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6월 16일. 시인 김수영이 우리 곁을 떠났다.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온몸으로만 시를 써야 한다고 외쳤던 외로운 자유주의자 김수영의 56주기(2024. 06. 16) 즈음에 그의 특별한 서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중심 내용은 한 여인을 향한 김수영의 처절하고도 맹목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이 향하는 곳은 아내 김현경 여사였고, 김현경은 시인의 소리에 아방가르드한 사랑으로 화답했다. 해서 이 책 제목이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이다. 이 책은 시인 사후 56년이 되도록 여전히 시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김현경 여사의 구술(口述)을 바탕으로 ‘김수영기념사업회’ 홍기원 이사장이 재구성했다. 특별히 백수(白壽)를 눈앞에 두고 있는 김현경 여사의 97번째 생일(2024. 06. 20)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오래된 기억들이 버무려진 기념비적인 시간이다.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했던 두 사람의 운명적 서사!
그 어떤 영화로도 연출하기 어려운 지독한 사랑, 고통, 그리움
시인 김수영과 그의 아내 김현경이 주고받았던 사랑과 그 서사는 일반 사람들의 통념, 가치관, 윤리의식 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심지어 상상력으로도 두 사람의 위험한 선택과 그 언어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의 동행에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시대의 아픔이 따라다녔다. 그들의 첫 만남은 부잣집 딸 16세 문학소녀가 행색이 남루하기 짝이 없는 22살의 시인 나부랭이 지망생을 우연히 만난 1942년 5월이다.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을 교류했지만, 김수영은 소녀에게 있어 그저 시를 잘 쓰는 아저씨일 뿐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맞이한 해방정국, 이화여대생이 된 소녀는 꿈에서 그리던 ‘백마 탄 왕자’ 같은 청년과 짧은 연애를 하지만 총격사건 스캔들에 휩싸이며 어둠에 갇히고 만다. 이때 김수영은 그 소녀에게 “문학 하자!”라고 위로했고, 그 소리는 한줄기 구원의 빛이 되어 두 사람은 마침내 연인이 된다.
무모할 정도의 동거 생활이 잠시 이어졌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만신창이가 된 김현경은 “이제 다시 이별을 하는구나!”라며 절망했지만 두 사람은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바이런의 시 [My soul is dark] 프로포즈 앞에 김현경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되었다. 그들은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만 의지를 발동했고 모든 편견과 타자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절대 자유, 절대 사랑을 향한 ‘발칙한’ 발걸음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두 사람은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깬 시대의 전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겪어야 했던 시대는 혹독했다. 첫 아이 임신 때 전쟁이 터졌고, 김수영은 어느 날 갑자기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몇 차례나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매일 토막 난 시체가 나뒹구는 포로수용소 생활을 간신히 이겨내며 기적처럼 생환했지만, 2년 3개월 야만의 시대를 감내했던 김수영의 상처를 보듬어 줄 아내 김현경은 없었다.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공할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감당할 수 없었던 시인 김수영은 밤마다 술에 취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긴 기다림이 필요했고 그것은 짙은 그리움이었다. 오직 한 사람에게로만 향하던 그들의 시선은 결국 재결합을 만들어냈다. 2년 6개월의 이별 뒤, 두 사람이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데에는 “가자!”라는 김수영의 한 마디가 필요했을 뿐이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국가폭력 트라우마 위에 꽃피운 처절한 사랑, 두 사람의 재결합에는 “가자.”라는 말만 필요했을 뿐!!
1장 사직동의 당돌한 소녀
보름날에 태어난 갓난아기/ 경기도 진위에서 서울 사직동으로/ 집에서 봉변을 당한 다섯 살 소녀/ “현경아, 언니 숙제 좀 해줘!”/ 팔방미인 외할머니/ 선머슴 언니의 화려한 변신/ 걸출한 사업가 아버지와 두 명의 작은어머니
2장 문학소녀와 시인의 만남
시인 김수영과의 첫 만남/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서 선생이 되다/ 위기일발, 체포령이 떨어진 새내기 교사/ 해방된 나라에서 시를 써야지/ 어디서든 빛이 나는 여대생/ 시로는 당해낼 수가 없겠네/ 박인환과 임화 그리고 배인철
3장 마침내 시인과의 사랑이 익어가던 날
충격적인 총격사건과 희대의 스캔들/ 한줄기 구원의 빛, “문학 하자!”/ 누구도 흉내 못 내는 아방가르드 여자/나는 또 이별을 하는구나/ 가장 로맨틱한 프로포즈, My soul is dark/ 동거, 운명적인 사랑에 모든 것을/ 시어머니는 언제나 든든한 언덕
4장 전쟁이 남긴 것, 그 상처가 배태한 것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몰살을 피한 아찔한 피란길/ 피란 시절의 웃지 못할 이야기들/ 어둠 뚫고 사선 넘어 귀환한 시인/ 전쟁이 끝났지만 다시 엇갈리는 두 사람/ 불편한 동거로 번민이 깊어지고
5장 운명보다 지독한 사랑이었다
깊은 상처는 짙은 그리움이었다/ 그날부터 다시 부부가 된 사연/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극쟁이/ 멋진 양옥집으로 탈바꿈한 구수동 안식처/ 김수영 문학이 피어오른 구수동 시절/ 10년간 양계를 하면서 얻은 것들/ 구수동을 떠올리는 일상의 조각들
6장 눈부신 광휘가 햇살처럼 비치던 날들
전란의 혼돈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간 동생들/ 꼬마 기자와 엔젤 양장점/ 신문로에 새롭게 단장한 양장점을 냈지만/ 위대한 시인이 떠나가던 날/ 잠파노의 울음보다 더한 반성의 울부짖음/ 마지막 꿈, “서사 담은 생활문학관 짓겠다!”
발문 어떤 후기(後記) - 고은(시인)
Author
홍기원
경남 진해 출생.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나왔다. 도봉구 현대사 인물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김수영 유족과 인연을 맺은 후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한 1992년부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누비고 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카페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살림, 2010), 『길 위의 김수영』(삼인, 2021), 『김두황 평전』(어나더북스, 2023) 등이 있다.
경남 진해 출생.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나왔다. 도봉구 현대사 인물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김수영 유족과 인연을 맺은 후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한 1992년부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누비고 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카페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살림, 2010), 『길 위의 김수영』(삼인, 2021), 『김두황 평전』(어나더북스, 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