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문학론, 우정과 희로애락을 담은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이 읻다의 서한집 시리즈 [상응]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일생의 벗이었던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소세키에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을 권유해 소설가의 길로 이끈 작가 다카하마 교시, 평생을 함께 한 아내 나쓰메 교코, 소세키가 가장 아낀 문하생이었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가족과 친구, 동료 문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했다.
이 책은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발행한 『소세키 전집』에 수록된 2천여 편의 편지 가운데 옮긴이 김재원이 145편을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영문학을 공부하며 하이쿠를 쓰던 청년기에서 시작해 정부의 명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던 런던 유학생 시절, 처음으로 쓴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둔 뒤 생계와 창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년기를 지나 심각한 위장병에 시달리면서도 집필을 놓지 않고 젊은 문하생들과 교우하던 만년까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을 한 권에 살필 수 있다.
Contents
1부 · 청년 시절 1889~1899
1889년 5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1
1889년 5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3
1889년 9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5
1889년 12월 31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27
1890년 1월 (날짜 불명),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30
1890년 7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39
1890년 8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42
1891년 4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47
1891년 11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50
1892년 7월 19일,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62
1892년 12월 14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64
1894년 3월 9일, 도쿄 혼고구 기쿠치 겐지로에게 67
1894년 9월 4일, 도쿄 혼고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70
1895년 4월 16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간다 나이부에게 73
1895년 5월 26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75
1895년 12월 18일,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79
1896년 6월 10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3
1897년 1월 (날짜 불명),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4
1897년 4월 23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마사오카 시키에게 86
1899년 12월 11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다카하마 교시에게 90
2부 · 영국 유학 시절 1900~1902
1900년 9월 27일, 기선 프로이센호 나쓰메 교코에게 95
1900년 10월 23일, 파리 나쓰메 교코에게 98
1900년 11월 20일, 런던 웨스트햄스테드 후지시로 데이스케에게 101
1901년 1월 22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나쓰메 교코에게 103
1901년 2월 20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나쓰메 교코에게 108
1901년 4월 9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11
1901년 4월 20일, 런던 캠버웰뉴로드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21
1901년 4월 26일, 런던 투팅그래버니 마사오카 시키ㆍ다카하마 교시에게 134
1901년 6월 19일, 런던 투팅그래버니 후지시로 데이스케에게 143
1901년 9월 12일, 런던 클랩햄코먼 데라다 도라히코에게 145
1901년 12월 18일, 런던 클랩햄코먼 마사오카 시키에게 148
1902년 3월 10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쓰메 교코에게 151
1902년 3월 15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카네 시게카즈에게 154
1902년 4월 17일, 런던 클랩햄코먼 나쓰메 교코에게 158
1902년 12월 1일, 런던 클랩햄코먼 다카하마 교시에게 161
3부 · 도쿄대 교수 시절 1903~1906
1903년 6월 14일, 도쿄 혼고구 스가 도라오에게 167
1903년 7월 2일, 도쿄 혼고구 스가 도라오에게 170
1904년 6월 18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74
1905년 1월 1일, 도쿄 혼고구 노마 마사쓰나에게 176
1905년 2월 13일, 도쿄 혼고구 미나가와 세이키에게 178
1905년 6월 27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79
1905년 7월 15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2
1905년 9월 11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5
1905년 9월 16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189
1905년 9월 17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191
1905년 11월 2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193
1905년 11월 9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194
1905년 12월 3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196
1905년 12월 31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198
1906년 1월 9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01
1906년 2월 6일, 도쿄 혼고구 노무라 덴시에게 205
1906년 2월 13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07
1906년 2월 17일, 도쿄 혼고구 아네사키 조후에게 211
1906년 4월 3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13
1906년 6월 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14
1906년 7월 2일, 도쿄 혼고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216
1906년 7월 24일, 도쿄 혼고구 나카가와 요시타로에게 220
1906년 9월 5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23
1906년 10월 10일, 도쿄 혼고구 와카스키 사부로에게 225
1906년 10월 20일, 도쿄 혼고구 미나가와 세이키에게 227
1906년 10월 21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29
1906년 10월 21일, 도쿄 혼고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33
1906년 10월 23일, 도쿄 혼고구 가노 고키치에게 236
1906년 10월 23일, 도쿄 혼고구 가노 고키치에게 241
1906년 10월 2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46
1906년 10월 26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48
1906년 11월 9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51
1906년 11월 16일, 도쿄 혼고구 다키타 조인에게 253
1906년 12월 22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57
4부 · 아사히신문사 시절 1907~1912
1907년 1월 27일, 도쿄 혼고구 쇼노 소노스케에게 263
1907년 3월 11일, 도쿄 혼고구 사카모토 셋초에게 265
1907년 3월 23일, 도쿄 혼고구 노가미 도요이치로에게 269
1907년 7월 21일, 도쿄 혼고구 노가미 도요이치로에게 271
1907년 8월 5일, 도쿄 혼고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73
1907년 8월 6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75
1907년 8월 15일, 도쿄 혼고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77
1907년 9월 2일, 도쿄 혼고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280
1908년 7월 1일, 도쿄 우시고메구 다카하마 교시에게 282
1908년 8월 (날짜 불명), 도쿄 우시고메구 시부카와 겐지에게 284
1908년 10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가케 마사후미에게 286
1908년 12월 20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288
1909년 2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타 소헤이에게 291
1909년 4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스즈키 미에키치에게 293
1909년 7월 6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295
1909년 8월 1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이다 마사요시에게 297
1909년 11월 28일, 도쿄 우시고메구 데라다 도라히코에게 299
1910년 2월 3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베 요시시게에게 303
1910년 6월 23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06
1910년 7월 3일, 도쿄 고지마치구 도가와 슈코쓰에게 307
1910년 9월 11일, 시즈오카현 슈젠지 나쓰메 후데코ㆍ쓰네코ㆍ에이코에게 309
1910년 10월 31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11
1910년 12월 13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13
1910년 12월 14일, 도쿄 고지마치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14
1911년 1월 6일, 도쿄 고지마치구 미야 히로시에게 316
1911년 2월 2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18
1911년 2월 10일, 도쿄 고지마치구 나쓰메 교코에게 320
1911년 2월 21일, 도쿄 고지마치구 후지하라 료지로에게 322
1911년 2월 24일, 도쿄 고지마치구 사카모토 셋초에게 324
1911년 4월 13일, 도쿄 고지마치구 후지하라 료지로에게 326
1911년 7월 31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28
1911년 10월 4일, 도쿄 우시고메구 유게타 세이이치에게 330
1911년 10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32
1912년 5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시구치 고요에게 335
1912년 6월 17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야시바라 고조에게 337
1912년 6월 18일, 도쿄 우시고메구 니시하라 구니코에게 339
1912년 8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나리 린조에게 340
1912년 10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베 지로에게 342
1912년 12월 4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44
5부·만년 1913~1916
1913년 1월 12일, 도쿄 우시고메구 모리나리 린조에게 349
1913년 10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와쓰지 데쓰로에게 350
1913년 11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다카하라 미사오에게 353
1913년 11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356
1913년 12월 8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58
1913년 12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에게 360
1914년 1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카기 고헤이에게 362
1914년 1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이즈미 마가네에게 364
1914년 1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366
1914년 3월 29일, 도쿄 우시고메구 쓰다 세이후에게 368
1914년 4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마쓰오 간이치에게 370
1914년 5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모타 요시오에게 371
1914년 6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무라 겐조에게 372
1914년 6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모타 요시오에게 374
1914년 7월 7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타지마 에이이치에게 375
1914년 8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야마모토 쇼게쓰에게 377
1914년 10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나카 간스케에게 379
1914년 11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시나가 히데코에게 381
1914년 11월 14일, 도쿄 우시고메구 하야시바라 고조에게 382
1914년 12월 27일, 도쿄 우시고메구 요시나가 히데코에게 384
1915년 1월 25일, 도쿄 우시고메구 후지모리 히데오에게 385
1915년 2월 15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로야나기 가이슈에게 387
1915년 4월 22일, 도쿄 우시고메구 도미사와 게이도에게 389
1915년 5월 3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소다 다카에게 391
1915년 5월 16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소다 다카에게 393
1915년 6월 15일, 도쿄 우시고메구 무샤노코지 사네아쓰에게 396
1915년 7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다 요시코에게 399
1915년 8월 9일, 도쿄 우시고메구 도쿠다 슈세이에게 402
1916년 1월 13일, 도쿄 우시고메구 이다 요시코에게 404
1916년 2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07
1916년 7월 19일, 도쿄 우시고메구 오이시 다이조에게 409
1916년 8월 5일, 도쿄 우시고메구 와쓰지 데쓰로에게 412
1916년 8월 21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메 마사오ㆍ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15
1916년 8월 24일, 도쿄 우시고메구 구메 마사오ㆍ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18
1916년 9월 2일, 도쿄 우시고메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423
1916년 11월 6일, 도쿄 우시고메구 고미야 도요타카에게 426
1916년 11월 10일, 도쿄 우시고메구 기무라 겐조에게 429
옮긴이의 말 431
나쓰메 소세키 연보 437
Author
나쓰메 소세키,김재원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불화가 이어졌는데 그때의 경험은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을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영국 유학 중 신경 쇠약에 빠진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일했지만 다시 정신 질환을 앓는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1905년, 다카하마 교시의 권유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직을 떠나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대부분의 저작은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坊っちゃん)』, 『풀 베개(草枕)』, 『산시로(三四?)』, 『마음(こころ)』, 『노방초(道草)』 『명암』(미완) 등이 있다.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불화가 이어졌는데 그때의 경험은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을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영국 유학 중 신경 쇠약에 빠진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일했지만 다시 정신 질환을 앓는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1905년, 다카하마 교시의 권유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직을 떠나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대부분의 저작은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坊っちゃん)』, 『풀 베개(草枕)』, 『산시로(三四?)』, 『마음(こころ)』, 『노방초(道草)』 『명암』(미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