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의 금강경 강의

벼락같이 진리를 꿰뚫는 통찰
$18.98
SKU
9791196560928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Mon 12/9 - Fri 12/13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Wed 12/4 - Fri 12/6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9/07/30
Pages/Weight/Size 127*197*30mm
ISBN 9791196560928
Categories 종교 > 불교
Description
이 책은 용성 스님이 삼장역회三藏譯會에서 1936년 9월 30일 발행한 순한글판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를 김호귀 교수(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가 현대의 맞춤법과 뜻에 맞게 풀고, 각주를 새롭게 달아 출간한 것으로 저본은 구마라집본이다.
Contents
서문
『금강반야바라밀경』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상권
1. 청정한 대중이 법회에 모인 이유(法會因由分) | 24
2.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청하는 분(善現起請分) | 38
3. 큰 법 바른 종 분(大乘正宗分) | 52
4. 묘행이 주함이 없는 분(妙行無住分) | 64
5. 이치와 같이 실다히 보는 분(如理實見分) | 74
6. 정신하는 것이 희유한 분(淨信希有分) | 80
7. 얻은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는 분(無得無說分) | 94
8. 법을 의지하여 출생하는 분(依法出生分) | 104
9. 일상과 무상분(一相無相分) | 118
10. 정토를 장엄하는 분(莊嚴淨土分) | 138
11. 하염없는 복승한 분(無爲福勝分) | 152
12. 정교를 존중하는 분(尊重正敎分) | 156
13. 법다히 수지하는 분(如法受持分) | 164
14. 상을 여의여 적멸한 분(離相寂滅分) | 178

『금강반야바라밀경』 하권
15. 경을 가진 분(持經功德分) | 220
16. 능히 업장을 청정케 한 분(能淨業障分) | 230
17. 구경에 아가 없는 분(究竟無我分) | 236
18. 일체로 보는 분(一體同觀分) | 248
19. 법계 통화하는 분(法界通化分) | 270
20. 색을 여이고 상을 여인 분(離色離相分) | 274
21. 설하되 설할 법 없는 분(非說所說分) | 278
22. 법을 가히 얻을 것 없는 분(無法可得分) | 284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 288
24. 복지가 비할 데 없는 분(福智無非分) | 292
25. 화하여도 화하는 바 없는 분(化無所化分) | 296
26. 법신이 상 아닌 분(法身非相分) | 300
27. 끊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분(無斷無滅分) | 306
28. 받지 않고 탐하지 않는 분(不受不貪分) | 310
29. 위의 적정한 분(威儀寂靜分) | 314
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 318
31. 지견이 나지 아니한 분(知見不生分) | 324
32. 응화신이 참이 아닌 분(應化非眞分) | 328

해제 ‘의심을 제거해 금강의 진심을 드러냄’이 용성 스님의 뜻 | 380
Author
백용성
속명은 백상규白相奎이며 용성은 법호이며, 법명은 진종震鍾이다.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 출생, 14세에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19세 출가설도 있음), 16세에 해인사에서 사미계 수지했다. 1885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읽다가 크게 깨닫고 멀리 환성지안의 법을 이었다. 이후 천장암, 정헤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선암사, 금강산 불지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48세인 1911년 서울로 상경해 우면산 대성초당에서 주석하며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1912년에는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을 열었으며, 1916년 종로에 선종포교당인 대각사를 창건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수감됐다. 58세인 1921년 출감하며 역경사업을 위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등 20여 권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 또한 대각교를 창립하며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 지성화를 이끌었다. 1922년에는 간도 오지인 명월촌과 봉령촌에 700정보(210만평)씩 농장을 만들어 독립운동 후방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스님의 독립운동 지원은 해방 후 백범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대각사를 방문했던 사진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추진했고, 1926년에는 범계생활금지犯戒生活禁止를 내용으로 건백서建白書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64세인 1927년에는 경남 함양의 백운산에 화과원을 설립해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제창, 직접 농사하며 생활했다. 또한 이때 우리나라 최초로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며 한국 불교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님은 1940년 음력 2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세수 77세로 입적했다.
속명은 백상규白相奎이며 용성은 법호이며, 법명은 진종震鍾이다.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 출생, 14세에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19세 출가설도 있음), 16세에 해인사에서 사미계 수지했다. 1885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읽다가 크게 깨닫고 멀리 환성지안의 법을 이었다. 이후 천장암, 정헤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선암사, 금강산 불지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48세인 1911년 서울로 상경해 우면산 대성초당에서 주석하며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1912년에는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을 열었으며, 1916년 종로에 선종포교당인 대각사를 창건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수감됐다. 58세인 1921년 출감하며 역경사업을 위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등 20여 권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 또한 대각교를 창립하며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 지성화를 이끌었다. 1922년에는 간도 오지인 명월촌과 봉령촌에 700정보(210만평)씩 농장을 만들어 독립운동 후방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스님의 독립운동 지원은 해방 후 백범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대각사를 방문했던 사진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추진했고, 1926년에는 범계생활금지犯戒生活禁止를 내용으로 건백서建白書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64세인 1927년에는 경남 함양의 백운산에 화과원을 설립해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제창, 직접 농사하며 생활했다. 또한 이때 우리나라 최초로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며 한국 불교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님은 1940년 음력 2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세수 77세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