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상)

태조~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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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3/20
Pages/Weight/Size 150*225*35mm
ISBN 9791190583985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역사/인물
Description
청소년 여러분과 함께 조선으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1392년)부터 철종(1863년)까지 25대에 걸친 472년간 조선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 순에 따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서이다. 한 책의 두께가 1.7㎝인데 전체를 한 권씩 쌓아 올리면 무려 아파트 12층 높이 정도 된다. 총 1,894권 888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49,646,667자의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지정되었다.

『임금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상권은 태조 이성계부터 9대 성종 이혈까지의 실록이다. 자세히 보고 또 보아야 재미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책 보다 조선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실록의 주요 기사를 많이 실었다.
Contents
『조선왕조실록』 목록 / 20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과정 / 21
『조선왕조실록』 보존 과정 / 22
『조선왕조실록』 편찬 경위와 내용 / 27

■ 제1대 태조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한 왕

· 이성계 선대의 가계 / 33
〈실록기사〉 목조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의주를 거쳐 알동에 정착하다 / 33
〈실록기사〉 목조가 죽자 공주에서 장사지내고 후에 함흥부로 옮겨 덕릉이라 하다 / 35
〈실록기사〉 익조 이행리가 목조의 관직을 이어받다 / 35
〈실록기사〉 익조가 원군과 함께 일본 정벌에 참여하고, 충렬왕을 알현하다 / 35
〈실록기사〉 의주에서 도조인 이선래를 낳다 / 38
〈실록기사〉 익조가 죽자 안변부의 봉룡역에서 장사지내고 지릉이라 하다 / 38
〈실록기사〉 도조 이춘이 익조의 관직을 이어받다 / 38
〈실록기사〉 조선 왕조 개창을 암시하는 도조의 꿈 / 39
〈실록기사〉 도조가 죽자 어린 교주 대신 임시로 환조 이자춘이 관직을 계승하다 / 40
〈실록기사〉 환조가 기철 등의 당여를 물리치고 쌍성을 수복하다 / 42
〈실록기사〉 환조가 동북면으로 돌아가다 죽자 함흥부에서 장사지내고 정릉이라 하다 / 42

· 이성계의 탄생 / 44
〈실록기사〉 환조가 영흥 부원군 최한기의 딸과 혼인하여 화령부에서 이성계를 낳다 / 44
〈실록기사〉 이성계가 20마리의 담비를 쇠살로 명중시키다 / 44
〈실록기사〉 동북면 도순문사 이달충이 이성계가 비범한 인물임을 말하다 / 45
〈실록기사〉 무거운 활을 들고 이성계가 노루 7마리를 모두 명중시키다 / 46
〈실록기사〉 이성계의 사냥 솜씨를 야인들이 칭송하다 / 46
〈실록기사〉 이성계가 22살에 관직에 나가다 / 47
〈실록기사〉 동북면 상만호인 이성계가 친병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 만호 등을 죽이다 / 48
〈실록기사〉 이성계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온 홍건적의 무리를 격퇴시키다 / 48
〈실록기사〉 참지정사 안우 등이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서울을 탈환하다 / 48
〈실록기사〉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나하추와 대적하다 / 49
〈실록기사〉 이성계와 나하추의 전투 / 49
〈실록기사〉 공민왕을 폐위키 위해 최유가 요양성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니 이성계 등이 쳐부수다 / 52
〈실록기사〉 삼선 삼개가 여진족을 이끌고 함주를 함락시키니, 관군들이 이성계가 오기를 고대하다 / 53
〈실록기사〉 삼선 삼개를 격퇴하여 함주를 탈환하고, 그 공으로 밀직부사로 승진하다 / 53
〈실록기사〉 원나라 맹장인 조무를 감복시켜 귀순케 하다 / 54
〈실록기사〉 동북면 원수가 되어 기철의 잔당과 북원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동녕부를 회복코자 하다 / 54
〈실록기사〉 군대를 거느리고 동북면의 영토를 확장하다 / 54
〈실록기사〉 동북면을 공격하고 나하추 등이 있는 곳에 방을 붙여 기새인첩목아의 행방을 탐문하다 / 56
〈실록기사〉 서해도에 침구한 왜적을 해주에서 격퇴하다 / 62
〈실록기사〉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적과 싸워 패퇴하였으나, 이성계가 합세하여 물리치다 / 64
〈실록기사〉 명 사신이 이성계와 이색의 안부를 묻다. 왜구의 침략을 이성계가 격퇴하다 / 78
〈실록기사〉 우왕과 최영이 요동을 공격하기로 결정하다 / 82
〈실록기사〉 요동 정벌이 결정되었으나, 4가지 불가한 이유를 들어 이성계가 반대하다 / 82
〈실록기사〉 이성계가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다 / 84
〈실록기사〉 최영의 군사를 진압하고, 최영을 고봉현으로 귀양보내다 / 87
〈실록기사〉 우왕을 죽이다 / 96
〈실록기사〉 술에 취해 공양왕에게 예절을 갖추지 않은 밀직사 이염을 귀양보내다 / 114
〈실록기사〉 공양왕과 권문세족이 이성계를 꺼려하다 / 114
〈실록기사〉 세자가 명에서 돌아오다. 정몽주가 이성계를 견제하기 위해 이성계의 측근을 탄핵하다 / 115
〈실록기사〉 정몽주가 조준 등을 처형코자 하니, 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일당을 탄핵하다 / 116
〈실록기사〉 공양왕이 이성계의 집에 가서 위문하다. 조인옥 등 52명이 이성계를 추대하기로 결정하다 / 121
〈실록기사〉 1392년 명 홍무 25년 이성계가 잠저에 있을 때 여러 가지 개국의 조짐이 나타나다 / 122
· 위화도 회군 4년 만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다 / 124
〈실록기사〉 1392년 7월 17일, 이성계가 백관의 추대를 받아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르다 / 125
〈실록기사〉 1392년 7월 18일, 이성계의 등극을 알리기 위해 명의 예부에 사신을 보내자고 청하다 / 128
· 1392년 7월 28일, 이성계의 즉위 교서 / 129
〈실록기사〉 1392년 7월 30일, 이색 등을 도서 지방으로 귀양보내도록 청했으나 내륙으로 유배토록하다 / 133
·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을 사용하다 / 134
· 개경에 있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다 / 135
· 제도 정비와 법전 편찬 등 국가 기틀을 수립하다 / 137
· 사병 혁파와 1차왕자의 난이 일어나다 / 137
〈실록기사〉 1398년 8월 26일, 제1차 왕자의 난.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숙청되다 / 140
· 권문세족의 손발을 묶은 전제 개혁을 단행하다 / 155
· 정적을 숙청하다 / 156
· 고려 신하들의 반발에 회유책을 쓰다 / 157
· 정도전이 조선의 미래를 그리다 / 158
〈실록기사〉 1392년 10월 25일, 정도전이 명나라에 가지고 간 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표문 / 159
〈실록기사〉 1392년 11월 27일, 국호를 정하는 문제에 대한 예부의 자문을 계품사 조임이 가져오다 / 160
〈실록기사〉 1392년 11월 29일, 국호를 화령과 조선으로 정하여 황제의 재가를 청하는 주문 / 161
〈실록기사〉 1393년 2월 15일,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는 예부의 자문 / 162
〈실록기사〉 1393년 2월 15일, 좌시중 조준 등이 국호 받은 것을 진하한 전문 / 163
〈실록기사〉 1393년 3월 9일, 공민왕대에 내린 금인 1개를 돌려보내다 / 164
·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다 / 164
·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 165
· 74세의 나이로 승하하다 / 166
〈실록기사〉 1408년 5월 24일,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하시다 / 166
▶신의 정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으로 사진 여행 / 168

■ 제2대 정종 이방과 - 동생(태종)을 왕으로 추대한 왕

〈실록기사〉 1399년 1월 1일, 종친을 거느리고 태상전에 조회하고 하례를 행하다 / 172
· 군인으로 21년을 전쟁터에서 누빈 왕이었다 / 172
·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공을 세우다 / 172
· 1차 왕자의 난으로 조선 2대 왕으로 즉위하다 / 173
· 2차 왕자의 난과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다 / 176
〈실록기사〉 1400년 1월 28일, 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을 토산에 추방하다 / 177
〈실록기사〉 1400년 2월 1일, 하윤 등이 정안공을 세자로 세우기를 청하니, 세자로 삼는다는 전지를 내리다 / 184
〈실록기사〉 1400년 2월 1일, 방간을 복주하기를 청하다. 박포를 국문하고, 연루자를 모두 처벌하다 / 185
〈실록기사〉 1400년 2월 4일,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립하여 군국의 일을 맡기다. 전국의 죄수들을 사유하다 / 187
〈실록기사〉 1400년 2월 4일, 세자가 태상전에 나아가 사은하니 태상왕이 임금 노릇하는 도리를 논하다 / 189
〈실록기사〉 1400년 2월 4일, 대간이 박포를 주살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르다 / 190
〈실록기사〉 1400년 3월 4일, 민씨를 봉하여 세자 정빈으로 삼다 / 193
〈실록기사〉 1400년 10월 26일, 방간의 난과 관련 신상필벌의 법을 정하여 공포하다 / 194
· 양보 없는 권력의 암투가 시작되다 / 195
· 왕세자 ‘방원’에게 선위를 교서하다 / 195
〈실록기사〉 1400년 11월 11일, 임금이 왕세자에게 선위하다. 선위하는 교서 / 196
· 상왕전에 나아가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헌수하다 / 198
〈실록기사〉 1400년 12월 1일,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전에 나아가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헌수하다 / 198
· 15년을 상왕으로 지내다 / 200
· 스스로 자신을 낮춘 왕이었다 / 200
· 사병을 혁파하다 / 200
〈실록기사〉 1400년 4월 18일, 사병 혁파에 불만을 표시한 참판삼군부사 조영무를 황주에 귀양보내다 / 200
〈실록기사〉 1400년 4월 18일, 사병 혁파에 불만을 표시한 지삼군부사 이천우와 조온을 파면하다 / 205
〈실록기사〉 1400년 6월 6일, 임금이 하루 근신하니 비가 억수같이 내려 사흘 만에 그치다 / 205
· 1400년 7월 2일 대 사면령 반포하고 편민 사의 13조를 발표하다 / 207
· 63세 나이로 승하하다 / 209
▶신의 정원, 정종 이방과의 후릉으로 사진 여행 / 210

■ 제3대 태종 이방원 - 가정을 넘어 나라로, 나라를 다시 생각한 왕

〈실록기사〉 총명함과 재능으로 집안의 자랑이었던 이방원 / 215
· 1400년 11월 13일, 태종이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사면령을 반포하다 / 217
· 태종이 없었으면, 세종대왕도 없었다 / 219
· 남다른 총명함과 재능을 가졌다 / 220
· 공신과 외척을 척결하다 / 222
· 가정을 넘어 나라로, 나라를 다시 생각하다 / 226
· 왕권 강화를 통해 정국의 안정을 꾀하다 / 228
·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삼다 / 231
〈실록기사〉 1418년 6월 3일, 세자 이제(양녕대군)를 폐하고 충녕대군으로 왕세자를 삼다 / 234
· 세종 시대를 위한 기본 설계를 하다 / 239
· 관제 개혁과 신문고를 설치하다 / 240
· 조선의 창업 군주였다 / 242
·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발탁하다 / 247
· 주자소를 설치하여 서적 간행에 힘쓰다 / 248
· 상왕이 되어서도 세종의 왕권 안정을 위해 노력하다 / 256
· 세종의 장인 심온을 제거하다 / 256
〈실록기사〉 1418년 12월 4일, 의금부에서 심온의 아내와 딸들을 천인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기를 청하다 / 257
〈실록기사〉 1418년 12월 4일, 심온이 천거한 사람인 의주 목사 임귀년을 파직시키다 / 258
〈실록기사〉 1418년 12월 5일, 심온을 맞이하도록 종을 보낸 아내와 혐의를 받은 처제를 모두 석방케 하다 / 258
〈실록기사〉 1418년 12월 5일, 역관 전의와 군사 10명을 보내어 연산참에서 심온을 잡아오게 하다 / 258
〈실록기사〉 1418년 12월 6일, 심온과 친밀했던 임군례·김을현·신이·장합 등을 파면시키다 / 259
〈실록기사〉 1418년 12월 18일, 심온의 일이 사신들에게 누설되지 않게 하고자 평안도로 강권선을 보내다 / 259
〈실록기사〉 1418년 12월 22일, 이욱이 심온을 잡아 오다. 신문 중에 말이 안수산에 미치다 / 259
〈실록기사〉 1418년 12월 23일, 안수산을 예천에 정배하고 심온에게 사약을 내리다 / 260
· 56세 나이로 승하하다 / 261
〈실록기사〉 1422년 5월 10일, 태상왕이 연화방 신궁에서 훙하다 / 261
〈실록기사〉 1418년 11월 8일, 태상왕이 훙하니 묘호를 ‘태종’이라 하다. 시책문 / 262
〈실록기사〉 1422년 9월 6일, 태종을 헌릉에 장사지내다 / 263
▶신의 정원, 태종 이방원의 헌릉으로 사진 여행 / 265

■ 제4대 세종 이도 - 조선 최고의 성군, 훈민정음을 만든 왕

〈실록기사〉 총서 / 269
· 1418년 8월 12일, 근정전에서 교서를 반포하다 / 275
〈실록기사〉 1418년 8월 11일, 세종이 예조에서 상왕전에 전을 올리는 절차를 아뢰다 / 276
· 양녕대군과 갈등하다 / 279
· 양녕을 대신해 세자로 책봉되다 / 280
· 가족과 종친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 281
·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 281
〈실록기사〉 1444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 283
〈실록기사〉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 289
· 집현전의 확장과 엘리트 인재를 양성하다 / 291
· 4군 6진 개척과 대마도를 정벌하다 / 293
〈실록기사〉 1419년 5월 7일, 충청도 비인현에 왜적 50여 척이 침입하다 / 294
〈실록기사〉 1419년 5월 7일, 충청 관찰사 정진이 왜구와의 접전 상황을 보고하다 / 294
〈실록기사〉 1419년 5월 14일, 상왕과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 대마도 치는 문제를 의논하다 / 295
〈실록기사〉 1419년 5월 29일, 대마도 수호에게 보내어 화친할 것을 말한 글기 / 296
〈실록기사〉 1433년 5월 7일, 평안도 절제사 최윤덕이 파저강의 토벌에 관해 치계하다 / 299
〈실록기사〉 1433년 1월 19일,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도진무 김효성·경력 최치운 등이 사조하다 / 303
〈실록기사〉 1433년 11월 19일, 경원부를 소다로로 옮겨 영토를 확장시킬 것을 논의하다 / 305
· 명재상을 등용하여 국정을 분담하다 / 308
· 과학의 발전을 이루다 / 309
· 문물을 발전시키다 / 311
· 유교를 기본으로 한 통치 체제를 구현하다 / 313
· 취제제도를 싱시하다 / 315
· 농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치다 / 316
· 세종은 사람됨이 바탕이었다 / 317
· 불교에 귀의하다 / 317
· 건강이 악화되다 / 318
· 54세 나이로 승하하다 / 319
〈실록기사〉 1450년 2월 17일, 임금이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훙하다 / 319
▶신의 정원, 세종 이도의 영릉으로 사진 여행 / 320

■ 제5대 문종 이향 - 조선 병법의 기본을 세운 왕

· 총서 / 324
· 1450년 2월 22일, 문종이 최복 차림으로 의식대로 교서를 반포하다 / 324
·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조선 최초의 왕이었다 / 326
· 여덟 살 때 세자로 책봉되다 / 328
〈실록기사〉 세종 3년, 1421년 10월 26일, 원자 이향이 조복을 차리고 책봉받는 의식을 연습을 하다 / 328
〈실록기사〉 세종 3년, 1421년 10월 27일, 인정전에서 원자 이향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책문을 내리다 / 329
· 학문과 효성이 깊은 왕이었다 / 334
· 왕세자로 5년 섭정과 2년을 재위하다 / 335
〈실록기사〉 1452년 7월 20일, 김종서 등이 새로 찬술한 『고려사절요』를 바치다 / 336
· 국방과 군사 제도에 해박하였다 / 346
· 건강의 악화로 과소 평가된 왕이었다 / 347
· 짧은 생애에 큰 업적을 남기다 / 348
· 1452년 5월 14일 39세 나이로 강녕전에서 승하하다 / 349
〈실록기사〉 1452년 5월 14일, 유시에 임금이 강녕전에서 훙하다 / 350
▶신의 정원, 문종 이향의 현릉으로 사진 여행 / 355

■ 제6대 단종 이홍위 -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어린 왕

· 총서 / 358
· 1452년 5월 18일,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반포하다 / 358
· 8세 때 왕세손으로 책봉되다 / 363
〈실록기사〉 1448년 4월 3일, 원손 이홍위를 왕세손으로 삼고 사유를 반포하다 / 363
· 12세에 왕위에 오르다 / 364
·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이고, 비는 정순왕후 송씨이다 / 365
〈실록기사〉 1454년 1월 22일, 효령대군 이보 등을 보내어 송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다 / 365
· 의정부 대신들이 수렴청정하다 / 367
· 계유정난 평정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다 / 368
〈실록기사〉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이용과 결탁하여 김종서·황보인·이양·조극관 등을 효수하다 / 370
· 영월 청령포로 유배가다 / 378
· 17비참한 삶을 살다 / 380
· 17세로 승하하다.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매장하다 / 381
· 『세조실록』에 수록된 단종에 관한 기사(세조 3년) / 383
〈실록기사〉 1455년 윤6월 11일, 혜빈 양씨·상궁 박씨 등을 귀양보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다 / 383
〈실록기사〉 1457년 6월 21일, 판돈녕부사 송현수 등의 반역으로 상왕을 강봉하고 영월에 거주시키다 / 387
〈실록기사〉 1457년 6월 22일, 영월로 떠나는 노산군을 화양정에서 전송하게 하다 / 387
〈실록기사〉 1457년 6월 22일, 경차관 조계팽에게 노산군에게 보내는 물품을 전하고, 얼음을 바치게 하다 / 388
〈실록기사〉 1457년 6월 26일, 명모반으로 권전과 노산군의 어미를 서인으로 개장할 것을 청하다 / 388
〈실록기사〉 1457년 7월 5일, 노산군이 일용하는 비용을 곡진하게 마련해 줄 것 등을 명하다 / 388
〈실록기사〉 1457년 7월 15일, 강원도 관찰사에게 노산군에게 술을 공진하도록 하다 / 388
〈실록기사〉 1457년 9월 10일, 신숙주·정인지 등이 금성대군과 노산군을 사사토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 389
〈실록기사〉 1457년 10월 16일, 종친 등이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건의하다 / 390
〈실록기사〉 1457년 10월 19일, 양녕대군 등이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391
〈실록기사〉 1457년 10월 20일, 양녕대군이 노산군 등의 처벌을 청하자 대신들과 의논하겠다고 하다 / 392
〈실록기사〉 1457년 10월 21일, 대간 등이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처벌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393
〈실록기사〉 1457년 10월 21일, 노산군이 자살하자 예로써 장사지내다 / 394
〈실록기사〉 1457년 10월 22일, 노산군을 알현하려 한 종 독동·윤생 등에게 장 1백 대를 때리다 / 395
〈실록기사〉 1457년 11월 18일, 노산군·금성대군 등의 자손들을 종친록과 유부록에서 삭제토록 하다 / 395
〈실록기사〉 숙종 24년 남구만·윤지완·최석정·이세백 등이 노산의 위호를 추복하는 의논을 아뢰다 / 395
▶신의 정원, 단종 이홍위의 장릉으로 사진 여행 / 399

■ 제7대 세조 이유 -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왕

〈실록기사〉 세조의 성품과 재능에 대해 평하다 / 403
〈실록기사〉 세조 잠저의 가마솥이 스스로 울다 / 403
〈실록기사〉 1455년 윤6월 11일, 혜빈 양씨와 상궁 박씨의 가산을 적몰하고, 금성대군 이유는 논하지 않다 / 408
· 계유정난 평정으로 조카 단종의 왕 자리를 빼앗다 / 410
· 윤번의 딸과 혼인하다 / 412
· 성삼문은 세조를 ‘왕’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 412
· 성삼문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다 / 413
〈실록기사〉 1456년 6월 7일, 이미 죽은 박팽년·유성원·허조와 연좌된 자들의 처벌 규정을 정하다 / 415
〈실록기사〉 1468년 9월 3일, 세자가 난신과 연좌된 자들을 석방하고자 하다 / 416
·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펴다 / 417
·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다 / 419
〈실록기사〉 1467년 5월 16일, 전 회령 절제사 이시애가 반역을 모의하고 수령들을 살해하다 / 419
〈실록기사〉 1467년 5월 19일, 이시애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신숙주·한명회를 가두게 하다 / 422
· 공신전을 남발하다 / 424
· 불교 귀의와 회한의 말년을 보내다 / 425
〈실록기사〉 1468년 9월 7일, 세자(예종)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다 / 426
· 52세 나이로 승하하다 / 428
· 태상왕의 존시를 올리고 묘호를 세조로 정하다 / 428
▶신의 정원, 세조 이유의 광릉으로 사진 여행 / 429

■ 제8대 예종 이황 - 정치적 뜻을 못 이룬 짧은 생의 왕

· 총서 - 예종이 왕위를 잇고 한씨를 왕비로 삼다 / 432
〈실록기사〉 세조가 세자에게 한의 멸망 원인을 후손들의 안일 때문이라고 설명하다 / 432
· 1468년 9월 7일, 세자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내리다 / 433
· 재위 기간 14개월, 19세의 나이로 요절하다 / 434
· 세자 시절 한명회의 큰딸과 혼인하다 / 435
· 공신과 종친 세력에 눌렸다 / 436
· 유자광의 고의적인 상소로 남이가 죽다 / 437
〈실록기사〉 1468년 10월 24일, 유자광이 남이의 역모 사실을 고하니 남이를 붙잡아 실상을 묻다 / 439
〈실록기사〉 1468년 10월 25일, 조영달·박자하·장계지 등에게 남이의 역모 사실을 묻다 / 444
〈실록기사〉 1468년 10월 27일, 강순·남이·조경치·변영수 등을 환열시키고 7일 동안 효수하다 / 447
〈실록기사〉 1468년 10월 28일, 남이의 역모에 관련된 자들을 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정하다 / 451
〈실록기사〉 1468년 10월 30일, 남이를 편든 조숙을 참형에 처하다 / 451
〈실록기사〉 1468년 10월 30일, 남이와 모의한 맹불생을 참형에 처하고 관련자들을 선정문 뜰에 가두다 / 452
· 직전수조법을 제정하다 / 452
· 장인 한명회와 사사건건 대립하다 / 453
· 20세 나이에 갑자기 승하하다 / 453
〈실록기사〉 1460년 11월 28일, 진시에 임금이 자미당에서 훙하다 / 454
▶신의 정원, 예종 이황의 창릉으로 사진 여행 / 456

■ 제9대 성종 이혈 - 조선왕조의 통치 체제를 완성한 왕

· 총서 / 461
· 1469년 11월 28일, 대비의 명에 의해 경복궁에서 즉위하다 / 461
· 13세에 왕이 되다 / 463
·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을 받다 / 463
· 한명회의 막내딸과 결혼하다 / 464
· 『경국대전』을 반포하다 / 466
· 성종의 친정으로 공신파가 몰락하다 / 468
· 사림파가 등장하다 / 470
· 간경도감을 폐지하다 / 473
· 관수관급제 실시와 국방을 강화하다 / 474
· 왕비 윤씨의 폐비를 결정하다 / 475
〈실록기사〉 1479년 6월 2일, 중궁 폐출의 교서를 내리다 / 476
〈실록기사〉 1479년 6월 3일, 대사헌 박숙진 등이 폐출된 중궁을 별궁에 두도록 건의하다 / 477
〈실록기사〉 1479년 6월 4일,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세하여 폐출된 중궁을 별궁에 두도록 건의하다 / 478
〈실록기사〉 1479년 6월 5일, 중궁을 폐출한 연유를 대신들에게 알리다 / 479
〈실록기사〉 1479년 6월 7일, 폐출된 중궁의 거취에 대한 절목을 마련하여 시행케 하다 / 484
〈실록기사〉 1482년 8월 16일, 윤씨의 사사를 서울과 지방에 포고하라고 의정부에 전지하다 / 485
〈실록기사〉 1482년 8월 16일, 성준이 윤씨의 사사에 대한 삼전의 서간을 가지고 오다 / 485
〈실록기사〉 1479년 8월 16일, 이세좌에게 명하여 윤씨를 그 집에서 사사하게 하다 / 487
· 법치국가를 완성하다 / 489
· 1494년 38세의 나이로 승하하다 / 490
〈실록기사〉 1494년 12월 23일, 의관 송흠이 임금의 병세를 말하다 / 490
〈실록기사〉 1494년 12월 24일, 종기를 많이 다스려본 의원 전명춘이 임금을 진찰하다 / 491
〈실록기사〉 1494년 12월 24일, 대조전에서 세상을 떠나다 / 492
▶신의 정원, 성종 이혈의 선릉으로 사진 여행 / 493
▶Index / 496
Author
김흥중,손귀분,이남철,배용구
· 작가
· 모닝스타 책 쓰기 코치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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