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소산인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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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9/15
Pages/Weight/Size 165*237*34mm
ISBN 9791189801304
Categories 인문 > 출판/서점
Description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은 좌소산인((左蘇山人) 서유본 (徐有本, 1762∼1822)의 문집으로 일본 오사카[大阪] 부립(府立) 나카노지마도서관[中之島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다. 총 8권 4책인 이 책은 권1과 권2는 시(詩), 권3부터 권7까지는 서(書)·변(辨)·해(解)·설(說)·의(議)·서(序)·기(記)·제(題)·발(跋)·논(論)·서후(書後)·유사(遺事)·제문(祭文)·광지명(壙誌銘), 권8은 의론류인 〈독명사교사지(讀明史郊祀志)〉와 전(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우 다양한 글쓰기 체제를 담고 있다. 수록된 시와 산문은 일상생활의 감흥이나 할아버지나 아버지 동생을 위해 대신 지은 만시(挽詩) 등 응제 작품부터 현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시대 최고의 역상학자 김영(金泳)와 주고 받은 편지나 여러 가지 논변류의 저술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문집은 서명응(徐命膺) 일가의 총서(叢書)와 유서(類書) 편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민섭과 풍석문화재단에서 『임원경제지』와 『풍석총서』 등을 교정한 박정진이 공역하였다.
Contents
일러두기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해제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1 시詩 〉〉
비온 후 여러 친구들과 남산에 올라 雨後同諸益登南山 30 | 금강산 1만 2천 봉 응제應製 【사중舍仲 유구有?를 대신하여 짓다】 金剛一萬二千峯應製 【代舍仲】 30 | 고려 왕릉에서의 회고시 高麗國陵懷古 34 | 금경암金經庵의 최현?絢 스님께 드리다 金經庵贈?絢上人 34 | 화장사 華藏寺 35 | 문효세자文孝世子만장 【아버지 서호수徐浩修를 대신하여 짓다】 文孝世子挽章 【代家大人】 36 | 판부사判府事 황경원黃景源 만장 【조부 서명응徐命膺을 대신하여 짓다】 黃判府事 【景源】 挽 【代王考】 39 | 혜경궁惠慶宮 회갑 탄신일에 삼가 임금께서 지으신 지희시志喜詩에 화답하다 【아버지 서호수徐浩修를 대신하여 짓다】 惠慶宮周甲誕辰恭和御製志喜詩?【代家大人】 39 | 당숙 전시군殿侍君의 죽령초당竹?草堂 【3수】 堂叔殿侍君竹?草堂作 【三首】 40 | 재종숙부 보은 수령에게 드리다 【낙수洛修 】 寄贈再從叔報恩守 【洛修】 42 | 우연히 읊다 偶吟 43 | 삼가 어제시御製詩를 차운하여 【아버지를 대신하여 짓다】 敬次御製詩韻 【代家大人】 44 | 삼가 임금님께서 봉조하奉朝賀 구윤명具允明에게 내린 시에 차운하여 【아버지를 대신하여 짓다】 敬次御製賜奉朝賀具允明詩?【代家大人】 47 | 정순왕후貞純王后 만장 【사중舍仲을 대신하여 짓다】 貞純王后輓章 【代舍仲】 47 | 강가에 살며 감흥이 절로 일어나 江居漫興 49 | 강가에 살며 이것저것 읊다 江居雜詠十五首 50 | 가을밤에 별을 보며 秋夜觀星 54 | 백화주百花酒 새로 익어, 이를 기뻐하여 장구長句를 짓다 百花酒新熟喜而賦長句 55 | 김영金泳이 연경에 가는 것을 전송하며 送金君泳赴燕 57 | 윤사응尹士應 【종렬鍾烈】 아내 만사 尹士應 【鍾烈】 室內挽 60 | 벗과 달밤에 배 띄우고 운자를 뽑아 함께 읊다 與友人乘月泛舟拈韻共賦 61 | 자하동 紫霞洞 62 | 관악산冠岳山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冠岳山望海 63 | 충현사忠賢祠를 참배하고 謁忠賢祠 64 | 삼막사 三幕寺 65 | 낙성동 落星洞 66 | 가을날 골짜기를 가며 秋日峽行 67 | 고개를 넘으며 踰嶺 68 | 선유동 仙遊洞 68 | 운선의 아홉 굽이 노래 雲仙九曲詠 69 | 수운정水雲亭에서 또 읊다 水雲亭又賦 72 | 삼선암 三仙巖 72 | 수일암 守一庵 74 | 도담島潭에 배를 띄워 단양군수가 가기歌妓를 태우고 술과 안주를 갖춰 위로하다 泛舟島潭主?載歌妓具酒饌以勞之 75 | 구담龜潭을 지나며 過龜潭 77 | 한벽루 寒碧樓 78 |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만사를 짓다 代人輓 79 | 나비를 놓아 주다 放蝶 79 | 이른 봄 길에서 早春途中 80 | 즉흥시 卽事 80 | 근심을 달래다 排悶 81 | 다시 앞의 운으로 지어 아내에게 보이다 復疊前韻示內子 81 | 벽제점碧蹄店에서 옛날을 회상하다 碧蹄店懷古 82 | 서호정西湖亭에서 술 마시며 봄을 감상하다 西湖亭小酌賞春 83 | 길을 가다가 途中 84 | 방옹放翁, 육유 시를 읽고 讀放翁詩 85 | 재종숙再從叔 서낙수徐洛修와 부평富平 관아에서 당시唐詩 운자를 뽑아 함께 읊다 再從叔富平衙中拈唐詩韻共賦 85 | 계양산桂陽山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桂陽山望海 86 | 백운사白雲寺를 찾아가며 산중에서 짓다 將訪白雲寺山中作 87 | 도리평桃里坪 이생李生에게 주다 【서문을 아울러 쓰다幷序】 贈桃里坪李生 【幷序】 88 | 백운사 白雲寺 93 | 산을 나서며 出山 94 | 금수정金水亭, 정유貞?박제가朴齊家의 시에 차운하여 金水亭次朴貞?【齊家】 韻 94 | 백화주百花酒를 부평富平 관아에 드리면서 홍시紅?를 구하는 시 2수首 寄呈百花酒于富平衙中仍求紅?二首 95 | 이조묵李祖默의 영설시詠雪詩 운자에 차운하여 次李生祖默詠雪詩韻 96 | 또 읊다 再疊 98 | 불경佛經을 읽고 느낌이 있어 讀佛經有感 99 | 서호西湖에 배띄우고 운자를 뽑아 西湖放舟拈韻 100 | 즉흥시 卽事 100 | 우계牛溪에 머무르며 주인 성사형成士亨 【재순載淳】 에게 드리다 留宿牛溪題贈主人成士亨 【載淳】 101 | 주인이 밤에 학경적鶴脛笛을 불며 노래부르는 이에게 화답하게 하다 主人夜吹鶴脛笛令歌者和之 101 | 학경적가鶴脛笛歌, 비원賁園 성사형成士亨 노형을 위해 짓다 鶴脛笛歌爲賁園成士亨老兄作 102 | 우계주인牛溪主人에게 드리다 寄贈牛溪主人 105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2 시詩 〉〉
옛날의 감회를 읊은 시 【서문을 아울러 쓰다】 感舊詩十首 【幷序】 108 | 오영방吳榮邦에게 주다 贈吳生榮邦 112 | 양화楊花 나루 楊花渡 113 | 조선행 漕船行 114 | 꿈에서 어떤 사람이 은관銀管의 큰 붓을 한 자루 주어, 꿈에서 깬 후 희작?作으로 한 수를 짓다 夢有人贈銀管大毫一枝旣覺戱題一首 116 | 스스로 비웃다 自嘲 118 | 매화시, 동파東坡의 시에 차운하여 梅花詩次東坡韻 119 | 또 읊다 再疊 120 | 세 번째로 읊다 三疊 120 | 11월 그믐에 대설이 내려 至月晦大雪 121 | 술에 취하여 酒熟 122 | 채붕도가 綵棚圖歌 123 | 심생沈生 【달수達秀】 의 하목정霞鶩亭에 제하다 題沈生 【達秀】 霞鶩亭 126 | 심생沈生이 조어釣魚와 나작羅雀 두 시를 보내와, 차운하여 다시 보내다 沈生送示釣魚羅雀二詩次韻却寄 127 | 근래 오래도록 근체시近?詩를 짓지 않다가 지금 짧은 율시 두 수를 완성했는데 한참 읊조리기만 하다가 희작으로 절구 한 수를 지어 스스로 달래다 近日久不作近?詩今成二短律頗費吟?戱題一絶以自解 128 | 할아버지 문정공文靖公의 서호십경西湖十景 시에 삼가 차운하여 【서문을 아울러 쓰다】 謹次王考文靖公西湖十景詩韻 【幷序】 128 | 철면장군가鐵面將軍歌, 윤병사尹兵使 【욱렬郁烈】 을 위해 짓다 鐵面將軍歌爲尹兵使 【郁烈】 作 134 | 황진묘黃眞墓 세 절구 【황진이는 국초의 이름난 기생이다. 묘가 장단長湍에 있는데 내가 있는 여막과 10여 리 떨어져 있었다. 이웃 사람이 나에게 말하길, 묘 근처에 작은 샘물이 있는데 맛이 달고 차며 범상치 않아 유람하는 객들이 모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데, 세속에서는 황진이를 장사 지낸 후 이 샘물이 홀연 솟아났다고 한다】 黃眞墓三絶 【黃眞國初名倡也墓在長湍距余丙舍十餘里隣人爲余言墓上有一?泉?甘冽異常游客皆以手?飮俗傳黃眞葬後此泉忽湧云】 136 | 차운하여 오생吳生에게 주다 次韻贈吳生 137 | 길에서 본 것을 기록하다 路中記所見 138 | 신사년辛巳年, 1821년 3월에 토성·목성·수성·화성 네 행성이 벽수璧宿의 도내度內에 모여들고 태백성太白星이 규성奎星의 자리에 있으니 이는 바로 송宋 나라 건덕乾德, 송 태조 연호 이후 처음 있는 상서이다 이에 감동하여 장구長句를 지어 기록하다 辛巳三月土木水火四緯星聚于璧宿度內太白次于奎?卽宋乾德以後初有之瑞也感而作長句以識之 138 | 또 읊다 又賦 140 | 하목정霞鶩亭 심생沈生이 두견주杜鵑酒 한 병을 주며 열흘 후 송순주松?酒가 익을 것이라 하여 빨리 시를 지어 구하다 霞亭沈生餉杜鵑酒一壺又云旬後松?酒當發?走筆爲詩以求之 141 | 초여름 즉흥시 初夏卽事 142 | 집에 있는 다섯 사물에 대한 노래 家居五物詠 142 | 장맛비, 아내의 시에 차운하여 霖雨次室人韻 145 | 비가 조금 그쳐, 이조묵李祖默이 두보杜甫의 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여 빠르게 짓다 雨稍歇走筆次李生祖默步杜韻 146 | 이생李生의 희청喜晴, 날이 갠 기쁨 시에 차운한 2수首 次李生喜晴詩韻二首 146 | 잠야도蠶野圖에 제하다 題蠶野圖 147 | 궂은 비 苦雨 148 | 비가 그치지 않아, 또 붓을 휘둘러 장편을 짓다 雨不止又走筆爲長篇 148 | 겸재화첩가謙齋?帖歌 【서문을 아울러 쓰다】 謙齋?帖歌 【幷序】 149 | 연행가는 강이대姜?大를 송별하며 送別姜生 【?大】 燕行 152 | 참동계參同契를 읽으며 讀參同契 154 | 윤사응尹士應 만사 14운韻 尹士應輓十四韻 154 | 함관노인가咸關老人歌 【서문을 아울러 쓰다】 咸關老人歌 【幷序】 156 | 서재에서 지낼 때의 감흥 【42수】 齋居感興 【四十二首】 160 | 한궁행락도漢宮行樂圖에 제하여 題漢宮行樂圖 186 | 생각나는대로 읊다 漫吟 187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3 문文 〉〉
중부仲父 명고공明?公에게 올린 편지 上仲父明?公書 190 | 중용문목中庸問目 【답서答書 부록】 中庸問目 【附答書】 191 | 중부 명고공에게 올린 편지 上仲父明?公書 207 | 중부 명고공에게 올린 편지의 별지別紙 上仲父明?公別紙 209 | 중부 명고공에게 답하여 올린 편지 上答仲父明?公書 214 | 재종숙再從叔 【낙수洛修】 에게 답한 편지 答再從叔 【洛修】 書 221 | 사중舍仲 준평準平에게 보낸 편지 與舍仲準平書 231 | 사중舍仲에게 보낸 편지 與舍仲書 233 | 삼종제三從弟 유련有璉에게 답한 편지 答三從弟有璉書 236 | 재종숙再從叔 한림翰林 【기수淇修】 에게 답한 편지 答再從叔翰林 【淇修】 書 239 | 삼종제三從弟 유교有喬에게 답한 편지 答三從弟有喬書 245 | 족질族姪 형보炯輔에게 답한 편지 答族姪炯輔書 247 | 김영金泳에게 답한 편지 答金生泳書 248 | 김영金泳에게 보낸 편지 與金生泳書 254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4 문文 〉〉
유계중柳繼仲 【경儆】 에게 보낸 편지 與柳繼仲 【儆】 書 260 | 유계중柳繼仲에게 보낸 편지 與柳繼仲書 281 | 어떤 사람에게 답한 편지 答或人書 290 | 정뢰鄭?에게 답한 문목問目 答鄭生?問目 306 | 정예동鄭禮東에게 답한 편지 答鄭生禮東書 311 | 하경우河慶禹에게 보낸 편지 與河生慶禹書 313 | 정전井田과 구혁溝?의 구분에 대한 논변 井田溝?分合辨 315 | 천자天子와 제후諸侯가 절복絶服하는 것에 대한 논변 天子諸侯絶服辨 322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5 문文 〉〉
서자는 후세에 전해주는 제사가 없다는 것에 대한 논변 庶無傳祭辨 334 | 주상主喪의 주主에 두 개의 뜻이 있다는 것에 대한 논변 主有二義辨 336 | 처妻를 위해 연제練祭를 지내
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논변 爲妻無練辨 338 | 상복喪服 해설 喪服解 345 | 선기옥형으로 측험한 것에 대한 설명 璿璣玉衡測驗說 349 | 기영氣盈과 삭허朔虛에 대한 설명 氣朔盈虛說 352 | 역수曆數에 대한 설명 曆數說 354 | 제례祭禮에 대한 설명 祭禮說 364 | 대부大夫와 사士가 4대까지 제사지내는 것에 대한 논설 大夫士祭及四世說 367 | 정제正祭를 지내는 때에 대한 논설 正祭時日說 372 | 진찬進饌에 밥을 오른쪽에 두고 국을 왼쪽에 둔다는 것에 대한 논설 進饌右飯左羹說 378 | 소렴小斂할 때 변복變服하는 것에 대한 논설 小斂變服說 381 | 중重에 대한 설명 重說 387 | 교대絞帶를 포布로 바꾸는 것에 대한 논설 絞帶變布說 390 | 조석곡朝夕哭과 조석전朝夕奠에 대한 논설 朝夕哭奠說 392 | 우제虞祭를 지낼 때 축祝의 자리에 대한 설명 虞祭祝位說 395 | 이염二厭에 대한 논설 二厭說 396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6 문文 〉〉
국조國朝의 사전祀典에 대한 개인적인 의론 國朝祀典私議 404 | 국휼國恤 중 자기 집안의 제사를 지내야 할지에 대한 의론 國恤中私祭行否議 417 | 상제祥祭와 담제?祭에 대한 의론 祥?議 422 | 부제?祭에 대한 의론 ?祭義 429 | 상제喪祭에 적炙을 올리는 것에 대한 의론 喪祭進灸義 432 | 부친 상중에 조부와 모친을 위한 상복에 대한 의론 父喪中服祖服母議 433 | 남의 후사가 된 자가 본생의 친척들을 위해 복을 입는 것에 대한 의론 爲人後者爲本生諸親服議 438 | 시집간 여자가 본종本宗을 위해 복을 입는 것에 대한 의론 嫁女爲本宗服義 448 | 서자의 자식이 부친이 사망한 뒤 부친의 생모를 위하여 복을 입는 것에 대한 의론 庶子之子父歿服其父所生母議 450 | 승중承重하는 자의 아내가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따라서 복을 입어야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의론 承重者之妻姑在則當從服與否議 453 | 부친에게 폐질廢疾이 있어, 아들이 대신 조부를 위해 승중복承重服을 입는 것에 대한 의론 父有廢疾子代服祖重議 456 | 《금석사료錦石史料》 서문 錦石史料序 459 | 《삼례소지》 인문引文 三禮小識引 464 | 《가례소지》 서문 家禮小識序 465 | 서증조모庶曾祖母 조온趙?65세 수서壽序 庶曾祖母趙?六十五歲壽序 468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7 문文 〉〉
필유당必有堂에 대한 기문 必有堂記 474 | 운룡산인雲龍山人 초상화에 대한 기문 雲龍山人小照記 478 | 선기옥형璿璣玉衡에 대한 기문 璿璣玉衡記 483 | 《기하몽구幾何蒙求》에 쓴 제사 題幾何蒙求 485 | 집에 소장된 《대학大學》에 쓴 발문 家藏大學跋 486 | 순경荀卿을 논함 荀卿論 488 | 구양수歐陽修의 〈의복왕전례차자議?王典禮箚子〉 뒤에 쓰다 書歐陽公議?王典禮箚子後 493 | 《고려사高麗史》 〈교사지郊祀志〉 뒤에 쓰다 書高麗史郊祀志後 498 | 기해예론己亥禮論 뒤에 쓰다 書己亥禮論後 499 | 외삼촌 능주목사綾州牧使 이공李公, 이항한(李恒漢) 유사遺事 內舅綾州牧使李公遺事 504 | 장모 정경부인貞敬夫人 유씨柳氏를 위한 제문 祭外姑貞敬夫人柳氏文 515 | 재종숙부 부사공府使公 【낙수洛修】 을 위한 제문 祭再從叔府使公 【洛修】 文 520 | 사위 윤원강尹元剛 【치대致大】 를 위한 제문 祭女壻尹元剛 【致大】 文 523 | 윤사응尹士應, 윤종렬을 위한 제문 祭尹士應文 530 | 은행나무 신에게 드리는 제문 祭杏樹神文 533 | 고목古木에 대한 제문 祭古木文 534 | 삼유의三游儀에 대한 명銘 【서문을 아울러 쓰다】 三游儀銘 【幷序】 535 | 좌우명 座右銘 538 | 죽은 아이 조열祖悅 광지명壙誌銘 亡兒祖悅壙誌銘 539

좌소산인문집左?山人文集 권8 문文 〉〉
《명사明史》의 〈교사지郊祀志〉를 읽고 讀明史郊祀志 544 | 진주晉州에서 국난에 목숨을 바친 여러 신하들의 전傳 晉州殉難諸臣傳 548 | 인의引儀 김영金泳 가전家傳 金引儀泳家傳 598

참고문헌 서목 608
색인 610
Author
서유본,한민섭,박정진
서유본(徐有本, 1762~1822)은 본관이 대구(大丘), 자(字)는 혼원(混原), 호(號)는 좌소산인(左蘇山人)이다. 좌소산(左蘇山)은 대구 서씨 세거지(世居地)가 있는 경기도 장단(長湍) 백악산(白岳山)의 다른 이름이다. 서유본 가문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조부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은 육조(六曹)의 판서(判書)와 대제학(大提學)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고,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보만재사집(保晩齋四集)》 등 거질의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또한 서명응의 동생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은 정조(正祖)를 옹립한 공이 있어서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부친 학산(鶴山) 서호수(徐浩修, 1736~1799)는 호조판서와 규장각직제학(奎章閣直提學)을 지냈고 《규장총목(奎章總目)》을 편찬하였으며, 중부 명고(明皐) 서형수(徐瀅修, 1749~1824)는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뽑힌 뒤 정조의 어명찬(御命撰) 경학류(經學類) 서적(書籍)을 편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향촌에 거주하는 사대부의 이상적인 삶에 관해 서술한 거질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편찬한 것으로 유명한 풍석(楓石) 서유구(徐有?, 1764~1845)는 그의 친동생이고, 여성을 위한 가정생활 총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편찬한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가 그의 부인이다.

서유본은 서유구와 함께 조부 서명응과 중부 서형수에게 경학과 문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탄소(彈素) 유금(柳琴, 1741~1788)을 숙사(塾師)로 두고 《사기(史記)》를 배웠다. 서유본은 젊어서 과거 공부에 전념하여 관각체(館閣體)에 매우 뛰어나, 조부 서명응이나 부친 서호수가 관각(館閣)에 응제(應製)할 것이 있으면 그에게 초고 작성을 부탁했다고 한다. 현재 문집에는 서명응과 서호수뿐 아니라 동생 서유구를 위해 대신 지은 응제 작품들이 여럿 실려있다. 서유본은 18세에 상시(庠試),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서 변려문(騈儷文)을 익히는 데 더욱 힘썼으나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44세인 1805년에 음보(蔭補)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나, 1806년에 중부 서형수가 김달순(金達淳)의 옥사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면서 서유본도 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서유본은 이후 삼호(三湖, 지금의 마포)의 행정(杏亭)에 교거(僑居)하며 경전을 연구하고 책을 저술하며 세월을 보냈다.
서유본(徐有本, 1762~1822)은 본관이 대구(大丘), 자(字)는 혼원(混原), 호(號)는 좌소산인(左蘇山人)이다. 좌소산(左蘇山)은 대구 서씨 세거지(世居地)가 있는 경기도 장단(長湍) 백악산(白岳山)의 다른 이름이다. 서유본 가문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조부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은 육조(六曹)의 판서(判書)와 대제학(大提學)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고,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보만재사집(保晩齋四集)》 등 거질의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또한 서명응의 동생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은 정조(正祖)를 옹립한 공이 있어서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부친 학산(鶴山) 서호수(徐浩修, 1736~1799)는 호조판서와 규장각직제학(奎章閣直提學)을 지냈고 《규장총목(奎章總目)》을 편찬하였으며, 중부 명고(明皐) 서형수(徐瀅修, 1749~1824)는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뽑힌 뒤 정조의 어명찬(御命撰) 경학류(經學類) 서적(書籍)을 편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향촌에 거주하는 사대부의 이상적인 삶에 관해 서술한 거질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편찬한 것으로 유명한 풍석(楓石) 서유구(徐有?, 1764~1845)는 그의 친동생이고, 여성을 위한 가정생활 총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편찬한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가 그의 부인이다.

서유본은 서유구와 함께 조부 서명응과 중부 서형수에게 경학과 문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탄소(彈素) 유금(柳琴, 1741~1788)을 숙사(塾師)로 두고 《사기(史記)》를 배웠다. 서유본은 젊어서 과거 공부에 전념하여 관각체(館閣體)에 매우 뛰어나, 조부 서명응이나 부친 서호수가 관각(館閣)에 응제(應製)할 것이 있으면 그에게 초고 작성을 부탁했다고 한다. 현재 문집에는 서명응과 서호수뿐 아니라 동생 서유구를 위해 대신 지은 응제 작품들이 여럿 실려있다. 서유본은 18세에 상시(庠試),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서 변려문(騈儷文)을 익히는 데 더욱 힘썼으나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44세인 1805년에 음보(蔭補)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나, 1806년에 중부 서형수가 김달순(金達淳)의 옥사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면서 서유본도 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서유본은 이후 삼호(三湖, 지금의 마포)의 행정(杏亭)에 교거(僑居)하며 경전을 연구하고 책을 저술하며 세월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