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남한살이

82년생 평양 여자의 우당탕 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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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937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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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7/15
Pages/Weight/Size 120*188*20mm
ISBN 9791193710425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북한에서 왔는데 성악도 하고,
피아노를 친다구요? 목숨 걸고 탈출했다고요?”
13년째 인기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 첫방송 출연!
성악가 탈북 미녀로 주목받은 한서희

가족 전체 탈북 후 날마다 좌충우돌 남한살이중
진짜 평양냉면 좀 먹어본 저자의 서울 정착기
누적 조회수 210만 유튜버 〈피앙 한서희 TV〉
통일 안보 교육 강사, 누적 강의 2,000회 이상 진행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떠난 가족들
‘탈출할 결심’


태어나보니 북한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저자 한서희의 아버지는 간부, 어머니는 인민반장이어서 밥을 굶지는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피아노면 피아노, 노래면 노래 등 배우라면 배우고, 외우라면 외우면서 자랐다. 남한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라고 세뇌 당했지만 몰래 보는 남한의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오빠가 사라졌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사실 탈북한 가족은 오빠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모들과 외할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떠났다. 오빠가 떠난 이상 남은 가족이 북한에서 계속 이전처럼 살기는 어려워졌다. ‘우리도 가자!’

2007년, 그렇게 운명처럼 떠나와 정착한 서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누구든 일을 하는 만큼 돈을 버는 사회지만 북향민(北鄕民) 또는 탈북민에게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영역과 기회 자체가 적다. 그렇다보니 진입 장벽이 낮은 일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지고, 고단해진다. 한국인이나 일찍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은 다른 사람들과 격차도 점점 벌어져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기도 하고…….

“북한 사람들은 그냥 좀 무서워”
“한서희 씨, 한글 쓸 줄 알아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에 저자는 숱하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탈북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텅빈 집을 중고 가전으로 채워준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발 벗고 일자리를 구해준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 덕분에 저자는 조금씩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갔다.
Contents
들어가며
국정원 이야기 | 아프리카 사자고추 | 집단체조 하는 자동차 | 첫 교통사고 | 피앙한서희TV | 첫 알바, 보이스피싱 아니지 말입니다 | 토끼풀과 개구리알 | 슬픔병과 사춘기 | 선물의 나라 | 도토리꿀술, 소맥 그리고 노래방 | 계란도 과유불급 | 대한민국 학부모가 되다! | 사탕가루와 낙지 | 가슴에 남은 고마운 분들 | 쌀 이야기 | 달구지와 가짜 약 | 오빠가 없어졌다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우리 가족 탈북 그 이후 | 남남북녀 | 설국열차와 KTX | 자기, 누나, 언니, 사모님 | 울고 웃는 병원 | 100% 찬성이라는 선거 | 담배 공화국 | 못되게 생겼구나야 | 통일 안보 교육 강사 한서희 | 고속도로와 휴게소 | 이제 만나러 갑니다 | 노래하는 탈북민 | 텔레비전과 악마의 편집 |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 봉사와 기부 | 너구리와 무파마 | 까만 바닷물과 맛집 탐방 | 로또 당첨 같은 서울살이 | 저기는 왜 귀뚜라미예요? | 먹고사는 자격증 | 점과 굿 | 김장의 추억 | 평양 평양냉면 vs 서울 평양냉면 | 살 까기 전쟁 | 보물창고 | 실수해도 괜찮아
Author
한서희
평양음악무용대학교 성악과 졸업 후 인민보안성 협주단 성악배우로 살던 중 오빠가 사랑의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을 계기로 온 가족이 탈출해 2007년 3월 대한민국으로 왔다. 남한은 북한 체제에서 배운 대로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가 아닐까 몹시 두려웠으나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 덕분에 매일 감동으로 울다가 웃으며 북향민(北鄕民) 인생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었다. 1인 N역의 시대에 걸맞게 방송인 겸 유튜버, 통일 안보 교육 강사, 성악가, 피앙체네컴퍼니 대표,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양음악무용대학교 성악과 졸업 후 인민보안성 협주단 성악배우로 살던 중 오빠가 사랑의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을 계기로 온 가족이 탈출해 2007년 3월 대한민국으로 왔다. 남한은 북한 체제에서 배운 대로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가 아닐까 몹시 두려웠으나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 덕분에 매일 감동으로 울다가 웃으며 북향민(北鄕民) 인생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었다. 1인 N역의 시대에 걸맞게 방송인 겸 유튜버, 통일 안보 교육 강사, 성악가, 피앙체네컴퍼니 대표,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