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름대로 시를 ‘당의정(糖衣錠) 시’와 ‘환약(丸藥)의 시’로 나누어 버릇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당의정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단맛을 풍기는 무언가를 껴입고 그 모양이 자못 매끈하고 야멸찬 느낌이 드는 반면에 환약이라는 단어는 환이라는 동글고 고담하고 애잔한 이미지에 약이라는 옹이까지 붙어 쓴맛이 배어 나오는 데다 색조도 검은색, 회색 같은 무채색이 태반이다.
비호감에 외면받기 십상인 이런 환약의 시를 왜 30년간 간단 없이 빚어 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무슨 억하심정이나 옹고집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고, 아마도 세상사 인간사 양지쪽보다는 음지쪽에 더 눈이 가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있는 곳에 더 마음이 쏠리고, 한발 앞서 뛰어가기보다 한발 뒤처져 걷는 일에 더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이렇게 하여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붙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그동안 남의 눈치 안 보고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대지 않고 온갖 것에 부대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싫은 내 색 한번 없이 묵묵히 참고 견디며 오늘에 이른 이들이 하냥 안쓰럽고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하직의 인사도 못 올리고 보내드린 어머니 영전에 뒤늦게 이 시집을 바친다.
Contents
시인의 말
제1부
악화일로 | 호곡장(好哭場) | 시집 코너에서 | 종묘 정전 | 공개서한 | 면류관들 |
종로3가 환승역에서 | 탑골공원에서 | 달팽이 슬랩스틱 | 다육이 | 낮달이, 웃었다 | JERUSALEM | 오감도(烏敢圖) 2022 | 인계철선 위에서 | 나 없는 곳 | 천국을 웃기는 사람들
제2부
금산사 | 연화리 | 좋은 값 | 싸락눈의 비유 | 옛 버들방천에 올라 | 성벽 | 두 암자 이야기 | 그 가을의 말풍선 | 제비나비의 꿈 | 산수유꽃 아래 | 안짱다리에 대한 기억 | 벌레는 뭘 벌지? | 거미좌의 액운 | 비정성시 로드리게스 | 박우만 본가입납 | 삶의 삶
제3부
왕십리 | 분당선 | 금정역에서 | 종이배 | 하도급 인생 | 서울 세석평전 | 칩보다 침 | 팔황(八荒) | 우중호일(雨中好日) | 지평선축제 | 헌신 | 난색 | 랜드마크 | 벽 쪽으로 돌아눕다 | 박우만, 눈에 칼을 대다 | 화순 적벽 | 박우만은 오늘 서부에 간다
제4부
눈물의 양식 | 적빈 | 다슬기 식구 | 쓸모 있는 밤 | 밤의 홍시 | 나부 날다 | 겨울 영산홍 | 첫 번째 봄 편지 | 두 번째 봄 편지 |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나면 | 무지개 할머니 | 동백장 | 탁발 | 이것이 내 기도다 | 당신! | 얼어붙은 피 | 누드엘리베이터 | 마스크 쓴 마르크스
제5부
유등(流燈) | 겨울의 사랑 | 박우만이 악어옷을 입는 날 | 빙탄의 시 | 손발을 기리는 노래 | 카프카 레시피 | 독선생 | 두 손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은 | 미간(眉間) | 어느 꽃 핀 바위에 대해 묻는 일 | 상고대 마주하고 | 희미할 것도 없는 옛사랑의 그림자 | 이것은 봄꽃인가 눈꽃인가 봄눈꽃인가 | 백세시대 | Heaven과 Hell이 타성받이가 아니거늘 | 라이더 라이더 라이더! | 서오릉 대빈묘 앞에서 | 해 질 녘 | 물방울 하나로
해설 | 최재봉(작가, 문학전문 기자)
Author
박해석
전주에서 태어났다. 1995년 국민일보 문학상으로 등단했다. 1995년 시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창비)로 국민일보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견딜 수 없는 날들』와 『중얼거리는 천사들』, 『하늘은 저쪽』, 동시집 『동그라미는 힘이 세다』 등이 있다. 그리고 엮은 책으로는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과 박목월 동화집 『눈이 큰 아이』가 있다.
전주에서 태어났다. 1995년 국민일보 문학상으로 등단했다. 1995년 시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창비)로 국민일보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견딜 수 없는 날들』와 『중얼거리는 천사들』, 『하늘은 저쪽』, 동시집 『동그라미는 힘이 세다』 등이 있다. 그리고 엮은 책으로는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과 박목월 동화집 『눈이 큰 아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