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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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9/30
Pages/Weight/Size 153*225*22mm
ISBN 9791191757194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목민심서》는 오늘의 공무원들이 반드시 한 번 읽어 둘 필요가 있는 명저이다. 목민(牧民)이란 임금이나 수령이 백성을 다스려 기름을 말한다. 어린 것과 어리석은 것을 포함한 선량한 백성의 관리들, 특히 수령들이 어떻게 백성을 훈도하고 계몽하고 선도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기록했다. 본서는 오직 다산 정약용의 실학자적 사고의 태도를 알아보고 전문가적 고증(考證)이나 훈고(訓?)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일반 독자에게 원문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 긴 설명문이나 예거(例擧)는 많은 부분 생략하였고, 쉬운 말을 사용하여 어려운 어구에는 간단한 주를 붙여 독자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Contents
범례
목민심서 해설
자서自序

제1장 부임육조
제2장 율기육조
제3장 봉공육조
제4장 애민육조
제5장 이전육조
제6장 호전육조
제7장 예전육조
제8장 병전육조
제9장 형전육조
제10장 공전육조
제11장 진황육조
제12장 해관육조

정약용 소전小傳
연보
Author
정약용,남만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