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항 VS 일지매, 법을 수호하는 자와 위반하는 자의 대결
100년 전 대중이 상상한 정의로운 현실은 무엇일까?
딱지 시리즈 6편은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이다. ‘일지매’는 홍길동과 더불어 조선의 대표적인 도둑 캐릭터 중 하나인데, 백성을 착취하여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이들만 노리고, 훔친 재물을 모두 가난한 자에게 분배한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도적놈이란 것은 주색잡기에 쫓기어서도 도적질을 하옵고 또는 기갈(飢渴)에 견디다 못해서 도적질하는 놈도 있습니다. 그놈들은 진정으로 남의 재물을 도적해다가 주색잡기에도 소비하고 기갈도 면하지요마는, 소인은 도적질을 할 망정 그런 짓은 하는 일이 없삽고 오직 곤궁한 백성들을 구제할 뿐입니다. 고리대금을 해서 모은 부자라든지, 소작인의 고혈을 긁어서 욕심을 채운 사람이든지, 수령 방백으로서 잔학하게 불법으로 모은 재산가라는 사람들이 누구 하나 구제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본문 中
뛰어난 도둑에게는 그에 걸맞은 맞수가 필요한 법. 일지매의 라이벌로 짝지어진 대상은 포도청의 총책임자인 포도대장이다. 일지매의 인기를 증명하듯 일지매에 관련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일지매의 맞수라 할 만하지!”라며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인물, 일지매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을 찾아내려다 보니 포도대장 역할은 여러 번 바뀌게 된다. 이번 딱지 시리즈 6편의 원본인 1929년 대성서림에서 나온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 실긔(捕盜大將張志恒과義盜一枝梅實記)』에서 포도대장 역할을 맡은 이는 장지항이다. 그는 뛰어난 자질을 바탕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부터 시작해 말년에는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영·정조대에 걸쳐 포도대장을 지낸 실존 인물이다.
장지항과 일지매의 만남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실력자와 대중이 희구하는 의적(義賊)형 캐릭터 간의 대결이며, 그들은 각각 법으로 구현되는 정의와 이러한 법이 미칠 수 없는 사각지대를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장지항과 일지매를 나란히 두는 구도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의 해결책으로도 해석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