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토지와 주택문제에 직면한 지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50년 전에 제시한 해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세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살았던 19세기와 너무도 비슷하다. 19세기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혁명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한 반면, 자본과 노동의 모순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21세기에는 소위 IT 산업혁명의 완성으로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자본과 노동의 모순에 정보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모순까지 겹쳐 있어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집값 상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특히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태동하여 맹위를 떨치며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냈던 사회에서는 토지와 주택문제가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 집중된 영역이었다. 의식주 중에서도 주거지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서민·노동자들의 주택문제 해소와 토지 공개념을 제시한 최초의 저서
이 책은 19세기 말 이후의 주택문제에 대한 일련의 저작들, 즉 엥겔스의 『주택문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중 ‘대도시’, 레닌의 『국가론 노트』 중 『주택문제』, 레닌의 『국가와 혁명』 중 ‘엥겔스의 보충부분’을 소개하고, 또 토지 국유화와 관련된 마르크스의 저작인 『토지 국유화에 대하여』와 레닌의 『사회민주주의의 농업강령』 중 제3장 ‘국유화와 자치체 소유화의 이론적 기초’를 담고 있다. 이는 당시 주택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살펴본 다음, 이런 이론들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그 대처방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하였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면서 주택문제의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 엥겔스의 『주택문제』를 읽어볼 만하다. 1872∼73년에 집필하여 역사적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Contents
옮긴이의 글
1장 주택문제
Zur Wohnungsfrage/The Housing Question
독일어본 제2판 서문
프루동은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부르주아지는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다시 한 번 프루동과 주택문제에 관하여
2장 토지국유화에 대하여
Uer die Nationalisierung des Grund und Bodens/The Nationalization of the Land
토지국유화에 대하여
3장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대도시
주요 직물 산업의 공장 노동자
4장 1905~1907년 제1차 러시아 혁명기의 사회민주주의 농업강령
The Agrarian Programme of Social-Democracy in the First Russian Revolution, 1905-1907
제3장 국유화와 자치체 소유화의 이론적 기초
5장 국가론 노트(마르크스주의 국가론)
Marxism on the state
주택문제
6장 국가와 혁명
Государство и Pеволюция/The State and Revolution
제4장 보론_엥겔스의 보충설명
부록
1_ 한국경제와 주택건설의 제문제
2_ 고대 주택의 발달사(경제사적으로 본 고대 건축의 추이)
Author
마르크스,엥겔스,김대웅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