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번쯤 교양으로 읽는 논어

흔들리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고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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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5/25
Pages/Weight/Size 152*212*30mm
ISBN 9791191107258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학업, 취업, 결혼, 처세, 죽음…
일생의 질문에 논어가 답하다


중국 고전 『사서오경(四書五經)』의 첫 번째 책인 『논어』는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어록(語錄)이다.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아는 것(知命)’까지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흐름은 공자의 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 간의 대화 등으로 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공자라는 인물의 사상과 행동을 보여주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인생에 한번쯤 교양으로 읽는 논어』는 원문과 풀이, 그리고 친절한 해설로 구성되어 있어 『논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려운 철학과 고전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해 온 옮긴이 장개충은 이 책에서 현대 감각에 맞게 각 장의 제목을 달리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논어』는 학업, 취업, 결혼, 처세, 죽음과 같은, 인생을 살다 보면 마주치는 굵직한 질문 앞에서 주저할 때 이정표를 제시한다. 방황하는 젊은 세대나 흔들리는 중장년층 누구나 2500년을 이어온 『논어』에서 꼭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책머리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알다 ·4

1장 학문의 기쁨과 덕행 ·9
2장 진리의 빛 ·23
3장 예절과 문화 ·43
4장 공자의 인덕 ·63
5장 슬기와 지혜 ·79
6장 인생의 행복 ·103
7장 용모와 태도 ·123
8장 바르게 사는 도리 ·149
9장 공자의 덕행 ·163
10장 예악 실천 ·185
11장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평· 191
12장 성현의 가르침 ·201
13장 인격수양과 처세 ·217
14장 수신제가 ·233
15장 처세와 명언 ·245
16장 유익한 즐거움 ·261
17장 공자의 탄식 ·271
18장 현인들의 출사와 은둔생활 ·283
19장 공자의 제자들 ·291
20장 정치적 이상과 천명사상 ·305
공자 연보 ·313
Author
공자,장개충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