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생. 1966년부터〈동아일보〉에 “코리안의 고동”으로 산업화ㆍ국제화를 선도하고, 1980년대 “김진현 칼럼”으로 격랑의 민주화를 비춘 언론인이었다. 과기처 장관, 서울시립대 총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연구원 신설을 시작으로 해양, 과학기술, 미래 등 10개 연구기관 창설의 책임자였다.
세계화추진공동위원장,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과 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역임하고 이봉창ㆍ안재홍ㆍ장준하기념사업회 창립회장으로, 이승만ㆍ장면 선생 기념사업회와 김구ㆍ김성수ㆍ조봉암 기념행사에도 참여해 대한민국 중심주류 찾기, 만들기에 힘썼다.
1980년대부터 김수환, 강원룡, 이한빈 선생의 가르침으로 NGO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송월주 스님, 서경석 목사, 박세일 교수와 함께 경제, 통일, 평화, 환경 등과 관련한 20여 개 NGO 민간단체 창립 또는 대표로 봉사했다.
14권의 저서(영문 2권), 7권의 역서, 110여 편의 논문과 약 3천 편의 글을 썼다.
1936년생. 1966년부터〈동아일보〉에 “코리안의 고동”으로 산업화ㆍ국제화를 선도하고, 1980년대 “김진현 칼럼”으로 격랑의 민주화를 비춘 언론인이었다. 과기처 장관, 서울시립대 총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연구원 신설을 시작으로 해양, 과학기술, 미래 등 10개 연구기관 창설의 책임자였다.
세계화추진공동위원장,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과 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역임하고 이봉창ㆍ안재홍ㆍ장준하기념사업회 창립회장으로, 이승만ㆍ장면 선생 기념사업회와 김구ㆍ김성수ㆍ조봉암 기념행사에도 참여해 대한민국 중심주류 찾기, 만들기에 힘썼다.
1980년대부터 김수환, 강원룡, 이한빈 선생의 가르침으로 NGO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송월주 스님, 서경석 목사, 박세일 교수와 함께 경제, 통일, 평화, 환경 등과 관련한 20여 개 NGO 민간단체 창립 또는 대표로 봉사했다.
14권의 저서(영문 2권), 7권의 역서, 110여 편의 논문과 약 3천 편의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