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눈 결정을 최초로 관찰하기 시작한 대략 3세기 전부터 지금까지 수천 개에 달하는 눈 결정체를 종이나 필름 상에 포착해왔지만, 그 가운데 완벽하게 닮은 한 쌍을 발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눈에 아예 든 적 없는, 아니 사람이 영영 보지 못할 수십 억, 수조 개에 달하는 눈 결정은 어떨까요? 적어도 개중 서로 얼마간이라도 닮은 한 쌍을 찾을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1655년 로버트 훅이란 과학자는 사방에 쌓이고 흩날리는, 르네 데카르트가 작은 장미 또는 톱니 여섯 개 달린 바퀴라고 묘사 한 바 있는 눈 결정을 처음으로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훅은 세계 최초로 발명된 현미경 중 하나를 통해 눈 결정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살피려 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이 눈이 녹아 없어졌지요. 그러니 훅이 그린 그림들은 직접 관찰보다는 기억의 산물입니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정밀한 사진 기법들 덕에 과학자들은 눈 결정의 자연적인 증발을 이제 시간 속에 정지시킬 수가 있고, 그렇게 우리는 원껏 눈 결정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 결정 하나가 손가락 위에 머물다가 돌연 물방울로 되돌려지는 건 한순간의 일이나, 그 물방울을 그대로 얼린다고 눈 결정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리 얼려 얻는 건 작은 얼음 방울, 얼음 구슬에 불과해요. 눈 결정 하나의 정교하고 기적에 다를 바 없는 모양은 그 눈 결정이 구름량과 기온과 습도가 어우러져 형성하는 유일무이한 환경 조견을 통과하며 지나온 길이 빚은 것이고, 티끌 한 점에서 탄생해 극미하고 쉽게 깨어지는 결정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전 생애를 담아낸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러스티 브라운』에서
1970년대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의 눈 쌓인 저녁,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나의 눈 결정은 아름답고 완결적이며 날렵한 테두리를 둘렀지만, 이들이 이루는 눈보라는 비정형의 꼴로 속도를 내며 거기 속한 이들을 휩쓸고 묻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칸을 통해 크리스 웨어는 여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전달합니다. 무력한 인물들이나마, 지나쳐온 고유한 환경과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이 현재를 덮칠 때 이들의 미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이 책 속의 세부는 단순히 전체에 봉사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의미를 발합니다.
Author
크리스 웨어,이예원
『쥐』의 만화가 아트 스피글먼이 발행하는 잡지 RAW에 작품을 게재하면서 만화가로 성장하고, 판타그래픽스에서 1993년부터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라는 만화 단행본-잡지를 펴낸다. 매호 달라지는 판형, 실험적인 장면 구성과 내러티브 전략, 갈수록 디테일로 파고드는 집요한 편집 방식으로, 그만의 만화-디자인 장르를 선보였다. 주요 작품으로 『지미 코리건』(2000), 『빌딩 스토리즈』(2012), 『러스티 브라운』(2019)이 있고, 아이스너상, 하비상, 앙굴렘 작품상, 앙굴렘 그랑프리 등을 수상했다.
『쥐』의 만화가 아트 스피글먼이 발행하는 잡지 RAW에 작품을 게재하면서 만화가로 성장하고, 판타그래픽스에서 1993년부터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라는 만화 단행본-잡지를 펴낸다. 매호 달라지는 판형, 실험적인 장면 구성과 내러티브 전략, 갈수록 디테일로 파고드는 집요한 편집 방식으로, 그만의 만화-디자인 장르를 선보였다. 주요 작품으로 『지미 코리건』(2000), 『빌딩 스토리즈』(2012), 『러스티 브라운』(2019)이 있고, 아이스너상, 하비상, 앙굴렘 작품상, 앙굴렘 그랑프리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