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해부학자의 눈으로 본 현대 ‘의료시스템’의 구조
노교수의 ‘인생’과 ‘죽음’ 마주하기
남게 될 가족이 할 수 있는 준비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현대 의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몇 번인가 받으면서, 그 근본을 짚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동안 있었으나 어쩐지 귀찮아졌다. 바탕에는 통계에 관한 관점이 깔려있다. 사회 전반에서도 그렇지만 현대의학에서는 통계가 우선된다. 통계는 숫자이며 숫자는 추상적이다. 그렇다면 추상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감각에 직접 주어지는 것, 《유언》에서 그것을 감각 부여라고 표현했다. 당시엔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맺었는데, 그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감각 부여와 의식의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통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리 전 수상의 실언문제(失言問題)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여성위원이 많은 회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는 발언이다. 여기에는 오랜 경험에 근거하여 자기 나름의 ‘통계적’ 근거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수치화되지 않은 근거인 듯하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근거를 강하게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모리 전 수상의 발언이 무례하다는 의견만 많을 뿐 그 근거를 추궁하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모리 전 수상은 요다 다케시와 나이가 같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의미에서 의료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모리 전 수상의 발언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통계에 관한 책을 모아서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심각한 동맥경화 때문에 심근경색이 일어났다. 이런 상태라면 당연히 뇌동맥 경화도 꽤 진행되었을 테지요. 망가지기 시작한 이 뇌로 통계의 기초 같이 복잡한 문제를 숙고해 본들 제대로 된 사고가 가능할 리 없다. 마음을 다잡고 의지를 불태우다가 뇌만 더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도쿄대 의학부 학생시절, 뇌과학 강의에서 당시 시미즈 겐타로 교수가 구소련 의학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교수는 “소련 의사는 절반이 여성이다”라고 언급하고 “게다가 소련 의학은 수준이 낮다”라고 덧붙였다. 지금이라면 그 교수는 당장 해고당했겠지, 저자와 모리 전 수상이 교육받던 때는 그런 시대였다. 시미즈 교수의 발언도 ‘통계적’이다. 전자는 확실한 통계 그 자체고 후자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무척 의문스러우나 이 또한 ‘통계적’인 생각이다. 통계 숫자가 있든 없든 사람은 ‘통계적’으로 생각하나 보다.
Contents
들어가는 말 - 요로 다케시
제1장 요로 선생님, 심근경색에서 살아서 돌아오다
병은 코로나뿐만이 아니었다
요로 다케시
병은 코로나뿐만이 아니었다
26년 만에 도쿄대학병원에서 진찰받다
생사를 헤매다가 속세로 돌아오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보화되는 현대 의료의 함정
현대 의료가 다루는 건 인공 신체
차이를 무시하는 통계 데이터
도시에서는 의미가 있을지도
과거 의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데이터보다 몸의 소리를 들어야
앞으로도 의료와는 먼 삶
제2장 제자 의사가 심근경색을 발견하다
요로 선생님, 도쿄대병원 입원
나카가와 케이이치
요로 선생님의 신년회에 초대받은 이유
요로 선생님에게서 온 상담 메일
당뇨병 또는 암일 가능성
검사에서는 폐암이 의심됐지만…
심전도에서 심근경색이 확인되다
심장의 굵은 혈관이 막히기 시작한 상태
위암, 대장암 발병 위험까지
경미한 폐기종 또한 발견되다
백내장 수술로 더 잘 보이게
요로 선생님은 운 좋은 사람?
의료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요로 선생님의 진심은?
죽음을 의식하면 인생관이 바뀐다
획일적인 의료시스템에 대한 비판
제3장 요로 선생님이 병원을 멀리하는 진짜 이유
왜 ‘의료’와 거리를 두는가
요로 다케시
의학은 1970년대부터 달라졌다
돈이 되지 않는 학문도 필요하다
나의 죽음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반려동물 의료에 당사자의 의사는 있는가
안녕, 마루
노화를 멈추면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
iPS 세포로 젊음을 되찾는 연구
인구감소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제4장 요로 선생님께 배운 의료의 한계와 가능성
왜 병원에 가야 하는가
나카가와 케이이치
요로 선생님의 26년 전 폐 검사
건강정보이해력이 낮은 일본인
암 검진은 받는 편이 낫다
발견하지 않아도 되는 암이 있다
심근경색도 예방 가능한 질병
코로나 시국, 외출 자제로 암 환자가 증가?
코로나 때문에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백신 미접종으로 아이들이 위험해진다
신종 코로나 백신은 안전한가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한 조건
요로 선생님의 고양이 마루가 죽다
제5장 특별대담 현대 의료의 모순과 인간적 의료
요로 선생님, 왜 병원 가기를 싫어하세요?
요로 다케시×나카가와 케이이치×야마자키 마리
병원에 가는 건 길고양이가 집고양이가 되는 일
노인을 공경하는 이탈리아, 방해물 취급하는 일본
고양이 몇 마리와 강아지, 원숭이
의사는 상상력이 없어서 약을 내지 않는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면 하지 못했던 일에 집중하고 싶어진다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치료는 오늘날 의사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급감하고 위암은 멸종위기종이 된다?
장기이식에는 반대하지만 백내장 인공렌즈는 괜찮다?
나가는 말 - 나카가와 케이이치
Author
요로 다케시,나카가와 케이이치,최화연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