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특수하고 심화된 주제의
터부와 금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에 관한
프로이트의 네 편의 논문
『토템과 터부』는 프로이트가 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이마고]에 발표한 네 편의 논문을 엮어 출간한 책이다. 논문은 「근친상간 기피 현상」, 「터부와 감정 자극의 양가성」, 「애니미즘, 주술과 생각의 만능」, 「토테미즘의 유아기적 회귀」로 서로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각각 특수하고 심오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미개인들과 정신질환자의 심리적 특징이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게 정신분석학과 인류학적 증거들을 수집하다보니 점차 정신분석학의 인류문화사 전반에 대한 적용으로 확장되었다. 첫 번째 논문에서는 미개인들의 근친상간 금지와 족외혼의 관계를 알아보며 토템과 연관된 그들의 풍습을 연구하였다. 또한, 토테미즘에 따른 터부는 오늘날 강박신경증 환자의 접촉 기피나 정화로서의 씻기 행위와 유사하다는 주장에 이른다. 두 번째 논문에서는 미개인에게 그 어떤 종교적, 도덕적 규율보다 오래된 규정인 터부와 강박신경증 환자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비교한다. 세 번째 논문에서는 애니미즘을 종교적 세계관의 전 단계로 파악하며 애니미즘을 지배하는 원리로 ‘생각의 만능’을 들었다. 네 번째 논문에서는 ‘원시 유목민’을 통해서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해 왔는가를 설명한다. 여기서 친부 살해라는 신화를 통해 근친상간과 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한다. 또한, 그 안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깊이 뿌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이 연구의 서문에서 토템과 터부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몇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연구와 주장에는 대부분 추론적 증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미개인들의 풍습에 관해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정신분석학과 비교 분석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이며, 사유의 폭을 넓혀 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