀 취향적 감성의 시’ 같은 글귀가 바늘처럼 눈에 꽂혔다. 이해인의 시에 대하여 세계의 시선은 왜 이렇게 부정적인가. 갑자기 연구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것이 이 책의 부끄러운 발단이다.
이해인의 시를 연구한 연구서가 또 발행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 독자들은 여전히 이해인의 시에 열광하지만, 소위 전문가 그룹은 이해인의 시에 대하여 그리 너그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구상하고 논문을 쓰는 내내 내가 연구자의 시선으로 시인 이해인과 텍스트를 바라보지 못하고 수녀나 수도자라는 기표로 이해인의 텍스트를 덮어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되면 이해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의 기회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연구 대상으로 이해인의 텍스트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 부족한 연구서가 이해인의 시를 훼손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Contents
머리말과 이 책의 서론을 대신하여 6
1장 이해인 시의 미학적 원리를 밝히기 위한 예비 논점들 17
1. 베스트셀러의 시대와 새로운 독자의 등장 18
2. 베스트셀러의 텍스트 외적 요인,
‘1980년대’라는 시대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건들 19
3. 베스트셀러의 텍스트 내적 요인,
주제와 형상화 방법의 특징들 22
2장 이해인의 수도 영성과 시적 형상화 55
1. 이해인 영성의 못자리, 성 베네딕도 영성의 이해 56
1) 순명,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2) 겸손, ‘나는 어디서든지 몸을 굽혀 낮추어졌나이다’
3) 사랑,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다’
2. 수도 영성의 시적 형상화 양상 66
1) ‘당신께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순명의 영성
2)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겸손의 영성
3)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사랑의 영성
3. 수도 영성의 문학적 승화와 그 의의 81
3장 이해인 시의 인물과 영성 91
1. 성서 속 인물의 영성성 92
2. 절대자를 예비하는 인물의 영성 93
3. 절대자의 어머니 성모마리아의 영성 103
4. 절대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 116
5. 사도적 영성과 ‘예수 되기’ 124
4장 이해인 시의 시간과 영성 133
1. 시간의 영성성 134
2. 일상의 영성: 절망을 견디어 획득한 희망의 시간 135
3. 계절의 영성: 절대자의 가르침을 체화하는 시간 147
4. 새해의 영성: 절대자의 나라를 갈망하는 시간 159
5. 절대자의 뜻에 합당한 ‘시간들’ 166
5장 이해인 시의 꽃과 영성 177
1. 꽃의 영성성 178
2. 꽃, 작은 것을 사랑하는 예수의 영성 179
3. 희망과 위로, 그리고 겸손의 영성 186
4. 절대자를 향한 사랑의 영성 193
5. ‘꽃 이름 외우듯이’ 살기 위하여 203
6장 이해인 시의 은유와 영성 215
1. 은유의 근원인 성경과 ‘말씀’의 이해 지평 216
2. 은유 성립의 몇 가지 기반과 함의 219
1) ‘연필’과 ‘깎다’의 은유, 극기와 순명의 영성
2) ‘빨래’와 ‘청소’의 은유, 비움과 버림의 영성
3) ‘항아리’와 ‘장독대’의 은유, 성숙과 조화의 영성
3. 삶의 은유, 은유의 삶 238
7장 이해인 시론(詩論)을 위한 시론(試論) 245
1. ‘클라우디아’와 ‘이해인’의 길항 246
2. 시인, ‘오늘도 고달픈 순례자’ 247
3. 시 쓰기, 고통의 승화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 252
4. 시, 영성적 삶과 절대자에 대한 흠숭의 기도 260
5. 이해인의 시론(詩論)을 대신하여 268
참고문헌 275
Author
박종덕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 전북대학교, 한밭대학교 출강. 저서로 『타자의 시 읽기, 주체의 글쓰기』, 『김남주 문학의 세계』(공저)가 있다. 2007년 필명 박현으로 계간 시전문지 『애지』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굴비』, 『승냥이, 울다』가 있다. 현재 충남대학교 강사로 있다.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 전북대학교, 한밭대학교 출강. 저서로 『타자의 시 읽기, 주체의 글쓰기』, 『김남주 문학의 세계』(공저)가 있다. 2007년 필명 박현으로 계간 시전문지 『애지』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굴비』, 『승냥이, 울다』가 있다. 현재 충남대학교 강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