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항쟁기에 편찬된 대한제국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실록을 편찬할 때는 이미 대일항쟁기였으므로, 전통 방식을 100% 따라서 편찬하지 않았고, 일제가 정략적 의도로 왜곡한 부분이 있어 문화재청에서는 별도로 취급합니다. 같은 이유로 세계기록유산 및 국보 지정에서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제외하였습니다. 『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하권은 21대 영조 이금부터 25대 철종 이벽, 그리고 대일항쟁기 26대 고종 이희, 27대 순종 이척까지의 실록입니다. 자세히 보고 또 자세히 보아야 재미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렇습니다.
Contents
■ 제21대 영조 이금 - 사도세자의 아버지, 재위 기간 52년으로 가장 오래 집권한 왕
· 1724년 8월 30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29
· 경종 즉위년 왕세제로 책봉되다 / 32
·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를 낳다 / 34
· 탕평 내각을 구성하다 / 34
· 경종 독살설이 부른 무신란,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다 / 36
〈실록기사〉 1728년 3월 15일, 이인좌 등 적이 청주성을 함락시키다 / 37
〈실록기사〉 1728년 3월 25일, 박필현이 반란을 꾀하다 / 38
〈실록기사〉 1728년 3월 24일, 오명항이 이인좌 등을 잡아 서울로 보내다 / 40
〈실록기사〉 1728년 3월 26일, 이인좌의 공초 / 42
〈실록기사〉 1728년 3월 26일, 박필현을 잡아 참하다 / 45
· 왕권 강화를 위한 탕평 정치를 실시하다 / 48
〈실록기사〉 1755년 2월 4일, 전라 감사 조운규가 나주 객사에 걸린 흉서를 보고하자 기찰케 하다 / 51
〈실록기사〉 1755년 2월 11일, 금부도사를 나주로 보내 흉서를 건 윤지 등을 체포케 하다 / 52
·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다 / 62
〈실록기사〉 1762년 윤5월 1일, 건명문에서 밤을 새우다. 새벽에 비의 정도와 세자에 관하여 논의하다 / 63
〈실록기사〉 1762년 윤5월 13일,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안에다 엄히 가두다 / 64
〈실록기사〉 1762년 윤5월 21일, 사도세자가 훙서하다. 왕세자의 호를 회복하다 / 68
〈실록기사〉 1762년 8월 26일,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좌의정 홍봉한의 차자 / 69
· 세손 정조의 즉위를 순조롭게 하다 / 77
· 검소, 근신하며 백성을 사랑한 왕이었다 / 77
· 노비종모법을 실행하다 / 78
· 균역법을 실시하다 / 79
〈실록기사〉 1751년 4월 20일, 영의정 김재로와 병조판서 홍계희를 소견하고 균역법의 폐단 등을 논의하다 / 80
〈실록기사〉 1751년 5월 1일, 좌의정 조현명이 상소하여 균역법을 계속 시행할 것을 청하다 / 82
〈실록기사〉 1751년 5월 2일, 병조 판서 홍계희가 상서하여 균역법의 이로움을 아뢰다 / 84
〈실록기사〉 1751년 6월 9일, 호서 암행어사 한광조를 소견하여 균역의 폐단 여부를 묻다 / 86
· 형벌제도를 개선하다 / 87
· 국방 정책을 강화하다 / 87
· 도서의 편찬과 간행 보급에 힘쓰다 / 88
· 조선의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집권하다 / 90
· 83세로 승하하다 / 90
〈실록기사〉 1776년 3월 5일, 묘시에 임금이 경희궁의 집경당에서 승하하다 / 90
▶신의 정원, 영조 이금의 원릉으로 사진 여행 / 93
■ 제22대 정조 이산 - 왕이 된 사도세자의 아들
· 1776년 3월 10일, 경희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하다 / 98
· 1776년 3월 10일 중외에 교문을 반포하여 사면의 은전을 내리다 / 100
· 사도세자의 아들, 왕위에 오르다 / 102
· 2남 2녀의 자식을 두다 / 103
〈실록기사〉 1776년 3월 10일, 왕비를 왕대비로 삼고 혜빈을 혜경궁으로 삼았으며 빈궁을 왕비로 삼다 / 103
·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본 왕이였다 / 104
· 외척 제거와 탕평으로 왕권을 강화하다 / 106
· 정조 시해 미수, 은전군 추대 사건이 일어나다 / 108
〈실록기사〉 1777년 8월 23일, 양사의 탄핵으로 홍계희의 관작을 추탈하다 / 109
〈실록기사〉 1777년 9월 24일, 역적의 토죄를 반교하다 / 110
〈실록기사〉 1777년 11월 15일, 홍국영을 숙위대장으로 삼고 대장이 차는 대장패·전령패의 격식을 정하다 / 115
· 홍국영의 세도 정치가 3년 만에 끝나다 / 116
〈실록기사〉 1779년 9월 26일, 도승지 홍국영이 사직을 청하자, 신하들이 이에 대해 논의했으나 윤허하다 / 117
· 시파와 벽파가 대립하다 / 126
· 영남만인소를 접하다 / 127
〈실록기사〉 1792년 윤4월 27일, 경상도 유학 이우 등 1만 57인이 유성한의 일로 상소하다 / 128
〈실록기사〉 1792년 5월 7일, 경상도 참봉 이우 등 1만 3백 68인이 재차 상소를 올리다 / 134
〈실록기사〉 1792년 윤4월 27일, 영남 인사 이우 등을 불러 비답을 내리다 / 139
· 심환지와 비밀 편지를 주고받다 / 145
· 규장각을 설치하고 초계문신 제도를 실시하다 / 148
·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듣다 / 151
· 서자 출신 박제가를 등용하다 / 152
· 수도 방위를 위한 장용영을 설치하다 / 153
· 신해통공을 실시하다 / 154
·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이장과 화성을 축조하다 / 155
〈실록기사〉 1789년 7월 11일, 금성위 박명원의 상소로 인하여 영우원을 천장하기로 결정하다 / 155
〈실록기사〉 1794년 1월 15일, 화성 축조에 대해 하명하다 / 161
· 화성축성공사 하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치르다 / 165
〈실록기사〉 1795년 윤2월 9일,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에 행행하다 / 165
〈실록기사〉 1795년 윤2월 10일, 화성의 행궁에 머물렀는데 비온 것을 기뻐하다 / 165
· 노비추쇄법을 폐지하다 / 170
· 신해박해(진산사건)가 일어나다 / 171
〈실록기사〉 1791년 10월 23일, 권상연·윤지충의 처벌을 청한 글과 홍낙안이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 / 178
〈실록기사〉 1791년 10월 24일, 좌의정 채제공이 양사의 이단을 배격하는 상소로 인해 차자를 올리다 / 182
〈실록기사〉 1791년 10월 25일, 좌의정 채제공과 더불어 천주학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다 / 185
〈실록기사〉 1791년 11월 8일, 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다 / 189
〈실록기사〉 1791년 11월 8일, 수찬 신헌조가 상소하여 권일신·이승훈을 엄히 국문하기를 청하다 / 192
〈실록기사〉 1791년 11월 8일, 이승훈을 삭직하고 권일신을 위리안치시키도록 하다 / 193
· 규장각을 통해 많은 서적을 간행하다 / 200
〈실록기사〉 1795년 9월 14일, 『충무공이순신전서』를 발간하다 / 201
〈실록기사〉 1795년 10월 14일, 『눌재집』을 중간하여 인쇄해 올리라고 하교하다 / 201
·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다 / 201
· 절제된 개혁 정치를 펼치다 / 203
· 심한 종기로 49세 나이에 승하하다 / 203
※1800년 6월 14일 정조가 종기로 자리에 누운 후부터 승하와 1800년 7월 15일 장례를 치를 때까지 실록에 기록된 기사 / 205
〈실록기사〉 1800년 6월 14일, 내의원 제조 서용보를 편전으로 불러 진찰을 받다 / 205
〈실록기사〉 1800년 6월 15일, 약원의 제신을 불러 접견하고 행인고를 지어 올리라고 명하다 / 206
〈실록기사〉 1800년 6월 16일, 약원의 제신과 대신 및 각신을 접견하고 심회를 말하다 / 207
〈실록기사〉 1800년 6월 19일, 직숙을 간청하는 약원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다 / 210
〈실록기사〉 1800년 6월 21일, 약원의 제신과 대신·각신을 접견하고 진찰을 받다 / 211
〈실록기사〉 1800년 6월 22일, 약원의 제신을 접견한 뒤 진찰을 받고 처방을 의논하도록 하다 / 213
〈실록기사〉 1800년 6월 23일, 약원의 제신을 접견하고 의술에 밝은 자를 두루 찾아보도록 지시하다 / 214
〈실록기사〉 1800년 6월 27일, 정신이 혼미한 증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탕약을 올리다. 왕이 승하하다 / 227
〈실록기사〉 1800년 6월 29일, 신시에 목욕·습·소렴을 거행하다 / 236
〈실록기사〉 1800년 7월 3일, 묘시에 대렴하고 입관하다 / 237
▶신의 정원, 정조 이산의 건릉으로의 사진 여행 / 239
■ 제23대 순조 이공 - 11세 나이에 즉위한 왕
· 1800년 7월 4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242
· 1800년 7월 4일, 등극 반교문에 이르기를 / 243
· 11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다 / 246
·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다 / 247
· 1800년 7월 4일, 수렴청정 반교문 / 249
·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가 시작되다 / 251
· 비가 내리지 않아 기우제를 지내다 / 257
· 삼정이 문란하고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다 / 257
〈실록기사〉 1811년 12월 22일, 평안 병사가 적도의 활동 상황에 대해 보고하다 / 259
〈실록기사〉 1812년 1월 3일, 평안 병사가 홍경래·김창시 등 적도의 동태에 대해 아뢰다 / 261
· 한양의 쌀값이 폭등하다 / 262
·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 풍양 조씨와 손잡다 / 263
· 이양선이 출몰하다 / 265
〈실록기사〉 1816년 7월 19일, 이재홍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온 일을 보고하다 / 265
〈실록기사〉 1832년 7월 21일, 홍희근이 홍주의 고대도 뒷 바다에 정박한 영길리국의 배에 대해 보고하다 / 268
· 궁궐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다 / 271
〈실록기사〉 1829년 10월 3일, 궁정에서 불이 나다 / 272
· 덕이 높고 학문을 사랑하였다 / 272
· 소화 불능 등으로 45세 나이에 승하하다 / 273
▶신의 정원, 순조 이공의 인릉으로 사진 여행 / 273
■ 제24대 헌종 이환 - 풍양 조씨의 옹호 속에 8세에 즉위한 왕
· 1834년 11월 18일 숭정문에서 즉위하고 왕대비 수렴청정의 예를 행하다 / 277
〈실록기사〉 1834년 11월 18일, 왕대비가 주상의 즉위에 따라 추숭 전례를 거행하도록 하교하다 / 277
〈실록기사〉 1834년 11월 19일, 대행대왕과 효명세자의 시호를 정하다 / 277
〈실록기사〉 1834년 11월 19일, 왕대비전께서 백관의 조알과 경외의 공헌을 거행하다 / 277
· 외척 풍양 조씨의 세도 속에서 8세에 왕으로 즉위하다 / 278
· 부인을 네 명 두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 279
· 천주교 탄압을 위해 척사윤음을 반포하다 / 279
〈실록기사〉 1839년 10월 18일, 척사윤음을 경외에 내리다 / 280
· 천주교인 적발을 위해 오가작통법을 실시하다 / 287
· 역병이 돌고 민심이 흉흉해지다 / 289
· 미완의 문화 군주, 후사가 없었다 / 290
· 23세 젊은 나이에 승하하다 / 290
▶신의 정원, 헌종 이황의 경릉으로 사진 여행 / 291
■ 제25대 철종 이변 - 준비 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 강화도령
· 강화도령 왕이 되다 / 296
〈실록기사〉 1849년 6월 6일, 대왕대비가 대신들을 소견하다 / 296
· 준비 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르다 / 298
· 1849년 6월 9일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299
· 7명의 후궁을 두었다 / 304
· 삼정의 문란과 민란이 확산되다 / 304
〈실록기사〉 1862년 3월 10일, 진주 안핵사·도신 등에게 민란의 책임을 묻고 백성들이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게 할 것을 이르다 / 306
· 조선왕조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다 / 308
·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33세 나이에 승하하다 / 308
〈실록기사〉 철종대왕 애책문 / 309
▶신의 정원, 철종 이변의 예릉으로 사진 여행 / 313
■ 제26대 고종 이희 -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 한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은 과연 누굴까요? / 323
〈실록기사〉 1863년 12월 8일, 대왕대비가 국상 중에 정사를 대리할 사람을 정하였고 철종의 뒤를 흥선군의 두 번째 아들로 정하다 / 324
〈실록기사〉 1863년 12월 8일, 대신들이 왕통을 정한 것을 축하드리고 수렴청정의 안을 아뢰다 / 326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등극한 후 대사령을 반포했으며 수렴동청정의 의식도 가지다 / 328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대왕대비가 언문으로 대신들에게 교서를 내리다 / 330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대왕대비가 언문으로 대신들에게 성상을 잘 보좌하라는 교서를 내리다 / 331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대왕대비가 언문으로 국왕을 훈계하다 / 332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등극한 것과 관련하여 반포문을 내리다 / 333
〈실록기사〉 1863년 12월 13일, 수렴하는 것과 관련하여 반포문을 내리다 / 334
·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끝나다 / 336
〈실록기사〉 1897년 10월 1일, 심순택 등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정청하여 황제로 칭할 것을 아뢰다 / 336
〈실록기사〉 1897년 10월 3일,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황후를 책봉하며 태자를 책봉하는 날짜를 정하다 / 338
〈실록기사〉 1897년 10월 12일, 대한 광무 1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왕후 민씨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산호만세 등을 창하다 / 339
〈실록기사〉 1897년 10월 3일, 대한 광무 1년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 339
· 흥선대원군과 신정왕후의 결탁으로 왕위에 오르다 / 342
· 민치록의 딸 민자영을 왕비로 맞이하다 / 342
〈실록기사〉 1895년 8월 23일, 왕태자가 상소문을 올리다 / 344
〈실록기사〉 1895년 8월 23일, 폐서인 민씨에게 빈의 칭호를 특사하다 / 344
· 흥선대원군이 47개의 사액 서원만 남기고 철폐하다 / 344
·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을 발행하다 / 345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나다 / 346
·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화정책을 펼치다 / 348
〈실록기사〉 1876년 1월 23일, 최익현이 상소문을 올려 문제를 논한 것과 관련하여 체포하도록 명하다 / 349
〈실록기사〉 1876년 1월 25일, 최익현을 추국하도록 양사에서 차자를 올리다 / 350
〈실록기사〉 1876년 1월 27일, 최익현을 흑산도에 귀양 보내고 외부와의 왕래를 금지시키다 / 350
·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장호원으로 피신하다 / 352
· 전봉준이 동학혁명(농민반란)을 일으키다 / 355
·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일어나다 / 358
〈실록기사〉 1895년 8월 20일, 묘시에 왕후가 곤녕합에서 붕서하다 / 363
〈실록기사〉 1895년 8월 20일, 내각과 궁내부가 그 권한 범위를 지킬 것을 명하다 / 364
〈실록기사〉 1895년 8월 22일, 왕후 민씨를 서인으로 강등시키다 / 364
·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망명하다 / 366
· 명성황후의 장례식이 사후 2년이 지나서 치러지다 / 367
·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다 / 369
〈실록기사〉 1897년 10월 13일,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 369
〈실록기사〉 1897년 10월 13일, 대사령을 내려 중죄인들의 죄를 가볍게 해주다 / 371
〈실록기사〉 1897년 10월 14일, 태극전에 나아가 명헌태후에게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왕태자비 민씨를 황태자비로 책봉하다 / 372
· 광무개혁을 추진하다 / 373
· 고종의 어머니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별세하다 / 375
〈실록기사〉 1898년 1월 8일, 여흥부대부인 장례 절차를 마련할 것을 명하다 / 376
· 조카 이준용이 쿠데타를 계획하다 / 377
〈실록기사〉 1900년 6월 3일, 신기선이 이준용을 심리판결을 거쳐 형벌을 줄 것을 청하다 / 378
〈실록기사〉 1900년 6월 3일, 김성근이 이준용을 잡아 법의 적용을 받게 할 것을 청하다 / 379
· 군대 창설과 한일협상조약을 체결하다 / 381
〈실록기사〉 1905년 11월 17일, 한일협상조약을 체결하다 / 384
· 고종의 을사늑약 무효와 반대운동이 일어나다 / 385
〈실록기사〉 1905년 12월 1일, 심순택, 조병세 등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85
〈실록기사〉 1905년 12월 1일, 조병세의 병세가 위중하여 약원을 보내 주다 / 387
〈실록기사〉 1905년 12월 1일, 조병세가 자살하였는데 충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다 / 387
〈실록기사〉 1905년 12월 1일, 윤치호가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88
〈실록기사〉 1905년 12월 2일, 이근명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89
〈실록기사〉 1905년 12월 2일, 이용직이 조병세가 남긴 상소문을 올리다 / 390
〈실록기사〉 1905년 12월 5일, 곽종석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는 상소 / 392
〈실록기사〉 1905년 12월 5일, 송병선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신하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문 / 394
〈실록기사〉 1905년 12월 7일, 심순택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신하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96
〈실록기사〉 1905년 12월 7일, 이근명 등 신하들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97
〈실록기사〉 1905년 12월 7일, 전우가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398
〈실록기사〉 1905년 12월 8일, 민영휘가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다 / 400
〈실록기사〉 1905년 12월 8일, 이시영이 정국 안정시킬 것을 상소하고 사직을 청하다 / 401
〈실록기사〉 1905년 12월 14일, 홍만식이 한일협정서가 조인된 것을 분개하여 자살하다 / 402
〈실록기사〉 1905년 12월 16일, 이완용 등 5명이 한일의정서를 조인한 전후 사정을 아뢰고 사직을 청하다 / 403
〈실록기사〉 1905년 12월 18일, 윤용식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신하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리다 / 411
〈실록기사〉 1905년 12월 20일, 송병선이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문 / 412
〈실록기사〉 1905년 12월 31일, 이도재가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사직하다 / 414
·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다 / 417
〈실록기사〉 1907년 7월 18일, 황태자에게 나라와 군사의 큰일을 대리하라고 명하다 / 418
〈실록기사〉 1907년 7월 19일, 황태자가 상소문을 올려 대리청정에 대한 명령을 취소할 것을 아뢰다 / 419
〈실록기사〉 1907년 7월 19일, 황태자의 대리청정 의식을 거행할 것을 명하다 / 421
〈실록기사〉 1907년 7월 19일, 황태자의 대리청정 진하는 권정례로 행하다 / 421
〈실록기사〉 1907년 7월 11일, 동학의 거두 최제우와 최시형의 죄명을 취소하다 / 422
· ‘국가’보다 ‘민국’이란 용어를 즐겨 썼다 / 423
· 1919년 1월 21일, 68세 나이에 승하하다 / 424
〈실록기사〉 1919년 12월 3일, 진시에 영여가 훈련원으로 나가 국장식을 행하다 / 425
〈실록기사〉 1919년 3월 4일, 고종 황제의 행장 / 425
· 고종황제 장래식 장 / 439
▶신의 정원, 고종 이희의 홍릉으로 사진 여행 / 446
■ 제27대 순종 이척 - 이름뿐이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 통치권을 통감부에 빼앗기다 / 457
〈실록기사〉 1907년 7월 20일, 헤이그 밀사 이상설, 이위종, 이준 등을 처벌하다 / 457
〈실록기사〉 1907년 7월 21일, 헤이그밀사사건으로 인하여 교화하는 조서를 내리다 / 458
〈실록기사〉 1907년 8월 8일, 이상설, 이위종, 이준 등에 대하여 교형에 처하도록 하다 / 458
〈실록기사〉 1907년 7월 24일, 한일협약이 체결되다 / 459
· 일본에 의해 강제로 왕위에 오르다 / 460
· 융희로 연호를 바꾸다 / 461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다 / 461
〈실록기사〉 1909년 10월 26일, 이토 태사가 안중근에게 피살되다 / 467
〈실록기사〉 1909년 10월 26일, 일본 천황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보를 보내다 / 468
〈실록기사〉 1909년 10월 28일,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으로 사흘 동안 음악과 노래를 중시시키다 / 468
〈실록기사〉 1909년 10월 28일, 태자 태사 이토 히로부미에게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주다 / 468
〈실록기사〉 1909년 11월 4일, 이토 히로부미 태사가 피살된 것과 관련하여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리다 / 469
· 한일신협약을 체결하다 / 470
〈실록기사〉 1909년 12월 4일, 일진회장 이용구가 일한 합방 성명서를 발표하다 / 471
〈실록기사〉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을 맺도록 하다 / 480
〈실록기사〉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이 이루어지다 / 481
〈실록기사〉 1910년 8월 29일,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 / 482
· 국권의 피탈과 일본이 남한 대토벌작전을 펼치다 / 483
· 한일합병으로 순종이 물러나다 / 484
· 퇴위 이후 일본을 방문하여 천황 알현을 강요받다 / 485
〈실록기사〉 1910년 6월 8일, 남대문역에서 특별 열차를 타고 동경으로 향하다 / 485
〈실록기사〉 1910년 6월 9일~6월 28일 까지 실록 기사 / 486
· 대한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모두 안은 비운의 황제였다 / 487
· 심장마비로 53세 나이에 승하하다 / 487
〈실록기사〉 1926년 5월 31일, 유릉 빈전에 제문을 짓다 / 488
〈실록기사〉 1926년 6월 11일, 순종 황제의 시책문 / 489
〈실록기사〉 1926년 6월 11일, 순종 황제의 애책문 / 491
〈실록기사〉 1926년 6월 11일, 순종 황제의 지문 / 493
· 순종황제 장례식 장면 / 500
▶신의 정원, 순종 이척의 유릉으로 사진 여행 / 503
▶‘용의 발톱’ 왕 옷엔 5개, 세자는 4개를 그려 구별하였다 / 506
▶전 3권을 마무리하면서 / 509
▶Index /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