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으로 50년을 살아온 제가 소녀들의 삶,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올 일상의 문제들을 가늠하며, 어떤 ‘살아가는 요령’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이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소설가 김훈 선생이 여성의 생리 장면을 묘사했던 것처럼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자동차 안에서 ‘뜨거운 생리혈이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상황을 맞이한 중년 여성이, 동생의 도움을 받아 생리대를 착용하는 모습을 긴박한 호흡으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생리혈은 뜨겁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터져나오지도 않습니다. 생리를 경험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작가는 생리대의 사용 방법도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속옷의 안쪽에 부착해서 ‘입어야’ 하는 생리대를, 속옷을 잘라내서 ‘붙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경험이 결핍된 상상력이 진실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생리를 말하는 것처럼,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의 영역과 그 경계는 너무나 명확해서, 모르는 것을 알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용기가 필요합니다. 앞의 소설의 경우, 작가가 여성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용기만 내었어도 그런 이상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항상 용기를 낸 사람들을 향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먼저 세상을 살았던 아빠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거기에 있습니다. 《소녀 기술》?은 우리 딸들이 앞으로 겪게 될 세상과, 경험하게 될 몇가지 일들에 대해 미리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가보지 않은 모든 길에 대한 경험은 직접 부딪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는 것이겠지만, 먼저 그 길을 지나가 본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하고, 그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권면이죠. 무엇보다 ‘누구’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은지, 즉 어떤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통찰의 기준을 정리해 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우리 딸들이,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떤 사람의 말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는 작은 토대를 마련한다면, 제게는 참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의 아빠들 대부분이 그다지 지혜롭지 못해서, 부모로서의 삶에 대해서든, 자신의 부모 자격에 대해서든, 아빠가 되는 순간이 다가오기까지는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은 상상 속의 인류에게 가능해 보입니다. 그저 우리들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신비로운 생명에 경탄하며, 모든 것이 서툰 초보 아빠, 그저 열정과 열심으로, 가족을 건사하는 본능으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어느 틈에 다 커버린 자녀와 자신의 사이에 놓인 벽을 마주하며, 지나간 순간들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사실 처음 저의 딸들을 향해 서툰 진심으로 써 내려간 당부의 말 몇 마디를 모아 ‘소녀 기술’이라는 이름의 책을 엮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호기로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빠라는 이름에 무게를 얹은 본능이 강권하는 그 부끄러움을 오롯이 감당하기로 결심한 것은, 별일 없이 지나가는 축복된 일상들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될 이별의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3년 사이에 아버님과 아내의 아버님 두 분과 이 세상에서 이별을 하고 나니 더욱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들려줘야 할 목소리와 전해야 할 글을 남기지 못한 채로 생의 마지막 시간에,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들지 않도록,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 딸들이 어리석은 선택과 잘못된 판단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생을 앞서 겪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꼭 들려주고 싶은 당부들을 엮고 묶어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멀고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냉철한 이성이 따뜻한 감성과 조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길고 머나먼 여행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머리에서 발까지의 여행일 것입니다. 마음먹은 일을 하기 위해 나의 몸을 움직이는 일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닙니다. 호메로스가 기록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구절 “살아가며 나의 손과 발로 이룬 것보다 영광스러운 것이 있으랴”는 말에 숨어있는 놀라운 통찰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책을 읽을 나의 딸들이 새롭게 머리부터 발까지의 길고도 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를 격려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여행의 중간에는 따뜻한 가슴도 숨쉬고 있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딸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지혜롭게 판단하되, 따뜻한 공감의 시선으로 옳지 않은 것에 맞서며, 아는 것은 함께 나누되 모르는 것은 묻는 용기를 갖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이뤄낼 수 있는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꾸고 지켜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Contents
1장_소녀의 몸
1 몸의 변화에 대해
변하는 몸을 주도하는 기술
2 외모와 ‘매력’에 대해
좋은 인상, ‘매력’의 기술
3 힘과 근력에 대해
‘힘’을 키우는 기술
4 머리와 신체의 협응에 대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기술
5 목소리와 톤, 얼굴과 인상의 ‘닮아감’에 대해
좋아하며 닮아가는 기술
6 남녀 차이, ‘공감’과 ‘공간’ 지각에 대해
다름을 포용하는 기술
7 섹스에 대해
서로를 지키는 기술
8 생리, 달거리와 월경통에 대해
통증을 줄이는 기술
9 내 몸 캔버스, 타투에 대해
후회를 예방하는 기술
2장_소녀의 마음
1 감성과 이성에 대해
감성이 논리를 품는 기술
2 지혜와 지식에 대해
지혜를 성장시키는 기술
3 ‘가스라이팅’에 대해
‘마음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술
4 우울증과 마음의 병에 대해
우울감을 흩뜨리는 기술
5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해
‘나’를 지키는 기술
6 ‘회복탄력성’에 대해
마음을 복원해 살리는 기술
7 불안감에 대해
불안에서 벗어나는 기술
8 행복에 대해
불행을 삭제하는 기술
9 감사하는 방법에 대해
‘마음 먹기’의 기술
3장_소녀의 생활
1 공간과 관계들에 대해
‘나의 공간’을 가늠하는 기술
2 시간과 행복에 대해
과거를 바꾸는, ‘선택’의 기술
3 이해한다는 것, 공감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는 친구가 되는 기술
4 미디어와 진실에 대해
사실들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기술
5 깊이 좋아한다는 것, 사랑에 대해
사랑을 지속하는 기술
6 중독에 대해
선한 것에 중독되는 기술
7 싸움의 기술에 대해
갈등 관리의 기술
8 MBTI, 나와 너의 소통에 대해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
Author
차새벽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 후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중퇴했다. 롯데그룹 계열 (주)대홍기획에서 AE(광고기획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교통방송(TBS 95.1Mhz) 공채 PD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한동안 연출을 쉬고, 김영편입학원과 메가스터디 기숙학원 등에서 영어 강의를 했던 특이한 이력이 있다.
미디어재단 TBS로 복귀하여, 〈김어준의 뉴스공장〉, 〈정연주의 라디오를 켜라〉, 〈경제발전소〉, 〈최영옥의 일요클래식〉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이 있고, 아내는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나날이)로 활동중이다. 현재, 프리랜서 PD로 국악FM(99.1Mhz)에서 일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 후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중퇴했다. 롯데그룹 계열 (주)대홍기획에서 AE(광고기획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교통방송(TBS 95.1Mhz) 공채 PD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한동안 연출을 쉬고, 김영편입학원과 메가스터디 기숙학원 등에서 영어 강의를 했던 특이한 이력이 있다.
미디어재단 TBS로 복귀하여, 〈김어준의 뉴스공장〉, 〈정연주의 라디오를 켜라〉, 〈경제발전소〉, 〈최영옥의 일요클래식〉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이 있고, 아내는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나날이)로 활동중이다. 현재, 프리랜서 PD로 국악FM(99.1Mhz)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