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네 꽃잎이 피려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님의 <국화옆에서>는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내 이름은 김정국이다. 김춘수 시인의 큰아버지이신 내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국화 국자를 쓴다. 남자 이름 같은 내 이름이 참 싫었다. 이름으로 놀림 받던 어린 시절, 나도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 밤 마다 작명을 하며 놀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게 참 좋았다.
그렇게 살다가 내 인생의 위기를 맞으면서 내 삶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대학 졸업한 지 23년 만에 시험을 봐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난생처음으로 ‘나’라는 주체를 찾은 느낌이었다.
석사를 마치니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박사과정도 시작하여 2003년에 50이 넘어 박사 가운을 입고 충남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교육학과에서 학생들을 10여 년간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지냈다.
더불어 모래놀이 치료를 오랜 시간 공부해서 한국모래놀이치료학회 수퍼바이저, 국제 모래놀이 치료학회 티칭 멤버가 되었다. 운영했던 휴 부모자녀교육상담 연구소는 건강상의 문제로 접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생겨 예전에 썼던 글을 정리하고 또 쓰게 되었다.
40대 말 명상여행 길에서 썼던 버킷리스트에 쓰인 내 바람들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책 출판하는 일은 20여 년이 지난 만 70이 넘은 나이에 이루게 되었다. 70대란 나이가 참 좋다.
어여쁜 네 꽃잎이 피려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님의 <국화옆에서>는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내 이름은 김정국이다. 김춘수 시인의 큰아버지이신 내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국화 국자를 쓴다. 남자 이름 같은 내 이름이 참 싫었다. 이름으로 놀림 받던 어린 시절, 나도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 밤 마다 작명을 하며 놀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게 참 좋았다.
그렇게 살다가 내 인생의 위기를 맞으면서 내 삶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대학 졸업한 지 23년 만에 시험을 봐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난생처음으로 ‘나’라는 주체를 찾은 느낌이었다.
석사를 마치니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박사과정도 시작하여 2003년에 50이 넘어 박사 가운을 입고 충남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교육학과에서 학생들을 10여 년간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지냈다.
더불어 모래놀이 치료를 오랜 시간 공부해서 한국모래놀이치료학회 수퍼바이저, 국제 모래놀이 치료학회 티칭 멤버가 되었다. 운영했던 휴 부모자녀교육상담 연구소는 건강상의 문제로 접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생겨 예전에 썼던 글을 정리하고 또 쓰게 되었다.
40대 말 명상여행 길에서 썼던 버킷리스트에 쓰인 내 바람들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책 출판하는 일은 20여 년이 지난 만 70이 넘은 나이에 이루게 되었다. 70대란 나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