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라 했다.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로 생활이 궁핍하면 예절을 차릴 여유가 없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는 예절을 갖출 수 있다. 체면을 차리고 염치를 차릴 수 있다. 이런 뜻이니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점점 더 큰 의문이 생기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의식족이지예절이라는 언명 또는 원리에 관한 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염치는 매우 중요한 인간속성이다. 염치라는 속성이 인간생활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퇴화(退化)해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사는 게 풍족해진 풍요사회에 살게 되면서부터 역설적이게도 염치라는 인간속성이 퇴화의 길을 빠르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게 든다. 사회 전체의 몰염치세태가 걱정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국가의 거버넌스체제를 구성하는 중추세력들의 염치퇴화가 유독 더 두드러져 보인다. 나라의 거버넌스를 이끌어가는 세력들의 염치상실행태에 주목하고 몰염치사회의 민주질서 파행을 이 책의 주제로 삼아 약간 긴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학계를 향해 거버넌스 연구의 염치론적 접근방법을 제안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학술서적의 기준에 맞춰 꾸미지는 않았다. 당초부터 서술방식을 대중화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희대(稀代)의 몰염치풍조를 바라본 사람이 후대에 남기는 비망록이기도 하다. 정관계의 견디기 어려운 몰염치를 비판하다 보니 질책하는 어조(語調)가 강해진 점 독자들이 양해하기 바란다.
Contents
01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 11
02 공평사회로 가는 길을 헤맨다 185
03 와라가라 행정의 청산 221
04 다시 한 번 엽관주의에 대하여 243
05 개혁과 모방: 미국 CSC와 FBI의 모방 267
06 직업은 짧고 인생은 길다 283
07 저출산의 원인을 헤아려본다 295
08 대학의 영욕 317
09 인간과 인조물의 대결 341
부록 이런 생각 저런 생각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