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는 게 지겨울 때, 바쁜 일정에 쫓겨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 누구나 한 번씩은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영양소가 충분한 알약 하나로 식사를 끝낼 수는 없을까?’ 이 상상력이 구현되지 않은 이유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인간은 그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자 한다는 것이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마우스필―음식의 맛과 향과 질감이 어우러질 때 우리 입이 느끼는 것》은 과학자와 요리사가 함께 쓴, ‘먹는 즐거움’에 대한 과학적 탐구다.
마우스필, 음식을 먹는 즐거움
우리는 음식의 맛이라고 느끼는 것이 다섯 가지의 맛, 즉 신맛, 단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요리 한 접시 혹은 한 끼 식사가 감각에 남겨준 느낌은 기억하기도 힘들뿐더러 제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심한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을 때 경험해봤듯이, 우리가 음식의 맛이라고 느끼는 것은 종종 향과 뭉뚱그려져 있기도 한 까닭이다. 그런데 과연 이뿐일까? 바삭하다, 아삭하다, 끈적거린다, 부드럽다, 폭신하다, 포슬하다, 질겅거린다 등 우리가 음식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많은 단어가, 음식의 맛이나 향보다는 음식이 ‘입안’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묘사한다. 음식의 질감과 관련이 있는 이런 느낌이 바로 ‘마우스필mouthfeel’이다.
먹는 즐거움은 상당 부분 이 마우스필과 관련이 있는데, 갓 구운 바삭한 빵을 먹는 느낌과 하루쯤 방치해 질겨진 빵을 먹는 느낌을 비교해보면 알 것이다. 아니면, 바삭한 번과 포슬한 패티, 아삭한 채소의 식감이 살아 있는 햄버거를 먹는 것과 이 모든 재료를 블렌더에 갈아서 먹는 것을 상상해보자. 후자는 동일한 재료, 동일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걸 먹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음식이 주는 마우스필은 우선적으로는 그 식재료의 생물학적?물리적 원천에서 발생한다. 육류 음식을 먹을 때의 마우스필과 곡물이나 채소가 주는 마우스필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음식이란, 가정에서 먹는 소박한 집밥이든 파인다이닝에서 먹는 코스 요리든,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마우스필을 내기 위해 섬세하게 고안된 발명품이다. 즉, 완벽한 식사는 식재료의 특성과 조리 과정에 작용하는 과학에 관한 이해, 그리고 이를 구현해낼 수 있는 경험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이 과학자와 요리사의 공저여야 했던 이유다.
음식과 요리, 놀라운 과학의 세계
이 책의 전반부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몸의 감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식재료와 음식의 물적 토대에 관한 과학적 탐구다.
1장 ‘맛과 풍미의 복잡한 우주’는 우리가 음식을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생화학적 과정과 음식의 맛, 향, 질감, 온도, 운동 등을 감지할 때 관여하는 감각의 상호작용을 훑는다. 2장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는 식물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의 기본적인 생물학적?화학적 양태를 설명한다. 그 생물학적 유래나 화학적 구성과 더불어 음식의 다양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물리적 특성인데, 식용 분자와 물 등의 구조와 비율이 음식의 질감을 결정함을 알 수 있다. 3장 ‘음식의 물리적 특성: 형태, 구조, 질감’은 액체, 기체, 고체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음식의 기본적 형태와 그것이 마우스필에 끼치는 작용을 설명한다.
과학적 내용을 오랜만에 접하는 독자라면 이런 접근과 과학 용어가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학교 과학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본다는 생각으로 조금만 끈기를 갖고 읽기 시작하면 그 내용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또한 어느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에 관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답고 역동적인 미시 세계가 열리면서 눈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요리하기, 마우스필 창조하기
4장 ‘질감과 마우스필’, 5장 ‘마우스필 제대로 즐기기’, 6장 ‘질감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들어가기’에서는 앞서 살펴본 과학의 내용이 실제로 구현된 음식과 요리의 세계를 탐색한다. 본격적으로 음식의 질감과 마우스필, 다양한 마우스필을 일으키는 물리적?화학적 조건, 그리고 실제로 이것들이 적용된 동서양의 다채로운 요리들이 한 상 가득 펼쳐진다.
요리는 마우스필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이다. 음식의 맛과 향은 식재료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에 상당히 기대지만, 마우스필만은 (재료 손질을 포함해) 조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속은 부드럽되 겉은 바삭하게 고기를 굽기 위해 열을 이용하는 것, 또는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 부드러운 수프에 크루통을 넣는 것을 가장 간단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마우스필을 창조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해낸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데, 녹말과 유화제, 당과 지방, 겔과 효소, 입자와 기포 등 우리가 매일처럼 즐기는 음식이 얼마나 다양한 질감과 마우스필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며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전 세계의 음식을 실제로 살펴보면서 그 특징적인 마우스필이 주는 즐거움을 전한다. 콩과식물과 곡류, 채소, 육류와 가금류 및 생선처럼 일반적으로 즐기는 식재료를 조리해 놀라운 마우스필을 내는 음식들은 물론, 음료나 디저트가 주는 재미있는 마우스필이 어떤 과학적 작용의 결과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음식의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게 된다.
음식의 질감과 마우스필을 탐구하는 이 여정에는 50개의 레시피도 펼쳐진다. 우리에겐 낯선 식재료나 조리법일 수 있지만, 새로운 마우스필을 창조해보는 재미있는 실험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4
들어가며 12
chapter 1. 맛과 풍미의 복잡한 우주
입과 코,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15
마우스필: 총체적 풍미 경험의 중심 요소 20
떫은맛과 고쿠미: 정확하게 ‘마우스필’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무언가 26
감각 혼란 28
마우스필과 다른 감각 인상들 간의 상호작용 29
신경-미식학: 풍미는 모두 뇌 안에 있다 32
chapter 2.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생명의 나무로부터 온 음식 42
식용 분자 58
생체 연성 물질 63
물: 상태가 안정적인 동시에 다재다능한 66
가공식품 70
합성 식품: ‘음音 조합식 요리’ 70
chapter 3. 음식의 물리적 특성: 형태, 구조, 질감
구조와 질감 74
고체, 액체, 기체로서의 음식 76
더 복합적인 상태들 76
음식이 형태, 구조 및 질감을 바꿀 때 90
chapter 4. 질감과 마우스필
음식을 씹을 때, 우리는 ‘미각 근육’을 쓰고 있다 93
질감은 무엇인가 94
질감을 묘사하는 법 99
질감 바꾸기 107
chapter 5. 마우스필 제대로 즐기기
식재료 변형하기 110
열과 온도 112
병이나 캔 안에서의 질감 116
녹말: 매우 특별한 종류의 증점제 116
에멀션과 유화제 119
겔과 겔화 120
검 132
효소가 질감에 끼치는 영향 134
식품 속 당들 136
식품 속 지방들 137
놀랍도록 다양한 우유의 질감 145
놀라운 달걀 152
유리 상태의, 윤기 있는 음식 155
음식 속 입자들 163
음식 속 기포 171
부드러움에서 딱딱함으로, 그리고 되돌리기 180
chapter 6. 질감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들어가기
콩과식물, 대두 및 새싹 189
새로운 질감의 요리 창조하기 190
씹는 질감이 있는 채소 195
쓰케모노, 혹은 크런치한 요리의 기술 199
다양한 질감의 곡물과 씨앗 201
소스의 비밀 209
수프의 마우스필 213
쫄깃한 반죽을 바삭한 빵으로 바꿔내기 215
바삭한 껍질과 크런치한 뼈 219
부패하기 쉬운 것의 질감 236
맛 도전: 몇몇 특별한 해산물 242
빙과: 가루, 크리미한 것부터 씹는 맛이 있는 것까지 252
맛이 폭발하는 질감 257
chapter 7. 왜 우리는 그 음식을 좋아할까
즐거움과 쾌락주의 269
음식과 맛에 대한 모험심 270
질감, 음식 선택, 그리고 질감에 대한 허용 271
완벽한 식사 272
에필로그 | 삶을 위한 마우스필과 맛 275
참고문헌 277
도해 판권 281
찾아보기 282
Author
올레 G. 모우리트센,클라우스 스튀르베크,정우진
올레 G. 모우리트센 Ole G. Mouritsen 모우리트센은 저명한 과학자이며 남덴마크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의 생물물리학과 교수다. 덴마크 맛 센터Danish Center for Taste(노르디아 재단Nordea Foundation 지원의 다학제 프로젝트인 ‘Taste for Life’)와 생체막 물리학 센터Center for Biomembrane Physics(MEMPHYS)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며, 덴마크 미식학 아카데미Danish Gastronomical Academy의 대표다. 저서로는 《감칠맛: 다섯 번째 맛의 비밀을 풀다Umami: Unlocking the Secrets of the Fifth Taste》(2015), 《해초: 먹을 수 있고, 유용하며, 지속가능한Seaweeds: Edible, Available, and Sustainable》(2013), 《스시: 눈과 몸, 영혼을 위한 음식Sushi: Food for the Eye, the Body, and the Soul》(2009)가 있다.
올레 G. 모우리트센 Ole G. Mouritsen 모우리트센은 저명한 과학자이며 남덴마크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의 생물물리학과 교수다. 덴마크 맛 센터Danish Center for Taste(노르디아 재단Nordea Foundation 지원의 다학제 프로젝트인 ‘Taste for Life’)와 생체막 물리학 센터Center for Biomembrane Physics(MEMPHYS)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며, 덴마크 미식학 아카데미Danish Gastronomical Academy의 대표다. 저서로는 《감칠맛: 다섯 번째 맛의 비밀을 풀다Umami: Unlocking the Secrets of the Fifth Taste》(2015), 《해초: 먹을 수 있고, 유용하며, 지속가능한Seaweeds: Edible, Available, and Sustainable》(2013), 《스시: 눈과 몸, 영혼을 위한 음식Sushi: Food for the Eye, the Body, and the Soul》(200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