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생'은 어떻게 '일하는 인생'을 구원하는가?
직장생활이 눈물 쏙 빠지게 힘들 때
그 눈물을 닦아주는 '활자들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어느 날, 오늘 하루만 나를 대신해 출근할 아바타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단, 그 아바타는 책들 속 주인공으로 한정돼 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화자를 고를 것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의 요조가 회식 자리에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자. ‘익살’이란 가면을 쓰고 그 시간을 용케도 잘 버텨내면서 내면에 큰 수치심과 괴리감, 시대와의 불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면 요조가 미친 척 발광에 실성한 척을 해대서 그 술자리는 일찍 파해 2차까지 가지 않아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다음날 내가 대신 그 민망한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고통은 있다.
아니면 『빨간머리 앤』의 주인공 앤을 보내 하루종일 수용초과의 투머치 토크를 건네, 상사가 다시는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건 어떨까? 이 또한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책 속의 어떤 주인공이든 오늘의 나를 대신해 회사 생활을 한다면 일은 망치겠지만 하루를 망치지는 않겠다는 묘한 쾌감이 든다.
일터에서 비루해지고, 초라해지고, 남루해지며, 처참과 비참, 비탄을 느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삶의 장르 자체가 회색빛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당당하게, 멋있게, 직업윤리를 지키며 자아 성장을 도모해 줄 것이라 믿었던 무지갯빛 일터는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
바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다. 날카로운 굴욕과 치욕, 모멸과 너절함이 마음을 땅 밑으로 꺼지게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생계에 대한 중압감이 허무와 절망으로 누를 때. 그럴 때 저자는 순전히 도피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할 줄 아는 게 읽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일 생각 좀 떨쳐버리고 싶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때 눈물을 삼키며 읽은 ‘도망간 곳에서 찾은 활자’들의 기록들이다.
Contents
차례
당신은 일터에서 울어본 적이 있나요?
1부. 나를 붕괴시키는 일
건배사에 학을 떼는 당신에게 _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1지망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면 _이진경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저 이런 일 할 사람 아닌데요 _레이먼드 카버 『비타민』
익스트림 롱쇼트로 일을 바라보면 _조제프 퐁튀스 『라인: 밤의 일기』
#퇴근길 농담 _일이 내면의 바다를 위협할 때는
일터에서 죽기 살기로 용기내야 할 때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동료가 망하면 기분이 좋아요 _티파니 와트 스미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현대판 계급 지도, 직업등급표에 기죽지 않으려면 _스탕달 『적과흑』
나는 예뻐야 하는가, 유능해야 하는가 _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퇴근길 농담 _상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4부. 매너리즘에 빠진 그대에게
사람을 뒤틀리게 만드는 일 _니콜라이 고골 『외투』
원치 않는 부서로의 인사 이동이 괴롭다면 _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퇴근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만 하는 당신에게 _솔 벨로 『오늘을 잡아라』
일의 야만과 모순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나 _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반복은 광휘를 만든다 _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퇴근길 농담 _일터에 이데아는 없다
5부. 끝과 시작, 다시 일
죽기 전에 과연 일 생각이 날까 _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욱해서 퇴사하고 싶을 땐 _아데레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우리는 일로 연결되어 있다 _조지 오웰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일터의 연극은 언젠가 끝난다 _프란츠 카프카 『단식광대』
자, 이제 눈물을 뚝 그치고
Author
구채은
1985년에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아시아경제 정치부 기자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해왔지만 뼈기자(기자 일이 천직인 기자)가 아니라 순살기자(생계형 기자)다. 본캐는 기자지만, 부캐는 심리학자, 예술가 지망생이다. 2021년 ‘씨티 대한 민국 소비자금융 부문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2018 년 ‘한국상담심리학회 차세대 연구자상’을 받았다. 한때 문청이었다. 지금도 텍스트로 된 모든 것을 추앙한다. 책을 사랑하지만 독서는 늘 미완이라 느낀다. 진정한 읽기는 활자에 서린 정신이 삶에 스며, 행동으로 나타날 때 완성된다고 믿어서다.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고, 읽음과 행함 사이의 거리를 응시하며 살고자 한다.
1985년에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아시아경제 정치부 기자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해왔지만 뼈기자(기자 일이 천직인 기자)가 아니라 순살기자(생계형 기자)다. 본캐는 기자지만, 부캐는 심리학자, 예술가 지망생이다. 2021년 ‘씨티 대한 민국 소비자금융 부문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2018 년 ‘한국상담심리학회 차세대 연구자상’을 받았다. 한때 문청이었다. 지금도 텍스트로 된 모든 것을 추앙한다. 책을 사랑하지만 독서는 늘 미완이라 느낀다. 진정한 읽기는 활자에 서린 정신이 삶에 스며, 행동으로 나타날 때 완성된다고 믿어서다.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고, 읽음과 행함 사이의 거리를 응시하며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