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地圖集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朝鮮全圖 47장을 63매로 원색 영인한 것이다. 지도는 구분의 편의를 위해 소형, 중형, 대형, 초대형으로 나누고 각각 청구기호 순으로 배열하였다. 열람과 지명 색인의 편의를 위해 대형은 2장으로, 초대형은 4장으로 나누어 전도와 함께 수록 하였다. 도판은 소형은 16절지의 크기로, 중형 이상은 4·6판 전지의 크기로 영인하였다. 지도 뒷면에는 지도 이름(영문 포함), 서명(영문 포함), 청구기호, 지도 크기, 제작 형태를 표시 하였다. 지도 하단에는 지도 이름과 서명을 한자와 영문으로 기록하였으며, 청구기호를 첨가하였다. 지도의 제작 연대와 제작자는 도판에는 수록하지 않고, 해설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도 이름은 〈 〉로, 서명은 《 》로 표시하였으며, 지도 이름이 없는 경우는 [ ]으로 구분하고 조선전도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국내외 한국학연구의 진흥과 소장 자료의 과학적 보존·관리를 위하여
2006년 2월에 기존의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를 합쳐 새로이 출범한 기관입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역사적 기원은 조선후기의 왕립 학술기관이었던 규장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장각奎章閣’의 ‘奎’자는 천체天體 이십팔수二十八宿의 하나로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의 이름이다. 고대 중국에서 제왕帝王의 글을 ‘규장奎章’ 이라 부른 연유로, 조선에서 왕의 초상화·친필·저술·인장 등을 보관하는 건물을 규장각이라 이름 지었다.
1776년 정조正祖가 제22대 군주로 즉위한 직후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한 규장각은 역대 왕의 글·글씨·그림, 왕실의 족보 등을 보관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전임專任 문신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기능, 국정 운영의 참고 자료인 국내외 전적典籍을 수집 ·보관하는 기능, 서적을 출판하는 기능을 담당하였고, 한 때는 각신閣臣들이 왕의 친위세력을 형성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여하기도 했다.
국내외 한국학연구의 진흥과 소장 자료의 과학적 보존·관리를 위하여
2006년 2월에 기존의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를 합쳐 새로이 출범한 기관입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역사적 기원은 조선후기의 왕립 학술기관이었던 규장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장각奎章閣’의 ‘奎’자는 천체天體 이십팔수二十八宿의 하나로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의 이름이다. 고대 중국에서 제왕帝王의 글을 ‘규장奎章’ 이라 부른 연유로, 조선에서 왕의 초상화·친필·저술·인장 등을 보관하는 건물을 규장각이라 이름 지었다.
1776년 정조正祖가 제22대 군주로 즉위한 직후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한 규장각은 역대 왕의 글·글씨·그림, 왕실의 족보 등을 보관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전임專任 문신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기능, 국정 운영의 참고 자료인 국내외 전적典籍을 수집 ·보관하는 기능, 서적을 출판하는 기능을 담당하였고, 한 때는 각신閣臣들이 왕의 친위세력을 형성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