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에스토니아 땅인 러시아 제국령 리보니아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에스토니아(현재)의 타르투대학,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등에서 지질학과 화학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철학자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에게 매료되어 철학으로 전향한 뒤 다시 빈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지질학자와 수필가로 이름을 떨쳤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했고, 그 기록을 담은 『방랑하는 철학자(Reisetagebuch eines Philosophen』를 1919년에 발표해 유럽 지성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으며, 『방랑하는 철학자』는 전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로 떠올랐다. 러시아 혁명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난민으로 떠돌다 베를린 외곽의 비스마르크 가문 사유지에 은신했다.
비스마르크의 손녀와 결혼한 그는 독일 다름슈타트로 이주해 남은 재산으로 ‘자유 철학회(Gesellschaft fur Freie Philosophie)’와 ‘지혜의 학교(Schule der Weisheit)’를 설립하고 철학을 강의했다. 심리학자 카를 융, 신학자 폴 틸리히, 소설가 헤르만 헤세,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등이 ‘지혜의 학교’에 참여했으며, 개교식 강연을 맡았던 타고르와는 오래 논쟁하며 교류했다. 『방랑하는 철학자(Reisetagebuch eines Philosophen』 외 주요 저작으로 『Das Gefuge der Welt』(1906), 『Philosophie als Kunst』(1920) 등이 있다.
지금의 에스토니아 땅인 러시아 제국령 리보니아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에스토니아(현재)의 타르투대학,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등에서 지질학과 화학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철학자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에게 매료되어 철학으로 전향한 뒤 다시 빈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지질학자와 수필가로 이름을 떨쳤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했고, 그 기록을 담은 『방랑하는 철학자(Reisetagebuch eines Philosophen』를 1919년에 발표해 유럽 지성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으며, 『방랑하는 철학자』는 전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로 떠올랐다. 러시아 혁명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난민으로 떠돌다 베를린 외곽의 비스마르크 가문 사유지에 은신했다.
비스마르크의 손녀와 결혼한 그는 독일 다름슈타트로 이주해 남은 재산으로 ‘자유 철학회(Gesellschaft fur Freie Philosophie)’와 ‘지혜의 학교(Schule der Weisheit)’를 설립하고 철학을 강의했다. 심리학자 카를 융, 신학자 폴 틸리히, 소설가 헤르만 헤세,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등이 ‘지혜의 학교’에 참여했으며, 개교식 강연을 맡았던 타고르와는 오래 논쟁하며 교류했다. 『방랑하는 철학자(Reisetagebuch eines Philosophen』 외 주요 저작으로 『Das Gefuge der Welt』(1906), 『Philosophie als Kunst』(19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