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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불가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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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5/02/25
Pages/Weight/Size 150*225*35mm
ISBN 9791193796092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역사/인물
Description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의 이름은 전쟁과 정치의 역사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인물로 기억된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을 쫓고 이루기 위한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나폴레옹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삶을 통해 “내 사전엔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나폴레옹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가 어떻게 “불가능은 없다.”는 정신으로 유럽의 역사를 변화시켰는지를 탐구한다. 그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감을 주며, 어떤 도전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꿈을 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나폴레옹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혁신가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나폴레옹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결단과 용기가 어떻게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국가의 운명을 변화시켰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의지를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법률과 행정 시스템의 개혁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초가 되었고, 이는 단순히 군사적 승리에 그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Contents
머리말 ㆍ 4

01. 유럽을 정복했으나, 단 한 여자의 마음조차 얻지 못한 남자

■ 가장 사랑한 첫 황후, 조제핀을 만나다 ㆍ 18
-영화 「나폴레옹」 리뷰 ㆍ 28

■ 두 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 나폴레옹 2세를 출산하다 ㆍ 39

02. 대관식이 거행되다

■ 노트르담에서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ㆍ 66

03.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다

■ 불행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으로 다시 불행해지다 ㆍ 80
ㆍ 명사회가 열리다(1787년 2월 22일) ㆍ 90
ㆍ 삼부회가 소집되다(1789년 5월 5일) ㆍ 92
ㆍ 테니스 코트에서 서약하다(1789년 6월 20일) ㆍ 95
ㆍ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하다(1789년 7월 14일) ㆍ 99
ㆍ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프랑스 인권 선언이 채택되다(1789년 8월 26일) ㆍ 104
ㆍ 여성 중심의 베르사유 행진, 부르주아 여성도 동참했다(1789년 10월 05일) ㆍ 107
ㆍ 사회의 전반에 대해서 다양한 개혁이 진행되다(1789년 ~1792년) ㆍ 111
ㆍ 바렌 도주 사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체포되다(1791년 6월 20일 ~22일) ㆍ 113
ㆍ 프랑스 최초의 입법의회가 제정되다(1791년 10월 1일 ~1792년 9월 20일) ㆍ 127

04. 프랑스 혁명 전쟁이 일어나다

■ 프랑스 혁명 전쟁이 일어나다(1792년 4월 20일~1802년 3월 25일) ㆍ 132
ㆍ 농민들로 구성된 의용군으로 조직된 발미 전투가 일어나다(1792년 9월 20일) ㆍ 135
ㆍ 상퀼로트를 중심으로 한 무장 봉기가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다(1792년 8월 10일) ㆍ 139
ㆍ 프랑스 감옥에서 9월 학살이 일어나다(1792년 9월 2일) ㆍ 159
ㆍ 국가총동원령을 발령하고, 징병제를 시행하다(1793년 8월 23일) ㆍ 163
ㆍ 혼드스쿠트 전투, 후처드 장군이 승리하다(1793년 9월 8일) ㆍ 166
ㆍ 프랑스가 네덜란드와 라인란트의 대부분을 점령하다(1794년 ~1795년) ㆍ 171
ㆍ 1차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하다(1796년 ~1797년) ㆍ 172
ㆍ 이집트와 시리아 원정에 실패하다(1798년 5월 19일 ~1801년) ㆍ 174
ㆍ 팔레스타인 원정에 실패하고 페스트에 걸린 병사를 방치하다(1799년) ㆍ 183
ㆍ 2차 이탈리아 원정과 알프스를 넘다(1798년 ~180년) ㆍ 184
ㆍ 툴롱 포위전은 왕당파의 반란에 대해 공화파가 승리를 거둔 전투다(1793년 9월 18일~1793년 12월 18일) ㆍ 188
ㆍ 주르당 휘하의 프랑스군이 승리한 결정적인 플뢰뤼스 전투이다(1794년 6월 26일) ㆍ 195
ㆍ 몬도비 전투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두 번째 전투다(1796년 4월 21일) ㆍ 197
ㆍ 1796년 11월에 아르콜레 다리 전투가 발발하다(1796년 11월) ㆍ 198
ㆍ 나폴레옹과 맘루크군의 피라미드 전투가 일어나다(1798년 7월 21일) ㆍ 201
ㆍ 영국 함대가 이집트에 주둔하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격침시킨 나일 해전이 일어나다(1798년 8월 1일~2일) ㆍ 208
ㆍ 제노바 포위전으로 인해 마렝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였다(1800년 4월 6일~ 6월 4일) ㆍ 212
ㆍ 뮌헨 인근의 호엔린덴에서 전투가 벌어지다(1800년 12월 3일) ㆍ 213

■ 공화국이 성립하다 ㆍ 217
ㆍ 단원제 입법기관, 국민공회가 존속하다(1792년 9월 20일~ 1795년 10월 26일) ㆍ 217
ㆍ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지다(1793년 1월 14일) ㆍ 219
ㆍ 공안위원회의 공포 정치가 실시되다(1793년 6월 2일~1794년 7월 27일) ㆍ 220
ㆍ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남긴 마지막 편지 ㆍ 227
ㆍ 총재 정부의 성립으로 프랑스 혁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1795년 11월~1799년 11월) ㆍ 240
ㆍ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의해 통령 정부가 태어나다(1799년 11월 9일~ 1804년) ㆍ 243

05. 대불 동맹 전쟁

■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793년~1797년) ㆍ 246
ㆍ 네르빈덴 전투는 뒤무리에의 승리로 끝이 났다(1793년 3월 18일) ㆍ 249
ㆍ 프랑스 제1공화국에 저항한 방데 전쟁이 일어나다(1793년 3월 3일 ~1796년 7월 16일) ㆍ 250

■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798년 12월 24일~1801년) ㆍ 257
ㆍ 나폴레옹이 알프스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에 진출하다(1799~1800년) ㆍ 257
ㆍ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군을 기습하면서 마렝고 전투가 벌어지다(1800년 6월 14일) ㆍ 264

■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805년 4월 11일~1806년) ㆍ 274
ㆍ 넬슨의 죽음, 트라팔가르 해전이 벌어지다(1805년 10월 21일) ㆍ 274
ㆍ 대륙봉쇄령을 취하다(1806년 11월 21일) ㆍ 291
ㆍ 베를린 칙령을 선포하다(1806년 11월 21일) ㆍ 291
ㆍ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침공하다(1806년 11월) ㆍ 292
ㆍ 대륙 봉쇄의 문제점이 나타나다 ㆍ 293
ㆍ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전술상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1805년 12월 2일) ㆍ 295
ㆍ 대육군은 나폴레옹 1세가 명명하였다(1805년) ㆍ 297

■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806년 10월 6일~1807년 7월 7일) ㆍ 302
ㆍ 짙은 안개 속에서 예나 전투가 일어나다(1806년 10월 14일) ㆍ 302
ㆍ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하다(1806년 10월 14일) ㆍ 305
ㆍ 아일라우 전투는 나폴레옹의 불완전한 승리였다(1807년 2월 7일) ㆍ 313
ㆍ 하일스베르크 전투는 제2의 아일라우 전투로 불렸다(1807년 6월 5일) ㆍ 315
ㆍ 프리틀란트 전투는 나폴레옹이 직접 치른 전투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기억된다(1807년 6월 12일) ㆍ 319

■ 제5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809년 4월 9일~1809년 10월 14일) ㆍ 326
ㆍ 라티스본 전투는 나폴레옹과 찰스 대공의 전투였다(1809년 4월 13일) ㆍ 327
ㆍ 토이겐과 하우젠 교전이 일어나다(1809년 4월 19일) ㆍ 331
ㆍ 아벤스베르크 전투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일어났다(1809년 4월 20일) ㆍ 340
ㆍ 란츠후트 전투는 두 번의 교전이 있었다(1809년 4월 21일) ㆍ 349
ㆍ 에크뮐 전투는 1809년 전역의 전환점이 되었다(1809년 4월 21일에서 22일 ) ㆍ 352
ㆍ 나폴레옹이 노이마르크트 전투를 지원하다(1809년 4월 24일) ㆍ 355
ㆍ 도나우강을 건너기 위해 아스페른과 에슬링 전투는 나폴레옹이 최초로 패한 전투였다(1809년 5월 21일~5월 22일) ㆍ 360
ㆍ 나폴레옹이 바그람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다(1809년 10월 14일) ㆍ 367

■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812년~1814년) ㆍ 369
ㆍ 나폴레옹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러시아를 원정하다(1812년 6월 24일~12월 14일) ㆍ 369
ㆍ 발루티노 전투는 러시아군을 격멸할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1812년 8월 18일) ㆍ 378
ㆍ 보로디노 전투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입성하다(1812년 9월 7일~ 9월 14일) ㆍ 380
ㆍ 톨스토이는 타루티노 전투를 단순한 여러 사건과 우연의 연속으로 묘사하였다(1812년 10월 18일) ㆍ 385
ㆍ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하다(1812년 9월 14일~10월 19일) ㆍ 387
ㆍ 모스크바가 4일 동안 불탔다(1812년 9월 14일~9월 18일) ㆍ 396
ㆍ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포기하다(1812년 10월 18일) ㆍ 411
ㆍ 뱌지마 전투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때 일어났다(1812년 11월 3일) ㆍ 418
ㆍ 크라스니 전투는 외젠의 기묘한 모험과, 치챠고프가 민스크에 입성하다(1812년 11월 17일) ㆍ 425
ㆍ 나폴레옹이 베레지나강을 건너 빌뉴스에 도착하다(1812년 11월 26일) ㆍ 428
ㆍ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다(1813년 3월 17일) ㆍ 433
ㆍ 비토리아 전투는 프랑스군을 마지막으로 격퇴시킨 전투였다(1813년 3월 17일) ㆍ 434
ㆍ 뤼첸 전투에서 러시아 장군 샤르호스트가 사망하다(1813년 5월 2일) ㆍ 435
ㆍ 바우첸 전투는 나폴레옹이 준비한 회심의 전투였다(1813년 5월 20일~21일) ㆍ 439
ㆍ 오스트리아가 선전포고를 하자 나폴레옹이 궁지에 몰린다(1813년 8월 11일) ㆍ 444
ㆍ 그로스베렌 전투는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이다(1813년 8월 19일) ㆍ 446
ㆍ 폭풍우가 치던 날, 나폴레옹은 카츠바흐강에서 패배했다(1813년 8월 26일) ㆍ 449
ㆍ 데네비츠 전투는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이다(1813년 9월 6일) ㆍ 451
ㆍ 라이프치히 전투는 1차 대전 이전 규모가 가장 큰 전투였다(1813년 10월 16일 ~19일) ㆍ 454
ㆍ 오스트리아 제2군단의 될리츠를 점령하다(1813년 10월 16일) ㆍ 457
ㆍ 마클리베르크의 전투는 프랑스가 측면공격을 당하고 패주하다(1813년 10월 16일) ㆍ 458
ㆍ 프랑스가 바하우를 탈환하다(1813년 10월 16일) ㆍ 459
ㆍ 리베르트볼크비츠 전투는 연합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못했다(1813년 10월 16일) ㆍ 460
ㆍ 북쪽의 전황은 모케른 전투에 의해 결정되었다(1813년 10월 17일~18일) ㆍ 462
ㆍ 세헤스타드 전투에서 덴마크가 패하다(1814년) ㆍ 467
ㆍ 상포베르 전투에서 야전에 승리하다(1814년 2월 10일) ㆍ 467
ㆍ 마른강가의 샤토티에리에서 요르크 장군의 후위를 공격하다(1814년 2월 12일) ㆍ 468
ㆍ 보샹 전투에서 요르크 폰 바텐베르크를 이기다(1814년 2월 14일) ㆍ 469
ㆍ 몽미라일 전투에서 프로이센의 루트비히 요르크 폰 바텐베르크 장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다(1814년 2월 11일) ㆍ 469
ㆍ 러시아군이 파리에 입성하고 퐁텐블로조약이 체결되다(1814년 4월 11일) ㆍ 472

■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1815년 3월 20일부터 루이 18세가 복위된 7월 8일) ㆍ 476
ㆍ 리니 전투는 나폴레옹이 승리한 마지막 전투였다(1815년 6월 16일) ㆍ 480
ㆍ 카트레브라 전투는 워털루 전투의 전초전이었다(1815년 6월 16일) ㆍ 487
ㆍ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마직막 전투였다(1815년 6월 16일) ㆍ 488

06. 나폴레옹의 죽음과 평가

■ 나폴레옹의 유배와 죽음 ㆍ 518
ㆍ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다(1815년 8월 7일) ㆍ 524
ㆍ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말년을 보내다 ㆍ 524
ㆍ 영국 총톡 ‘허드슨 로’가 나폴레옹을 ‘황제’ 대신 ‘장군’이라고 부르다 ㆍ 525
ㆍ 최후까지 측근 시종들이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기 위해 다투다 ㆍ 528
ㆍ 라즈 카즈는 『세인트헬레나의 회상』을 집필해 일약 대성공을 했다 ㆍ 529
ㆍ 나폴레옹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으나 구르고가 1818년까지 시종 노릇을 했다 ㆍ 531
ㆍ 비소 독살설의 주인공, 몽롱통은 1821년까지 모셨다 ㆍ 533
ㆍ 베트트랑은 1821년까지 모셨다 ㆍ 534
ㆍ 『베르트랑의 일기』에는 이렇게 전한다 ㆍ 535
ㆍ 오미어는 1818년까지 모셨다 ㆍ 537
ㆍ 프란체스코 안토마르치는 나폴레옹 덕분에 큰 재산을 모은 싸구려 의사였다 ㆍ 538
ㆍ 1821년 5월 5일 나폴레옹이 세상을 떠나다 ㆍ 540
ㆍ 근거 없는 독살설이 나돌다 ㆍ 540
ㆍ 주검으로 돌아오다 ㆍ 542
ㆍ 1840년, 사후 19년 만에 유골이 귀환하다 ㆍ 546
ㆍ 나폴레옹 본인의 회상 ㆍ 550
ㆍ 고향 코르시카섬은 포도 산지가 되었다 ㆍ 553
ㆍ 정복의 길에 찾은 와인셀러 ㆍ 556
ㆍ 패전 후 유배된 섬에 와인으로 유명하다 ㆍ 557
ㆍ 유럽 역사에 미친 나폴레옹의 영향 ㆍ 559
ㆍ 영웅인가? 전쟁광인가? ㆍ 561

Index ㆍ 568

그림, 사진 Index ㆍ 574
참고문헌 ㆍ 584
Author
김혜정
한라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디자인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물관, 전시관, EXPO 등 인터랙션, 인터페이스 적인 체험형 에듀테인먼트와 기술디자인에 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국내 아트디렉터 권위자로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 우수 논문심사위원상 수상, 대한민국인물대상전 디자인콘텐츠 대상, 코리아혁신대상에서 디자인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전국여교수연합회 부회장 및 광고위원장, (사)한국색채학회 이사,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심의위원,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심사위원, 강원도 지역혁신위원, 인천광역시 경관위원, 경기도 경관위원, 원주시 공공디자인 및 경관·기술자문 위원이다.
한라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디자인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물관, 전시관, EXPO 등 인터랙션, 인터페이스 적인 체험형 에듀테인먼트와 기술디자인에 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국내 아트디렉터 권위자로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 우수 논문심사위원상 수상, 대한민국인물대상전 디자인콘텐츠 대상, 코리아혁신대상에서 디자인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전국여교수연합회 부회장 및 광고위원장, (사)한국색채학회 이사, (사)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심의위원,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심사위원, 강원도 지역혁신위원, 인천광역시 경관위원, 경기도 경관위원, 원주시 공공디자인 및 경관·기술자문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