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기략》은 유기劉基(1311~1375)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자들의 고증을 거치면서 유기의 이름을 빌린 병법서일 뿐 작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유기는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개국 후 주원장의 무자비한 공신 숙청을 피한 현명한 인물로도 그 이름을 남겼다. 유기는 고향 이름을 따서 유청전劉靑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자는 백온伯溫이다.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활동한 군사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였다.
유기는 유가 경전과 역사는 물론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정통하여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제갈량에 비유하여 “제갈량은 천하를 삼분했고, 유백온은 강산을 통일했구나. 앞에는 제갈량이 뒤에는 유백온이 있다”라고 칭송했다. 주원장은 여러 차례 유기를 가리켜 ‘나의 자방子房’(자방은 한나라를 개국한 고조 유방의 일등공신 장량張良의 자字)이라고 칭찬했다
《욱리자郁離子》 등의 저서가 있는데, 훗날 《성의백문집誠意伯文集》에 수록되었다. 《명사明史》(권128)에 그의 전기가 남아서 전한다.
유기는 주원장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특히 군사가, 정치가, 문학가로서 그 명성을 크게 떨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 세 방면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위인으로 평가한다.
《백전기략》은 유기劉基(1311~1375)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자들의 고증을 거치면서 유기의 이름을 빌린 병법서일 뿐 작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유기는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개국 후 주원장의 무자비한 공신 숙청을 피한 현명한 인물로도 그 이름을 남겼다. 유기는 고향 이름을 따서 유청전劉靑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자는 백온伯溫이다.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활동한 군사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였다.
유기는 유가 경전과 역사는 물론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정통하여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제갈량에 비유하여 “제갈량은 천하를 삼분했고, 유백온은 강산을 통일했구나. 앞에는 제갈량이 뒤에는 유백온이 있다”라고 칭송했다. 주원장은 여러 차례 유기를 가리켜 ‘나의 자방子房’(자방은 한나라를 개국한 고조 유방의 일등공신 장량張良의 자字)이라고 칭찬했다
《욱리자郁離子》 등의 저서가 있는데, 훗날 《성의백문집誠意伯文集》에 수록되었다. 《명사明史》(권128)에 그의 전기가 남아서 전한다.
유기는 주원장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특히 군사가, 정치가, 문학가로서 그 명성을 크게 떨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 세 방면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위인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