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복합지식의 창출과 소통을 위한 인문언어학"을 표방하며 출발한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인문한국(HK)사업단이 수행한 연구의 결실이다. 인문한국사업단은 생득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언어능력의 법칙과 인지 구조의 해명을 목표로 삼아 언어학 고유의 연구방법론을 개발하는 가운데, 한국인이 산출해 낸 무수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 담론과 담화, 역사와 현대성을 규명하는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학문적 의제, 방법론,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인문한국사업단의 성찰과 확장의 도정을 "언어학의 성찰, 쟁점과 과제", "언어와 인간, 지평의 확대", "이야기와 공동체, 문화와 역사"라는 세 갈래로 묶어낸 것이다.
제1부는 문어, 규범 문법, 일국적 시야의 언어 교육 중심의 연구방법론을 넘어서고자 하는 언어학의 자기 성찰과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제안들이다. 서상규의 글은 삶의 현장의 언어인 구어의 고유한 특성을 언어정보학적 방법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하고자 한 시도이다. 유현경은 학교나 교육현장 등 한국어 언어공동체 내부에서만 '표준'으로 통용되는 이상적인 문법이 아니라, 학문·교육·생활의 각 영역에서 언어생활의 준거를 제공할 새로운 문법의 수립을 제안한다. 강현화의 글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어교육학의 학문적 성과들을 반성한다.
제2부는 언어학에 기반한, 혹은 언어학과 제휴한 인접 학문 영역의 도전적인 발화들로서, 인문학의 분과학문으로서 언어학이 인간학의 차원으로 확산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향희 등의 글은 유창성 실어증 환자의 이야기 만들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이야기 능력을 이야기 문법의 규칙 체계에 비추어 범주화·계량화한다. 이로써 임상 치료의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평가 도구의 방법론을 도출해 낸다. 송현주 등의 글은 인간의 모방이 단지 타인의 행동 목표에 대한 표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기제임을 제시한다.
제3부는 기존의 담론이나 역사 연구에서 거대담론 혹은 거대서사에 의해 도외시되었던 공동체의 구술, 사적·대중적 발화에 깃든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 일상생활의 체험을 복원하는 시도들이다. 김영희는 한국의 구술문화에 재현된 '우주의 중심 이동' 내러티브를 통해 전래 마을 공동체의 신화적 내러티브가 생성하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주목한다. 박애경은 193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요 중 이국문물에 대한 동경과 밤의 향락을 구가한 재즈송, 도시의 세태와 좌충우돌하는 군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만요(漫謠)를 통해 식민지 하 우울한 청춘들의 자화상을 조망한다. 임성모의 글은 근대기 한국인의 월경과 이산(diaspora)의 체험이 언어 역사 문학을 횡단하는 방법론을 통해 규명해야 할 사각과 공백 지대가 있음을 제시한다.
Contents
제1부 언어학의 성찰, 쟁점과 과제
서상규 _ 한국어의 구어와 말뭉치
유현경 _ 표준 문법의 개념과 필요성
강현화 _ 다문화 관련 한국어교육학 연구의 쟁점
제2부 언어와 인간, 지평의 확대
변주영·신지철·김덕용·김향희 _ 유창성 실어증 환자의 자발화 이야기 문법 특성
김은영·송현주 _ 형태론적 정보를 활용한 만 3세 아동의 타인행동 모방능력
제3부 이야기와 공동체, 문화와 역사
김영희 _ ‘우주의 중심 이동’ 서사와 로컬리티(Locality)의 균열
박애경 _ 환락과 환멸-1930년대 만요와 재즈송에 나타난 도시의 ‘낯선’ 형상
임성모 _ 문학 속의 월경(越境)하는 대중-한국 여성 노동자의 오키나와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