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사후 퇴계의 학문은 지역적인 거점을 가지고 당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당파를 의미하는 “남인”이라는 말과 퇴계학을 계승했다는 “퇴계학파”라는 말이 별 생각 없이 같이 쓰이곤 한다. 하지만 학문은 학문이고, 정치는 정치이다. 아무리 내성외왕의 도학을 지향했다고 해도 조선 유학이 이 둘을 같이 보지는 않는다. 진리를 자기 것으로 한 사람의 정치를 지향한 것이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김성일은 같은 동인에 속하는 허성에게 “의리가 부합되면 친우지만 그렇지 않으면 길에서 어쩌다 마주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은 언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사상사 연구는 학연, 혈연, 지연 등을 따져 학문을 규정하고, 이를 정치적 의미에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건이 같으면 결과도 같으리라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시각을 바꾸어 퇴계학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먼저 따지고 이를 기준으로 그의 학문이 어떻게 이어지고 바뀌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서울, 경기 지역에 기반을 둔 근기 남인들의 학문을 따져보았는데, 대체적인 결론은 이들의 학문이 퇴계의 학문을 있는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사상사의 상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소리라 할지 모르겠다. 최근 근기 지역의 실학과 퇴계학을 연결하여 보려는 노력까지 있고 보면, 이런 결론이 결코 가볍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점에서 조선유학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한다. 전문서의 특성상 읽기가 조금 어렵지만 세상 어떤 전문서가 쉽게 읽히겠는가?
Contents
서문
책의 구성과 내용 등에 대하여
조선의 도학: 퇴계와 율곡의 성학
퇴계와 율곡 성학의 구조: 전통적 학 개념과 퇴?율 성학의 이학?심학 연관 구조
1. 들어가며: 유학 분류의 기준에 관하여
2. 성학의 구조와 검증 체계
3. 이학?심학, 그리고 성학
4. 퇴?율 심학의 귀결과 도학 실천 방향
5. 나오며
사계와 우암의 퇴계?율곡 읽기: 이발 비판과 심시기 강조의 한계
1. 들어가며
2. 율곡의 호발 비판과 일본의 이상
3. 사계와 우암의 심시기와 이발 비판
4. 이의 의미 재발견과 율곡학파의 분열
5. 나오며
근기 남인의 학문: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
한강 정구의 성리학 체계와 연원: 천리와 인욕의 대립 구조와 “정중유물”의 의미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2. 천인일리의 상동구조와 본질적 주재
3. 본질과 현실의 내외 대립적 구조
4. 생명성 편재의 본체와 무욕 속 정 본체
5. 나오며: 정맥과 고풍, 그리고 현실적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