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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중)

연산군~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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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3/03
Pages/Weight/Size 150*225*35mm
ISBN 9791190583961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조선의 역사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조선왕조실록』입니다. 임금이 재위한 기간 동안 있었던 모든 사실을 사관이 왕을 따라다니며 실시간으로 기록해 두었다가 왕이 죽은 후에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편찬하였습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지요. 이 때문에 왕도 자기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왕은 좋은 평가를 받아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 위해 바른 정치를 하려고 더욱 노력했지요. 만약 이 실록이 없었다면,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이처럼 자세히 알기는 힘들겠지요.

실록은 권질의 방대함과 아울러 조선시대의 정치·외교·군사·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사회·풍속·천문·지리·음양·과학·의약·문학·음악·미술·공예·학문·사상·윤리·도덕·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입니다. 비록 지배층(궁중) 위주의 관찬 기록이라는 한계성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는 사기史記입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내기 위하여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되었지요. 왕의 실록은 반드시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되었으며, 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습니다.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받아 사소한 사항까지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궁정을 중심으로 한 사건의 기록이어서 지방의 실정을 단적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흠도 있습니다, 또한 선조 때부터의 실록은 기사가 점차 간략하게 기록되었고, 또 붕당정치의 당쟁 때문에 내정에 관한 기사는 다소 조작 및 순화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외교에 관한 기사는 꾸밈이 적고, 중국·만주·일본·유구琉球 등과의 교섭 기록도 매우 많이 존재하여 동아시아사 연구의 사료로도 많이 이용됩니다. 『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중권은 10대 연산군 이융부터 16대 경종 이윤까지의 실록입니다. 자세히 보고 또 보아야 재미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렇습니다.
Contents
■ 제10대 연산군 이융 - 유교적 통치 이념을 거부한 비운의 폐왕

· 총서 / 32
· 불행의 씨앗을 품고 왕위에 오르다 / 32
· 성격이 집요하고 거칠었다 / 34
· 세자 시절 영의정 신승선의 딸과 결혼하다 / 35
· 강력한 절대 권력을 추구하다 / 35
· 1498년 무오사화를 일으키다 / 36
〈실록기사〉 1498년 7월 15일, 유자광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구절마다 풀이해서 아뢰기를 / 38
〈실록기사〉 1498년 7월 16일, 강귀손·유자광 등이 김종직에 관한 일을 논의하다 / 39
〈실록기사〉 1498년 7월 16일, 김종직이 도연명의 술주시를 화답한 내용과 이에 대한 대신들의 논의 / 40
〈실록기사〉 1498년 7월 17일, 김일손이 밝힌 김종직 제자들의 명단 / 45
〈실록기사〉 1498년 7월 17일, 사초 사건으로 김종직의 제자들을 국문할 것을 명하다 / 45
〈실록기사〉 1498년 7월 29일, 유자광에 대한 평가 내용과 무오사화의 전말 / 51
· 1504년 금삼에 깃든 피가 불러온 화, 갑자사화가 일어나다 / 54
〈실록기사〉 1504년 4월 1일, 폐비에 사약 내린 일에 관련된 자를 아뢰게 하다 / 57
〈실록기사〉 1506년 8월 15일, 폐비 윤씨의 기일에도 나인들과 음난 행위를 하다 / 62
· 궁녀 장녹수가 권세를 혼자 쥐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 / 62
· 중종반정으로 폐위되다 / 64
〈실록기사〉 1506년 9월 2일,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 / 65
· 실패한 군주, 패륜 행위를 한 폭군으로 기억되다 / 75
· 강화도 유배 중 31세 나이로 죽다 / 76
〈실록기사〉 1506년 11월 8일, 연산군이 사망하니 대신들과 상사 문제를 논의하다 / 77
▶신들의 정원, 광해군묘와 폐비 윤씨 희릉으로 사진 여행 / 78

■ 제11대 중종 이역 - 신하들의 반정으로 준비 없이 즉위한 왕

· 총서 / 83
〈실록기사〉 1506년 9월 9일, 장녹수 등을 참하고 폐주의 금인·화압·승명패를 철패하다 / 83
·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을 일으키다 / 84
· 연산군의 이복동생, 반정으로 즉위하다 / 87
· 힘없는 왕이었다 / 89
〈실록기사〉 1506년 9월 9일, 신수근의 딸을 궁밖으로 내치다 / 89
〈실록기사〉 1515년 3월 2일, 삼경 오점에 중궁(장경왕후)이 승하하다 / 90
〈실록기사〉 1520년 4월 22일, 왕세자를 책봉하다 / 90
·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실패하다 / 91
· 기묘사화와 훈구 권신이 득세하다 / 93
〈실록기사〉 1519년 11월 15일, 정광필·홍경주·김전 등이 조광조 등의 죄를 아뢰다 / 94
· 외세 침입으로 국방 대책을 강화하다 / 98
· 백운동서원을 세워 안향을 모시다 / 99
〈실록기사〉 1541년 5월 22일, 주세붕을 풍기 군수에 제수하다 / 99
· ‘작서의 변’과 ‘가작인두의 변’이 일어나다 / 101
〈실록기사〉 1527년 3월 22일, 세자의 침실에 쥐를 매달아 양법한 사람을 죄줄 것을 청하다 / 102
〈실록기사〉 1533년 5월 23일, 복성군을 안치하고 박씨의 사사를 명하다 / 105
〈실록기사〉 1533년 5월 24일, 대간이 복성군의 제거를 아뢰니 전교하다 / 109
〈실록기사〉 1533년 5월 27일, 복성군의 시신 운반에 대해 전교하다 / 114
· 권력의 비대화를 막지 못했다 / 115
· 39년 재위, 57세에 승하하다 / 118
〈실록기사〉 1544년 11월 15일, 유시에 상이 환경전 소침에서 훙하였다 / 118
▶신의 정원, 중종 이역의 정릉으로 사진 여행 / 120

■ 제12대 인종 이호 - 성품이 조용하고 욕심이 적었던 왕

· 총서 / 124
· 조선왕조에서 재위 기간(8개월)이 가장 짧았다 / 124
· 1520년 4월 22일 왕세자로 책봉받다 / 124
· 중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다 / 125
· 자식이 없었다 / 126
· 대윤과 소윤이 대립하다 / 126
· 현량과를 부활하다 / 128
· 31세 나이로 승하하다 / 128
〈실록기사〉 1545년 7월 1일, 묘시에 상이 청연루 아래 소침에서 훙서하였다 / 129
▶신의 정원, 인종 이호의 효릉으로 사진 여행 / 128

■ 제13대 명종 이환 - 중종의 둘째 아들, 인종의 이복동생

· 총서 / 132
· 1545년 7월 4일, 조정에 공포한 대행왕의 유교 / 132
· 1545년 7월 6일, 근정전에서 12세에 즉위하다 / 134
〈실록기사〉 1545년 7월 6일, 사유를 반포하다 / 135
〈실록기사〉 1545년 7월 7일, 영의정 윤인경·좌의정 유관이 대상을 당해 삼전에 문안하다 / 136
· 후사가 없는 인종의 뒤를 잇다 / 138
· 6명의 후궁을 두었으나 자식은 없었다 / 138
· 을사사화, 소윤 일파가 대윤 세력을 제거하다 / 139
〈실록기사〉 1545년 9월 11일, 윤임·유관·유인숙 등의 참형을 명하다 / 143
·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다 / 148
· 보우가 불교를 중흥시키다 / 148
· 희대의 도적, 임꺽정의 출현하다 / 150
· 을묘왜변이 일어나다 / 152
〈실록기사〉 1555년 5월 16일, 전라도 관찰사 김주가 달량포에 왜선 70여 척이 침략해왔다고 치계하다 / 152
· 소윤 일파가 몰락하다 / 153
〈실록기사〉 1565년 8월 27일, 윤원형의 방귀 전리를 명하다 / 155
〈실록기사〉 1565년 11월 13일, 윤원형의 첩 정난정이 자살하다 / 156
〈실록기사〉 1565년 11월 18일, 윤원형의 졸기 / 157
· 선정을 베풀지 못한 불행한 왕이었다 / 158
· 34세 나이에 승하하다 / 158
〈실록기사〉 1567년 6월 28일, 축시에 경복궁 양심당에서 훙하다 / 159
▶신의 정원, 명종 이환의 강릉으로 사진 여행 / 161

■ 제14대 선조 이연 - 조선 최대의 전란, 임진왜란을 겪은 왕

· 총서,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 16세에 대통을 잇다 / 165
· 명종의 후사가 없어 바로 왕의 대를 잇다 / 165
· 16세 나이로 왕위에 오르다 / 166
· 사림 일파가 정계를 주도하다 / 168
·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 심화되다 / 169
· 서인이 동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다 / 171
·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피난가다 / 172
〈실록기사〉 1591년 3월 1일, 통신사 황윤길 등이 왜 사신 평조신 등과 돌아오다 / 174
〈실록기사〉 1592년 4월 14일, 왜적이 군사를 일으켜 부산진을 함락시켜 부사 정발과 송상현이 전사하다 / 179
〈실록기사〉 1592년 5월 1일, 상이 개성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따라왔던 경기의 이졸들이 도망하여 흩어지다 / 182
· 이순신이 다시 수군의 지휘권을 잡다 / 189
〈실록기사〉 1592년 10월 1일, 김성일이 의병장 곽재우·이달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도록 하다 / 190
〈실록기사〉 1593년 2월 1일, 순찰사 권율이 적병을 행주에서 격파하다 / 192
· 일본의 재침략, 정유재란이 일어나다 / 194
〈실록기사〉 1597년 2월 1일, 통제사 이순신을 하옥시키라 명하고 원균으로 대신하다 / 195
〈실록기사〉 1597년 7월 22일, 조즙·이순신·권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204
· 이순신이 죽음의 바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다 / 208
〈실록기사〉 1598년 11월 1일,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서 적의 구원병을 패퇴시키고 전사하다 / 209
· 무기의 발달과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다 / 210
· 사림의 분열이 더 치열해지다 / 211
· 붕당정치를 묵인하다 / 212
· 55세의 나이에 승하하다 / 213
〈실록기사〉 1608년 2월 1일, 상이 이날 미시에 정릉동 행궁의 정전에서 훙하다 / 214
▶신의 정원, 선조 이연의 목릉으로 사진 여행 / 215

■ 제15대 광해군 이혼 - 명분보다 실리를 취한 왕

· 임진왜란 중 세자에 책봉되었다 / 218
· 힘들게 왕위를 계승하다 / 221
〈실록기사〉 1608년 2월 2일, 광해군이 선왕의 유교를 받고 어좌에 오르다 / 222
· 자식이 없는 왕이었다 / 226
· 뛰어난 실리외교와 무장 강홍립을 오른팔로 삼다 / 227
〈실록기사〉 1619년 4월 2일, 비변사가 오랑캐에게 투항한 강홍립 등의 직명 삭제와 가속 구금을 청하다 / 228
〈실록기사〉 1619년 4월 3일, 왕이 애통함을 알리는 전교를 중외에 내리다 / 231
· 대동법을 시행하다 / 234
· 왕권을 위해 패륜을 저지르다 / 235
· 계축옥사가 일어나다 / 236
〈실록기사〉 1613년 4월 25일, 좌변 포도 대장 한희길이 서얼 박응서 일당의 강도 사건에 대해 아뢰다 / 236
〈실록기사〉 1613년 5월 4일, 여러 언관들이 역모에 연루된 영창대군의 논계 문제로 인혐하다 / 240
〈실록기사〉 1613년 6월 21일, 성 안의 넓은 집에 영창대군을 내보내게 하다 / 241
〈실록기사〉 1613년 6월 21일, 영창대군을 밤이 깊었으므로 내일 내보내도록 하다 / 241
〈실록기사〉 1613년 6월 21일, 영창대군을 여염집으로 내보내며 왕이 의금부에 내린 전교 / 241
〈실록기사〉 1613년 6월 21일, 영창대군을 내보내니 대비가 눈물의 작별을 하다 / 242
〈실록기사〉 1613년 7월 24일, 정원이 영창대군의 처치를 아뢰니, 비로소 위리안치시키라고 명하다 / 242
〈실록기사〉 1613년 7월 26일, 영창대군을 안치할 지역에 대해 논의하여 강화로 정하다 / 242
· 8살 영창대군이 증살되다 / 247
〈실록기사〉 1614년 2월 10일, 강화 부사 정항이 영창대군 이의를 살해하다 / 247
〈실록기사〉 1614년 2월 10일, 강화 별장 이정표가 이의 죽음을 치계하다 / 248
· 인목대비가 서궁으로 유폐되다 / 248
〈실록기사〉 1618년 1월 2일, 사간원·사헌부 관원들이 최광필의 소에 따라 서궁을 속히 폐출하기를 청하다 / 249
〈실록기사〉 1618년 1월 30일, 서궁을 폄손하는 절목 / 250
· 북인의 권력 남용과 인조반정이 일어나다 / 252
· 사대파에 밀려나다 / 253
· 내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 / 254
· 스승 정인홍을 믿다 / 257
· 반정으로 무너지다 / 257
〈실록기사〉 1623년 3월 12일, 반정이 일어나자 도망하여 의관 안국신의 집에 숨다 / 260
〈실록기사〉 1623년 3월 14일, 대왕대비가 왕을 폐하여 광해군으로 삼고 금상을 왕위 계승케 하다 / 261
· 폐위와 말년 / 263
· 67세의 나이에 승하하다 / 265
▶신의 정원, 광해군과 문성군 부인 유씨묘로 사진 여행 / 266

■ 제16대 인조 이종 -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왕으로 옹립

· 1623년 3월 13일, 의병을 일으켜 즉위하다 / 268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빌미를 제공하다 / 276
· 6남 1녀 자식을 두었다 / 277
· 반정으로 왕이되다 / 278
· 이괄이 난을 일으키다 / 280
〈실록기사〉 1624년 1월 24일, 이괄이 금부 도사 등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다 / 282
〈실록기사〉 1624년 2월 14일, 공주 산성 수비를 논하다. 이괄·한명련이 살해되다 / 283
〈실록기사〉 1624년 2월 15일, 적장으로부터 이괄·한명련 등 역적의 수급을 받다 / 285
· 친명배금 정책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나다 / 286
〈실록기사〉 1627년 1월 17일, 금나라가 침입하자 대책을 논의하다 / 287
· 병자호란과 굴욕의 47일, 삼전도 치욕을 당하다 / 294
〈실록기사〉 1637년 1월 18일, 예조판서 김상헌이 최명길이 지은 국서를 찢고 주벌을 청하다 / 297
〈실록기사〉 1637년 1월 19일, 이조 참판 정온의 최명길이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내용의 차자 / 299
· 김상헌의 절개는 청나라도 인정했다 / 300
〈실록기사〉 1639년 12월 26일, 청나라에 대응할 것에 대한 전 판서 김상헌의 상소 / 301
〈실록기사〉 1637년 1월 29일, 윤집·오달제가 하직 인사를 하다 / 306
〈실록기사〉 1637년 1월 30일,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가다 / 309
· 청나라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삼다 / 314
〈실록기사〉 1645년 2월 18일, 세자가 돌아오고, 청나라 사신도 함께 칙서를 가지고 서울에 돌아오다 / 315
〈실록기사〉 1645년 6월 10일, 대제학 이식이 지은 지문 / 319
〈실록기사〉 1645년 6월 10일, 상호군 김육이 지은 소현세자의 애책문 / 322
〈실록기사〉 1645년 6월 10일, 소현세자에게 내린 증시 책문 / 326
· 어영군의 창설과 대동법을 실시하다 / 327
· 최악의 무능한 왕이었다 / 328
· 55세의 나이에 승하하다 / 329
〈실록기사〉 1649년 5월 8일, 상이 창덕궁 대조전 동침에서 승하하다 / 330
▶신의 정원, 인조 이종의 장릉으로 사진 여행 / 333

■ 제17대 효종 이호 - 북벌계획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왕

· 1649년 5월 13일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336
· 1649년 5월 8일, 효종 대왕이 즉위, 그전의 행실에 대하여 기록하다 / 337
· 1649년 5월 13일, 왕이 즉위하고 대사령을 내리고 교서를 반포하다 / 338
· 소현세자 대신 왕에 즉위하다 / 340
· 정비 인선왕후와 세 명의 후궁을 두었다 / 342
· 인사와 정치를 개혁하다 / 342
· 북벌계획을 추진하다 / 353
〈실록기사〉 1654년 4월 10일, 함경 감사 이응시가 육진의 폐단에 대해 치계하다 / 354
·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다 / 359
· 전세를 낮추어 백성의 부담을 줄이다 / 361
· 구언정책을 펼치다 / 361
· 시헌력을 사용하다 / 362
· 평생을 북벌에 전념하였다 / 363
· 41세 나이에 승하하다 / 363
〈실록기사〉 1659년 5월 4일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 364
〈실록기사〉 1659년 5월 11일 영돈녕부사 이경석 등이 재신들과 빈청에 모여 대행대왕의 시호 등을 정하다 / 365
▶신의 정원, 효종 이호의 영릉으로 사진 여행 / 366

■ 제18대 현종 이연 - 예송논쟁으로 세월을 보낸 왕

· 총서 / 370
· 1659년 5월 9일, 왕위를 이어받다 / 370
· 당쟁 속에서 왕의 권위가 무시되었다 / 372
·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 373
· 의지할 곳은 외척 밖에 없었다 / 374
· 서인 성리학파 송시열 시대가 열리다 / 374
· 1차 기해예송으로 기년복이 채택되다 / 375
〈실록기사〉 1659년 5월 5일, 복제를 고치는 것에 관한 여러 의견 / 375
〈실록기사〉 1659년 5월 5일, 자의 왕대비의 복제에 관한 여러 대신들의 의논 / 376
· 2차 갑인예송으로 선왕의 정통성을 다시 세우다 / 379
〈실록기사〉 1674년 2월 28일, 예조가 대왕 대비전의 복제를 기년으로 마련하다 / 380
〈실록기사〉 1674년 8월 1일, 대왕대비 복제를 기년으로 고쳐 성복하다 / 381
· 훈련별대를 창설과 오가작통 사목을 제정하다 / 382
· 대동법을 호남지방으로 확대 실시하다 / 384
· 34세의 나이에 승하하다 / 384
〈실록기사〉 1674년 8월 18일, 신시에 상의 병세가 매우 위독해지다 / 385
▶신의 정원, 현종 이연의 숭릉으로 사진 여행 / 386

■ 제19대 숙종 이순 - 현종의 외아들 14세에 왕 즉위

· 1674년 8월 23일,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390
·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다 / 392
· 14세 나이에 즉위하다 / 393
〈실록기사〉 1674년 8월 21일, 왕세자가 송시열을 원상으로 삼고자 하다 / 394
· 숙원 최씨가 연잉군을 낳다 / 395
〈실록기사〉 1694년 9월 20일, 숙의 최씨가 왕자를 낳다 / 395
· 외척 김석주가 득세하다 / 396
· 남인 일파가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경신환국 / 397
〈실록기사〉 1680년 4월 12일, 복선군 이남의 교수형을 명하다 / 398
〈실록기사〉 1680년 6월 5일, 윤휴의 사사를 명하다 / 398
· 장희빈 아들이 원자가 되고 남인이 집권한 기사환국 / 400
〈실록기사〉 1686년 12월 10일,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다 / 401
〈실록기사〉 1689년 1월 15일,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삼다 / 404
〈실록기사〉 1689년 5월 2일, 왕비 민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다 / 409
〈실록기사〉 1689년 5월 2일, 왕비 민씨의 간특한 정상을 참지 못하는 비망기 / 409
·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다시 장악한 갑술환국 / 414
· 인현왕후의 복위, 장희빈의 자진을 명하다 / 415
〈실록기사〉 1701년 10월 3일, 궁녀 숙정·숙영·축생 등을 모두 결안 취초하고 군기시 앞길에서 참형시키다 / 416
〈실록기사〉 1701년 10월 3일, 세자를 보전하는 방안으로 장 희빈을 용서하자는 판부사 서문중의 상소문 / 421
〈실록기사〉 1701년 10월 8일, 희빈 장씨를 내전을 질투하여 모해하려 한 죄로 자진하게 하라 / 423
〈실록기사〉 1701년 10월 10일, 자진한 장희빈의 상장의 제수를 참작하여 거행하라고 하교하다 / 424
〈실록기사〉 1701년 10월 10일, 장씨의 상장에 제수를 주라고 호조에게 하교하다 / 425
· 5군영 체제를 확립하다 / 426
· 세자 문제로 노론과 소론이 대립하다 / 427
〈실록기사〉 1716년 1월 25일, 『가례원류』의 후서를 지은 자신의 죄를 처벌할 것을 요청한 권상하의 상소 / 429
〈실록기사〉 1716년 2월 3일, 『가례원류』의 사건에 대해 송시열을 옹호하는 정언 조상건의 상소 / 432
·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다 / 447
·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다 / 448
〈실록기사〉 1712년 2월 24일, 청나라 예부에서 다시 사관을 보내 변경을 심사하겠다는 자문을 보내다 / 449
〈실록기사〉 1712년 4월 7일, 함경북도 장한상 등이 백두산 남쪽의 형세에 대해 치계하고 도본을 바치다 / 450
〈실록기사〉 1712년 5월 23일,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에 대해 치계하다 / 450
· 1699년 울릉도와 우산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이 인정하다 / 451
〈실록기사〉 1696년 10월 13일, 좌의정 윤지선이 안용복의 죄를 논하고 죽이기를 청하다 / 451
·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시키다 / 454
· 60세 나이로 승하하다 / 454
〈실록기사〉 1720년 6월 8일, 임금이 승하하다 / 455
〈실록기사〉 1720년 6월 8일, 임금 승하 후의 반함에 관한 기록 / 460
▶신의 정원, 숙종 이순의 명릉으로 사진 여행 / 461

■ 제16대 경종 이윤 - 노론의 견제 속에 왕이 된 장희빈 아들

· 1720년 6월 13일, 경덕궁에서 즉위하다 / 465
· 1720년 6월 13일, 즉위하여 반포한 교서 / 466
· 노론 시대의 소론 왕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 / 467
· 장희빈의 아들, 33세의 나이로 왕이 되다 / 467
〈실록기사〉 1690년 6월 16일, 세자의 책봉문과 교명문 / 468
〈실록기사〉 1720년 6월 8일, 왕세자의 책례가 끝났으므로 교서를 내려 사유를 반포하다 / 469
· 경종과 소론의 반격, 신임옥사 / 471
〈실록기사〉 1721년 8월 20일, 영의정 김창집·좌의정 이건명·판중추 부사 조태채 등의 청에 따라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다 / 472
·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 / 493
· 연잉군에 대해 형제의 의리를 지키다 / 493
〈실록기사〉 1724년 8월 24일, 의식을 잃자 인삼차를 올리다 / 494
· 37세 나이에 승하하다 / 495
▶신의 정원, 경종 이윤의 의릉으로 사진 여행 / 496
▶Index / 500
Author
김흥중,손귀분,이남철,배용구
『태종 이방원』, 『7년 전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어린이 조선왕조실록』, 『왕의 일기, 일성록과 정조의 리더십』 편집위원.
『태종 이방원』, 『7년 전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어린이 조선왕조실록』, 『왕의 일기, 일성록과 정조의 리더십』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