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택가.
허름한 차림으로 혼자 중얼거리는 중년 남자가 골목을 배회한다. 그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빌라 2층. 혼자 사는 수현은 두려운 표정으로 커튼 뒤에 숨어 밖을 살펴본다. 게임에서 친해진 남자가 아무래도 미행을 하는 것 같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호신용으로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가지고 다닌다. 수현의 아랫집에 사는 정은. 윗집의 소음으로 스트레스가 많다. 뿡뿡 콩콩 두 마리 개와 함께 사는 그녀는 산책길에 개 목줄을 하지 않아 다른 개 주인들과 싸움을 벌였다. 정은의 개들 때문에 피해를 본 체리와 민정. 둘은 친구 사이로 한집에 산다. 체리는 인기 상승중인 유튜버이고, 민정은 알바를 전전하며 희망 없는 연애를 이어간다.
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술집에서 슈퍼에서 종종 마주치며 서로를 ‘사이코’라 부른다. ‘사이코’라 불리는 이들은 제때 결제되지 않는 원고료 때문에 속 태우는 프리랜서, 싱싱한 몸 하나밖에 가진 게 없는 미래가 막연하고 불안한 청년, 커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째 앉아 있는 손님을 내쫓고 싶은 카페 사장… 저마다의 고만고만한 문제들을 안고 사는 별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각자의 문제는 각자의 일일 뿐, 툭 터놓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없다. 저마다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려는 각자의 노력뿐이다. 한밤의 살인사건, 외모와 젊음과 돈에 따른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 착취적인 연애가 시끄럽게 벌어지는 고독한 우리 동네.
이웃은 없고 ‘삐-’만 사는 이곳엔 마음 놓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무해한 친절, 별 뜻 없는 다정함, 무언의 신뢰 같은 것은 없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이상해진 걸까?
2022년 카카오웹툰에 연재해 인기를 얻은 마영신 작가의 『우리 동네 삐-』는 종이책으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큰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며 전환되는 장면 연출이 긴장감을 더하고, 깊은 밤 깜빡이다 팟! 하고 켜지는 빨간 신호등,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에 삽입된 ‘위험’ 표지판, 폭주하는 주인공 뒤로 보이는 ‘STOP’ 사인 등, 우리 동네를 스릴러의 배경으로 만드는 여러 장치와 연출이 돋보인다.
Author
마영신
공장, 영화 촬영장, 편의점, 노점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작가. 2007년 만화 잡지 [팝툰]에 「뭐 없나?」를 수록하며 데뷔했다. 이후 『남동공단』 『벨트 위 벨트 아래』 『삐꾸래봉』 『엄마들』 『연결과 흐름』 『콘센트』 『아티스트』 등 현실적이고 사회성 짙은 만화를 발표했다. 주로 출판 만화로 활동하다가 [19년 뽀삐](2015, 다음 웹툰)를 시작으로 웹에 연재를 하고 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만화 원고지에 펜촉과 잉크로 작업하고 있다. 예술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들과 함께 레이블 ‘즐겨찾기’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엄마들》로 만화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하비 상을 수상했다.
공장, 영화 촬영장, 편의점, 노점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작가. 2007년 만화 잡지 [팝툰]에 「뭐 없나?」를 수록하며 데뷔했다. 이후 『남동공단』 『벨트 위 벨트 아래』 『삐꾸래봉』 『엄마들』 『연결과 흐름』 『콘센트』 『아티스트』 등 현실적이고 사회성 짙은 만화를 발표했다. 주로 출판 만화로 활동하다가 [19년 뽀삐](2015, 다음 웹툰)를 시작으로 웹에 연재를 하고 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만화 원고지에 펜촉과 잉크로 작업하고 있다. 예술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들과 함께 레이블 ‘즐겨찾기’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엄마들》로 만화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하비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