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리더들의 경영수업

처세술과 인간 심리의 바이블
$19.05
SKU
9791194381174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5/2 - Thu 05/8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4/29 - Thu 05/1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5/01/24
Pages/Weight/Size 126*188*16mm
ISBN 9791194381174
Categories 자기계발
Description
처세술과 인간 심리의 바이블

역사의 어느 대목에서도 입증할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
개인은 물론 조직이나 단체를 이끄는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운명이 우리 행위의 절반을 좌우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도 나머지 절반의 동향은 우리 인간에게 맡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서기 1469~1527)

마키아벨리는 리더들의 경영수업(군주론)을 지도자들을 위한 지침서의 형식으로 집필했다. 원래 이 책은 새로운 통치자(메디치 가문)를 독자로 설정한 책으로, 국익을 위해 기본적인 인간 본성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자기중심적이지만 유순한 인간 본성을 설명한 후, 그는 통치자가 나라를 신중하게 다스리는 데 필요한 자질로 관심을 돌린다.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리더들의 경영수업(군주론)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원전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도덕적 입장에서 마키아벨리를 ‘악마의 대변자’로 비난하고 그칠 일은 아니다. 이 책을 ‘악마의 책’이라며 비판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조차 군주로서는 마키아벨리적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마키아벨리즘에는 정치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근대 정치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종교와 도덕의 세계에서 독립된 정치의 세계를 발견한 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양식 면에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정치론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다.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운 점은 무엇일까? 이처럼 낡은 부대에 정치에 대한 시각 전환을 잉태한 새로운 술을 담았다는 사실이다.
Contents
서문 7
인간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21
헌정사 25
1장 군주국에는 얼마나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어떻게 세워지는가 28
2장 세습 군주국에 대하여 30
3장 혼합 군주국에 대하여 32
4장 다리우스 왕국은 왜 정복자인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그의 계승자들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47
5장 합병되기 전까지 자기들의 법대로 살아온 도시나 군주국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53
6장 자기가 가진 무력과 역량으로 점령한 새 군주국에 대하여 56
7장 타인의 무력이나 운명의 도움으로 획득한 새 군주국에 대하여 62
8장 사악한 방법을 써서 군주국을 차지한 사람들에 대하여 75
9장 시민 군주국에 대하여 83
10장 군주국의 힘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90
11장 교회 군주국에 대하여 94
12장 군대의 종류와 용병에 대하여 99
13장 지원군, 혼성군, 자국군에 대하여 108
Author
니콜로 마키아벨리,민지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