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로의 기하학 원론의 출발은 유클리드 원론의 논리-연역적 전개 방식이 초보자에게 부과하는 어려움과 무미건조함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다. 클레로 이전에도 유클리드의 연역적인 방법에 맞서 분석적?발생적 원리에 입각한 대안적 접근이 있어왔지만, 수학사를 근거로 하여 학습 내용과 활동을 조직하는 역사발생적 원리를 구현한 최초의 기하 교재라는 점에서 이 책은 수학교육학적으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유클리드의 원론에 가해진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학사 및 학교 수학에서 차지하는 유클리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 책은 수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연혁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듯이, 클레로는 이렇듯 의미 있는 책을 저술하기에 충분한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고 그가 책을 저술한 의도는 기존 기하 교재의 전개 방식을 문제시하여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가 기존 기하 교재에 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유클리드 기하에 대한 것으로, 유클리드 기하의 논리-연역적인 전개 방법은 무미건조하고 학습자를 질리게 만들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명제를 제시한 후 그 명제의 응용을 다룸으로써 기하의 유용성을 통해 유클리드의 전개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한 것으로, 이 경우 역시 정리가 응용에 선행하므로 정신이 학습의 무미건조함을 참아내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응용을 통해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역시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클레로는 수학사에서 첫 발견이 이루어진 당시 발견자들 자신이 바로 초보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들이 경험한 방식대로 토지 측량이라는 필요에 의해 시작하고 점차적으로 형식화한다는 수학의 전개 방식이 훗날의 초보자인 수학 학습자에게도 흥미를 유발시키는 자연스러운 학습 전개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정신에 자연스럽도록 한다는 대원칙 하에 학습자를 위한 최선의 수학 학습법을 수학의 역사에서 찾은 것이다.
Contents
Chapter 1
토지를 측량하기 위해 사용한
가장 자연스러웠던 방법
Chapter 2
다각형을 비교하는 기하학적인 방법
Chapter 3
원형 도형의 측정과 그 성질
Chapter 4
입체와 그 표면을 측정하는 방법
Author
Alexis Claude Clairaut,장혜원
클레로(Alexis Claude Clairaut)는 1713년 5월 7일 파리에서 태어나서 1765년 5월 17일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아버지 J.B.클레로(Jean-Baptiste Clairaut)는 베를린 아카데미 소속의 뛰어난 수학 대가였고 그 덕택에 꼬마 클레로는 매우 일찍이 수학과 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클레로는 경탄하리만큼 천부적이고 조숙하여, 10세의 나이에 이미 병원 후작의 <원추 단면의 해석학적 특성: Traite analytique des sections coniques>을 읽었고, 곧이어 <무한소의 해석학: Analyse des infiniment petits>을 읽었다. 1726년에는 뚜렷한 특성을 지닌 네 개의 곡선에 대한 논문을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하였고, 그 논문은 에 출판되었다.
클레로는 겨우 16세의 나이에 <이중 곡률의 곡선에 대한 연구: Recherches sur les courbes double courbure>란 제목의 대논문을 아카데미에 제출하였는데, 아카데미가 심사를 의뢰한 도르투스(Jean-Jaques Dortous de Mairan)와 니콜(Franois Nicole)은 이 논문을 일등급으로 간주하였다. 재차 심사를 맡은 수학자 프리바(Joseph Privat de Molieres)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며 최상의 경의를 표하였다. 1731년에 클레로는 왕의 승인 덕분에 아카데미 회원으로 수락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18세에 불과했는데, 아카데미의 법규에는 회원의 나이가 적어도 20세여야 한다는 요구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1736년에 클레로는 모페르튀(Maupertuis), 카뮈(Camus), 우티르(Outhier), 르모니에(Lemonnier), 셀시우스(Anders Celsius)와 함께 자오선 각도의 길이를 재기 위해 랩랜드로 파견되었다. 그 결과, 카시니(Jacques Cassini)와는 반대로 극지방에서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모페르튀와 함께 발레리앙산으로 들어가 중요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1740년에 <천체 운동에 대한 논문집: Recuelt de memoires sur les mouvements des corps celestes>을, 1741년에 <기하학 원론: Elements de Geometrie>을, 1743년에 유체의 평형에 대해 논한 <지구 형태론: Theorie de la figure de la terre>을, 1746년에 <대수학 원론: Elements d'Algebre>을 집필하였고, 1752년에는 인력의 법칙으로부터 추론된 <달의 이론: Theorie de la lune>을 써서 생페테스부르크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754년에 중력이론에 따라 계산된 <달의 수표: Tables de la lune>를 출간하였다.
클레로는 핼리 혜성의 회귀에 대해, 그것이 지나야하는 이웃에 있는 목성, 토성의 감속 운동을 계산상 고려하여 예측하였다. 혜성의 근일점이 예측한 1759년 4월 초순이 아닌 5월 12일에 발생했기 때문에 예측이 실제보다 며칠 앞서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현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게다가 <혜성의 운동에 관한 이론 및 1531, 1607, 1682, 1759년에 관찰된 혜성에 대한 이 이론의 적용: Theorie du mouvement des cometes avec l'application de cette theorie a la comete qui a ete observee dans les annees 1531, 1607, 1682, 1759(1760)>과, <지구 둘레의 태양의 가시 궤도에 대한 논문: Memoire sur l'orbite apparente du soleil autour de la terre(1761)>을 냈다. 이 저서들 이외에 <과학 아카데미 논문집: Memoires de l’Academie des sciences>과 <지식인의 잡지: Journal des savants>에서 발견되는 해석학, 공학, 광학을 주제로 한 많은 연구도 하였다.
우리가 재인쇄하는 <기하학 원론>(편집자 주: 우리가 재발간한 책은 초판과 동일하지만 표현상의 몇 가지 교정에 의해 구별되는 1765년 판이다.)이 존재할 수 있던 것은 기하의 기본 개념을 획득하려는 샤틀레(Chtelet) 공작의 욕망 덕분이다. 결국 하나의 훌륭한 저서로부터 수학적 문헌이 풍부해졌다. 왜냐하면 클레로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기초 위에 기본 기하를 세우려는 헛된 시도를 포기하고 이 주제를 제시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현학적이고 난해한 수단을 버리면서, 가장 중요한 기하학적 진리를 추론의 완전한 정당함을 갖추고 우아하고 정확한 형태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요소와 직관적인 요소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그의 기하학은 기하학이 습관처럼 입고 있던 기이한 특성을 버리고 정신의 자연스런 절차에 잘 따르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 <원론>이 가장 간단하고 가장 자연스런 경로에 의해 기하의 진리를 획득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초보자에게도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클레로(Alexis Claude Clairaut)는 1713년 5월 7일 파리에서 태어나서 1765년 5월 17일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아버지 J.B.클레로(Jean-Baptiste Clairaut)는 베를린 아카데미 소속의 뛰어난 수학 대가였고 그 덕택에 꼬마 클레로는 매우 일찍이 수학과 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클레로는 경탄하리만큼 천부적이고 조숙하여, 10세의 나이에 이미 병원 후작의 <원추 단면의 해석학적 특성: Traite analytique des sections coniques>을 읽었고, 곧이어 <무한소의 해석학: Analyse des infiniment petits>을 읽었다. 1726년에는 뚜렷한 특성을 지닌 네 개의 곡선에 대한 논문을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하였고, 그 논문은 <Miscellanta Bertlonensta IV>에 출판되었다.
클레로는 겨우 16세의 나이에 <이중 곡률의 곡선에 대한 연구: Recherches sur les courbes double courbure>란 제목의 대논문을 아카데미에 제출하였는데, 아카데미가 심사를 의뢰한 도르투스(Jean-Jaques Dortous de Mairan)와 니콜(Franois Nicole)은 이 논문을 일등급으로 간주하였다. 재차 심사를 맡은 수학자 프리바(Joseph Privat de Molieres)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며 최상의 경의를 표하였다. 1731년에 클레로는 왕의 승인 덕분에 아카데미 회원으로 수락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18세에 불과했는데, 아카데미의 법규에는 회원의 나이가 적어도 20세여야 한다는 요구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1736년에 클레로는 모페르튀(Maupertuis), 카뮈(Camus), 우티르(Outhier), 르모니에(Lemonnier), 셀시우스(Anders Celsius)와 함께 자오선 각도의 길이를 재기 위해 랩랜드로 파견되었다. 그 결과, 카시니(Jacques Cassini)와는 반대로 극지방에서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모페르튀와 함께 발레리앙산으로 들어가 중요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1740년에 <천체 운동에 대한 논문집: Recuelt de memoires sur les mouvements des corps celestes>을, 1741년에 <기하학 원론: Elements de Geometrie>을, 1743년에 유체의 평형에 대해 논한 <지구 형태론: Theorie de la figure de la terre>을, 1746년에 <대수학 원론: Elements d'Algebre>을 집필하였고, 1752년에는 인력의 법칙으로부터 추론된 <달의 이론: Theorie de la lune>을 써서 생페테스부르크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754년에 중력이론에 따라 계산된 <달의 수표: Tables de la lune>를 출간하였다.
클레로는 핼리 혜성의 회귀에 대해, 그것이 지나야하는 이웃에 있는 목성, 토성의 감속 운동을 계산상 고려하여 예측하였다. 혜성의 근일점이 예측한 1759년 4월 초순이 아닌 5월 12일에 발생했기 때문에 예측이 실제보다 며칠 앞서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현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게다가 <혜성의 운동에 관한 이론 및 1531, 1607, 1682, 1759년에 관찰된 혜성에 대한 이 이론의 적용: Theorie du mouvement des cometes avec l'application de cette theorie a la comete qui a ete observee dans les annees 1531, 1607, 1682, 1759(1760)>과, <지구 둘레의 태양의 가시 궤도에 대한 논문: Memoire sur l'orbite apparente du soleil autour de la terre(1761)>을 냈다. 이 저서들 이외에 <과학 아카데미 논문집: Memoires de l’Academie des sciences>과 <지식인의 잡지: Journal des savants>에서 발견되는 해석학, 공학, 광학을 주제로 한 많은 연구도 하였다.
우리가 재인쇄하는 <기하학 원론>(편집자 주: 우리가 재발간한 책은 초판과 동일하지만 표현상의 몇 가지 교정에 의해 구별되는 1765년 판이다.)이 존재할 수 있던 것은 기하의 기본 개념을 획득하려는 샤틀레(Chtelet) 공작의 욕망 덕분이다. 결국 하나의 훌륭한 저서로부터 수학적 문헌이 풍부해졌다. 왜냐하면 클레로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기초 위에 기본 기하를 세우려는 헛된 시도를 포기하고 이 주제를 제시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현학적이고 난해한 수단을 버리면서, 가장 중요한 기하학적 진리를 추론의 완전한 정당함을 갖추고 우아하고 정확한 형태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요소와 직관적인 요소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그의 기하학은 기하학이 습관처럼 입고 있던 기이한 특성을 버리고 정신의 자연스런 절차에 잘 따르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 <원론>이 가장 간단하고 가장 자연스런 경로에 의해 기하의 진리를 획득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초보자에게도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