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중재

계시, 화해, 성육신에 관한 과학적·삼위일체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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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5/31
Pages/Weight/Size 130*208*20mm
ISBN 9791193325117
Categories 종교 > 기독교(개신교)
Description
삼위일체의 문법 안에서
그리스도의 중재를 초점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스 F. 토렌스는
“그리스도론에 관한 나의 신학적 성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로완 윌리엄스
“20세기 가장 중요한 영국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현대 영국 신학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데이비드 퍼거슨

김만준(덕수교회 담임목사), 김진혁(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차보람(성공회대학교 교수) 추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부활 후 승천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현대인의 합리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20세기 현대 영국 신학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손꼽히는 토마스 F. 토렌스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 그리고 디즈베리 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 1982년 《그리스도의 중재》(The Mediation of Christ)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계시자와 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고, 삼위일체적?과학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의 핵심을 꿰뚫어 냈다. 40년 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조직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책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하다고 생각할 법한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을 계시, 화해, 속죄, 예배, 삼위일체 등 여러 주제와 결부하며 다채롭게 분석한 빼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말로는 출간되지 못했는데, ‘토마스 토렌스의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에 근간한 신학적 인간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아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학봉 교수의 헌신으로 드디어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칼 바르트의 신학을 영어권에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토마스 F. 토렌스는 현대신학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로완 윌리엄스는 “토마스 토렌스의 그리스도론은 나의 신학적 성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했고,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영국 신학자”라고 평가하며 그의 삶을 다룬 전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토마스 토렌스의 신학적 이해를 압축하여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책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는 통전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평신도들에게는 기독교 복음을 이해하는 데 명쾌한 해답을 줄 것이다.
Contents
개정판 서문
서문
1장 계시의 중재
2장 화해의 중재
3장 중재자의 인격
4장 인간성으로 응답하는 그리스도의 중재
5장 속죄와 거룩한 삼위일체
역자 후기
Author
토마스 F. 토렌스,김학봉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토마스 F. 토렌스는 1913년 8월 30일, 중국 서부 쓰촨성 청두에서 중국내지선교회 파송 선교사인 토마스 토렌스와 애니 엘리자베스 토렌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두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부모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에든버러, 바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1934년 에든버러 대학의 뉴칼리지 조직신학 교수인 휴 로스 매킨토시에게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방법론’을 배우면서 칼 바르트의 신학을 소개받았고, 이는 바르트 신학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 1937년부터 바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바르트의 지도하에 “속사도 교부들의 은혜 교리” 논문을 작성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존 베일리의 뒤를 이어 뉴욕 북부 오번 신학교에서 그리스도론 및 신학과 자연과학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강의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했다(1939년). 하지만 유럽 사회에 임박한 전쟁으로 에든버러로 돌아오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194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943년까지 스코틀랜드 알리스의 교구 목사로 사역했으며, 이후 군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복무하면서 삶과 죽음의 가장 첨예한 순간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종이 신학’(paper theology), 즉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지만 살고 죽는 인간의 실존을 논하기에는 부적합한 지극히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신학을 거절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마가렛 스피어와 결혼했고, 이듬해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비치그로브 교회에 부임하여 3년간 목회 사역을 했으며, 이 시기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사이의 자연신학논쟁을 풀기 위한 시도로 Calvin’s Doctrine of Man(1949)을 출간했다. 또한 저명한 신학 학술지 Scottish Journal of Theology를 잭 레이드와 함께 창간하여 27년 동안 공동 편집자로 함께했다. 1950년 에든버러 대학 뉴칼리지 교수가 되어 1979년까지 재직하면서 학문적 활동에도 집중했다. 1952년 번역팀을 조직하여 바르트의 Kirchliche Dogmatik를 영어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25년이나 이어졌다. 그가 1941년부터 1999년까지 직접 썼거나 번역 혹은 편집한 책과 논문은 633편이나 된다고 전해진다. 주요 저서로는 Theological Science(1969), Space, Time and Incarnation(1969), God and Rationality(1971), The Trinitarian Faith(1988),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One Being Three Persons(1996), Divine and Contingent Order(1998) 등이 있다. Theological Science가 영국의 신학, 윤리, 사회학 분야의 최고 작품으로 선정되어 ‘콜린스상’을 수상했으며,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도 수상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앙 및 직제 위원회 위원이자 스코틀랜드 교회 세례 위원회 의장,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교부와 종교개혁신학에 남다른 이해와 깊이를 가지고 개혁교회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대화를 주도했다. 목사, 신학자, 교수, 교회 활동가로서 지대한 공헌을 남겼으며, 생애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내면서도 신학적 관심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2007년 12월 2일 작고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토마스 F. 토렌스는 1913년 8월 30일, 중국 서부 쓰촨성 청두에서 중국내지선교회 파송 선교사인 토마스 토렌스와 애니 엘리자베스 토렌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두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부모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에든버러, 바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1934년 에든버러 대학의 뉴칼리지 조직신학 교수인 휴 로스 매킨토시에게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방법론’을 배우면서 칼 바르트의 신학을 소개받았고, 이는 바르트 신학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 1937년부터 바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바르트의 지도하에 “속사도 교부들의 은혜 교리” 논문을 작성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존 베일리의 뒤를 이어 뉴욕 북부 오번 신학교에서 그리스도론 및 신학과 자연과학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강의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했다(1939년). 하지만 유럽 사회에 임박한 전쟁으로 에든버러로 돌아오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194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943년까지 스코틀랜드 알리스의 교구 목사로 사역했으며, 이후 군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복무하면서 삶과 죽음의 가장 첨예한 순간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종이 신학’(paper theology), 즉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지만 살고 죽는 인간의 실존을 논하기에는 부적합한 지극히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신학을 거절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마가렛 스피어와 결혼했고, 이듬해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비치그로브 교회에 부임하여 3년간 목회 사역을 했으며, 이 시기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사이의 자연신학논쟁을 풀기 위한 시도로 Calvin’s Doctrine of Man(1949)을 출간했다. 또한 저명한 신학 학술지 Scottish Journal of Theology를 잭 레이드와 함께 창간하여 27년 동안 공동 편집자로 함께했다. 1950년 에든버러 대학 뉴칼리지 교수가 되어 1979년까지 재직하면서 학문적 활동에도 집중했다. 1952년 번역팀을 조직하여 바르트의 Kirchliche Dogmatik를 영어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25년이나 이어졌다. 그가 1941년부터 1999년까지 직접 썼거나 번역 혹은 편집한 책과 논문은 633편이나 된다고 전해진다. 주요 저서로는 Theological Science(1969), Space, Time and Incarnation(1969), God and Rationality(1971), The Trinitarian Faith(1988),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One Being Three Persons(1996), Divine and Contingent Order(1998) 등이 있다. Theological Science가 영국의 신학, 윤리, 사회학 분야의 최고 작품으로 선정되어 ‘콜린스상’을 수상했으며,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도 수상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앙 및 직제 위원회 위원이자 스코틀랜드 교회 세례 위원회 의장,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교부와 종교개혁신학에 남다른 이해와 깊이를 가지고 개혁교회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대화를 주도했다. 목사, 신학자, 교수, 교회 활동가로서 지대한 공헌을 남겼으며, 생애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내면서도 신학적 관심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2007년 12월 2일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