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은 동학이 1900년대 들어 전면으로 직면한 근대 서구세계와 서구문명을 동학 철학과 이념으로 ‘해석’하여 주체적 동학문명론을 구축해 나간 최초의 저작인 오상준의 『초등교서』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초등교서』는 개화기 청년지식인의 대표적인 필독서 중 하나로 우리나라가 근대 문명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우리 정신문명의 핵심범주를 동학의 시천주 사상과 유기체적 국가론의 관점으로 제시한다.
호가 추암(秋菴)이고, 아호는 옥천(玉泉), 옥천자(玉泉子)이다. 그는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주체적 문명개화운동을 이론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1882년(임오) 11월 30일 평남 평원군(숙천군)에서 출생하였고, 1900년 법관양성소를 수료하였으며 서북학회에서 활동하였다. 1902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입도 후 의암 손병희가 이끄는 1차 유학생(1902년)에 선발되어 일본 나라현에 유학했다가 6월에는 교토로 옮겨 관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09년 총리대신 이완용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왜경에 체포되었다가 한일 강제 병합 때에는 예비검속을 당했고, 1910년 8월 15일 『천도교회월보』 창간에 참가했으며 편집위원을 지내면서 많은 교리 논설을 발표했다. 그는 대표적인 천도교 이론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1907년 『초등교서(初等敎書)』를 저술 간행했고, 천도교회월보에 「본교역사」와 소설 「화악산」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또한 1923년 7월 조선노동자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보성전문학교의 재단법인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1929년에는 신간회경성지회 대표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호가 추암(秋菴)이고, 아호는 옥천(玉泉), 옥천자(玉泉子)이다. 그는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주체적 문명개화운동을 이론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1882년(임오) 11월 30일 평남 평원군(숙천군)에서 출생하였고, 1900년 법관양성소를 수료하였으며 서북학회에서 활동하였다. 1902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입도 후 의암 손병희가 이끄는 1차 유학생(1902년)에 선발되어 일본 나라현에 유학했다가 6월에는 교토로 옮겨 관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09년 총리대신 이완용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왜경에 체포되었다가 한일 강제 병합 때에는 예비검속을 당했고, 1910년 8월 15일 『천도교회월보』 창간에 참가했으며 편집위원을 지내면서 많은 교리 논설을 발표했다. 그는 대표적인 천도교 이론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1907년 『초등교서(初等敎書)』를 저술 간행했고, 천도교회월보에 「본교역사」와 소설 「화악산」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또한 1923년 7월 조선노동자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보성전문학교의 재단법인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1929년에는 신간회경성지회 대표회원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