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한 달 한 권, 1년 365일의 읽을거리를 쌓아가는 ‘시의적절’ 시리즈, 한정원 시인의 8월을 만난다. 마냥 사랑할 수만은 없는 무더운 여름, 어쩐지 미심쩍고도 미진한 이 마음을 두고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 말하는 시인. 한껏 미움을 대신해 조금의 사랑을 말하는 시인. 그러니까 시인에겐 8월은 여름보다도 여름의 흔적으로 향하는 시선이다. 햇볕 뒤편의 나무 그늘, 여름비가 고여든 웅덩이, 침묵으로 향하는 종소리 같은 것.
『시의 산책』(시간의 흐름, 2020) 이후 4년 만의 산문임에, 네 번의 계절을 돌며 시인은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테다. 계절의 마음으로 시와 산문을 쓰고, 어떤 흔적은 사진으로 담았다. 불볕더위 속 잠깐 돌리는 숨처럼, 그런 구멍처럼, 열어둔 여백마다 시간이 쌓인다. 그야 물론, 시인에게 침묵이야말로 본향(本鄕)일 테니까. 이제 네번째 여름을 지나, 여름을 기억하며, 다만 코끝에 귓가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여름의 흔적을 더듬는 일. 오래도록 어루만지는 일. 그리하여 이제 가벼이 일어서, 흐르는 계절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을 그런 책.
존재 말고 존재의 그림자를 더듬은 흔적. 사람의 꼬리뼈와 세번째 눈꺼풀, 고래의 뒷다리와 같이 절멸하고도 남은 선. 8월은 내게 그런 선이다. 그런 선을 꼭 쥐고 잠을 자고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다. 작은 더위와 큰 더위를 지나 잔서, 한풀 수그러든 열렬과 열심, 피로를 견디는 어떤 얼굴 어떤 지경으로 꾸려진 낮밤들. 이제 없는 것들의 기원에 골몰하고, 오로지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미래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일곱 달을 잃고, 나는 붓을 든다. 곧 가뭇없을 8월, 7월과 9월 사이의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그 시도는 실패가 자명하다. 어떻든 시간은 붙잡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더라도.
없어질 한 사람을 어루만지듯이. - 본문 중에서
Contents
작가의 말 잔서의 날들 7
8월 1일 에세이 종소리 11
8월 2일 시 여름의 일 17
8월 3일 사진 꿈의 꽁무니 21
8월 4일 에세이 라크리모사 25
8월 5일 시 정사 33
8월 6일 사진 언어가 없을 때 37
8월 7일 에세이 조금 사랑하기 41
8월 8일 시 비밀 47
8월 9일 사진 여름비는 잠비 51
8월 10일 에세이 무거운 기쁨 55
8월 11일 에세이 냄새와 기억 61
8월 12일 시 콧노래 65
8월 13일 사진 코끼리의 주름 69
8월 14일 에세이 해방 73
8월 15일 에세이 비의 무게 77
8월 16일 시 그믐 81
8월 17일 사진 눈물 85
8월 18일 시 백야 89
8월 19일 에세이 파도가 없다면 93
8월 20일 시 파도 97
8월 21일 사진 접촉 99
8월 22일 에세이 그치다 103
8월 23일 시 벌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저녁 107
8월 24일 사진 구으으으으으으름 111
8월 25일 에세이 정주 115
8월 26일 시 호수 이름에는 관사가 붙지 않는다 119
8월 27일 사진 사라진 소리 123
8월 28일 에세이 산소리 127
8월 29일 시 그릇 131
8월 30일 사진 남아 있는 것들 135
8월 31일 에세이 여름은 멈추어라 139
Author
한정원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연기를 했다. 2020년 산문집 『시와 산책』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가 있다.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연기를 했다. 2020년 산문집 『시와 산책』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