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자,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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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4/10
Pages/Weight/Size 152*225*30mm
ISBN 9791197117527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조선 유학자 조식의 기개와 절조(節操)를 읽는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조식(曺植 ; 1501-1572)의 생애와 학문을 조명한다. 조식은 1500년대 경상도 일대의 산림에 머물며 학문에 몰두했던 은자이자 학자이다. 성리학 이론보다는 실천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황(李滉 ; 1501-1570)과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당대의 학문적 위상이나 이후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황 이상이었다.

조식은 여남은 번 이상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단 한번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얼토당토않은 정치를 펼치는 때에 벼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에 상소를 올려 조정의 정치를 정면으로 추궁했다. 1555년 을묘년에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에서는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다”고 썼고 수렴청정을 펼치는 문정왕후는 “깊은 궁중에서 살아온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가을 서릿발이 칼날처럼 쏟아졌다. 이로써 유학자의 마땅함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올바른 유학자의 전형을 세웠다. 조선 대장부의 기개와 절조를 보여주었다.

흔히 조식의 학문을 ‘경의지학(敬義之學)’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경(敬)은 유학자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론이고 의(義)는 사회적 실천의 기준을 말한다. 과연 조식은 스스로를 수양할 때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듯 삼갔고, 불의와 맞설 때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았다.

이 책 『조선의 유학자, 조식』은 조식의 생애와 학문을 ‘찬찬히’ 따라간다. 저자인 한문학자 허권수는 조식에 대한 전기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방대한 분량의 원전 자료를 섭렵했다. 조식이 살았던 경상도 삼가현(현재의 합천군 삼가면 일대), 김해부, 진주목 등지의 지리적 공간도 빠짐없이 살폈다.

이 책은 또한 조식이 직접 쓴 필적을 비롯해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도해(圖解)를 소개한다. 조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촬영한, 실감나는 사진도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조선 유학자 조식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Contents
서문 우리 시대의 남명 조식 읽기

1장 1501년, 삼가현 토동에서 태어나다

01 산처럼 큰 인물의 출현
02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다가 문득
03 아버지 조언형의 억울한 죽음

2장 1530년, 김해부 탄동에 산해정을 짓다

04 산악처럼 우뚝하고 연못처럼 깊게
05 과거의 길, 효도의 길, 그리고 학문의 길
06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학문의 경지
07 까마귀의 검은색은 빗물로 씻어낼 수 없고
08 암울한 죽음의 시대, 때를 만나지 못한 현사(賢士)들

3장 1548년, 계부당과 뇌룡사를 짓다

09 닭이 고니의 큰 알을 품듯
10 가혹할 만큼 엄격한 출사(出仕)의 기준
11 후학을 가르치는 기쁨, 현사(賢士)와 사귀는 즐거움

4장 1555년, 명종 임금에게 을묘사직소를 올리다

12 벼슬길로 나오라는 이황의 권유
13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 죽음을 결심한 상소
14 온 나라를 흔들어 놓은 을묘사직소의 파장
15 해인사에서 만나자는 약속
16 지금은 벼슬할 만한 때가 아니니

5장 1558년, 벗들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다

17 어진 사람은 산을 사랑하고
18 지리산 유람에서 만난, 세 군자의 숨결

6장 1561년, 지리산 덕산동에 산천재를 짓다

19 벽에 ‘경(敬)’자와 ‘의(義)’자를 붙인 까닭
20 부지런한 농부들이 연둣빛 들로 나올 때
21 이기론보다 쇄소응대(灑掃應對)를 강조하는 학문
22 얼토당토않았던 권간(權奸)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7장 1568년, 선조 임금에게 무진봉사를 올리다

23 대장부의 출처(出處)는 태산처럼 묵직해야
24 서울로 올라가 명종 임금을 만나다
25 선조 임금에게 ‘구급(救急)’ 두 글자를 올리다
26 백성은 귀중하고 임금은 가벼우니
27 아전의 폐해를 지적한 상소, 무진봉사(戊辰封事)

8장 1572년, 처사로서의 삶을 마치다

28 왜적을 막아낼 방책이 없겠는가?
29 김굉필의 그림 병풍이 전해진 내력
30 죽고 사는 일은 평범한 이치이니
31 부침을 겪은 후인들의 추존 활동

붙임 성운(成運)이 쓴 남명선생묘갈
Author
허권수
허권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문학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한문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또한 우리나라 남명학(南冥學) 연구의 1인자로 손꼽힌다. 30여 년 동안 경상대학교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2017년 정년퇴임했다. 남명학연구소 소장을 지내면서 남명학 연구 공간인 ‘남명학관’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저서와 번역서 100여 권이 있다. 현재는 동방한학연구소를 열어 후학을 기르고 있다.
허권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문학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한문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또한 우리나라 남명학(南冥學) 연구의 1인자로 손꼽힌다. 30여 년 동안 경상대학교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2017년 정년퇴임했다. 남명학연구소 소장을 지내면서 남명학 연구 공간인 ‘남명학관’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저서와 번역서 100여 권이 있다. 현재는 동방한학연구소를 열어 후학을 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