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윌리엄 L. 코트니 해설판
$10.80
SKU
9791186809273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4/18 - Thu 04/24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4/15 - Thu 04/17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6/11/10
Pages/Weight/Size 140*205*20mm
ISBN 9791186809273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사회의 진보로 이어지는가를 이야기하는 책 『자유론』

“이 책에서 전개되는 모든 논의가 직접 지향하는 숭고한 기본 원리는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절대적이고도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훔볼트의 글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결국 『자유론』의 핵심이 다양성에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인간의 개성을 신장시키고 개인의 의견과 행동 방식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성과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오늘날의 사회에 대해 『자유론』은 150여 년 전에 이미 그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고 나아가 사회를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는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에도『자유론』은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당대의 철학자이자 언론인 윌리엄 L . 코트니 해설판 『자유론』

윌리엄 코트니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언론인이며 작가이다. 섬머셋셔 대학의 학장을 지낸 그는 자신의 저서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의 서문 형식으로『자유론』의 해설을 썼다. 밀의 생애 후반부와 겹치는 시대를 살아온 코트니는 밀의 일생과 그의 사상에 대해, 밀과 교류한 사상가들과 지인들에 대한 취재와 분석을 통해 직접적이고도 정확한 정보를 주고 있으며『자유론』이 탄생하기까지 밀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심도 깊게 전하고 있다. 코트니의 해설은 한 작가의 저작물에 담긴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자유론』 각 장의 내용에 대한 명쾌한 정리와 현실에서의 적용

『자유론』 원서를 정확하고 꼼꼼하게 번역한 것은 물론이고, 옮긴이의 말에는 『자유론』 각 장에 대한 명쾌한 요약과 해설로 『자유론』에 담긴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를 하나의 틀로 교육하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인가’ 등, 지금 우리 사회의 현안을 『자유론』의 사상에 비추어 어떻게 분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가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Contents
W. L. 코트니 해설 / 존 스튜어트 밀과『 자유론』에 대하여 ·5
제1장_ 머리글 ·25
제2장_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대하여 ·53
제3장_ 복지의 요소인 개성 ·131
제4장_ 개인에 대한 사회적 권위의 한계 ·171
제5장_ 원리의 적용 ·211
옮긴이의 말 · 254
Author
존스튜어트 밀,김대성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