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불신에서 시작되지만, 모든 불신이 같은 것은 아니다. 정부의 독재적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없다면 건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주적 불신과 파괴적 불신은 구별되어야 한다. 민주적 불신이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파괴적 불신은 사회적 관계를 해치고 정치적 극단주의를 초래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나타난 ‘불신 공동체’ 현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진보와 보수, 페미니스트와 종말론자, 의사와 실업자 등 평소라면 결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이질적 구성원들이 백신 정책에 대한 ‘불신’이라는 이름 아래 결집했다. 한편, 자기 진영의 목소리만을 맹신하며 상대 진영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배타적 부족주의 역시 정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언제부터 불신은 도를 지나치게 되었을까?
이 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불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특히 불신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지, 불신 공동체에는 어떤 유형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와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장애 정의론’이다. 주목할 점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불신 공동체와 유사한 구조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뭉친 이질적 연대가 있다면, 이들은 편견 없이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불신의 공동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책은 불신 공동체에서 장애 정의론에 이르는 폭넓은 탐색을 통해 불신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Contents
서문 (문성훈)
1부 쟁점 - 불신의 공동체
불신 사회 (그레타 바그너)
‘크베어덴켄’ 하향혼인을 유발한 불신 (지니 모저)
정치이론의 시험대에 선 음모설 (에바 마를레네 하우슈타이너)
갈등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 국가, 거리, 조직된 불신 (파반 쿠마르 말레디)
독재와 민주주의에서의 불신 (우테 프레베르트)
2부 한국판 특집 - 장애를 생각하다
시혜가 아니라 정의를! 장애의 정의론 (정대훈, 오근창)
장애(인)에 대한 정의론 (목광수)
장애와 의료기술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성찰 (추정완)
타자로서 장애인을 위한 정의론의 이론적 기초 (조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