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역원의正易原義』는 김일부 선생이 살아계실 때 이상룡 선생이 집필한 『정역』관련 최초의 주석서이다. 올해는 『정역원의正易原義』가 간행된지 130년、 활자로 인쇄된지 106년이 되는 해이다.
이상룡李象龍(1850~1899) 선생은 충청도 청양 출신으로 휘諱는 곤、 자字는 경직景直、 초명은 상룡象龍、 호는 십청十淸이다.
이상룡 선생은 15세에 시詩·서書·역易을 통했다고 한다. 그 후 24세에 다시 역리易理 연구를 십여 년간 하였으나、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다가 36세인 1885(乙酉)년에 비로소 김일부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선후천 변역의 이치(先后天變易之理)를 대각했다고 전해오며、 정역계에 입문한 지 5년째인(40세) 1889(己丑)년에 후학을 위해 『정역원의正易原義』를 지었다.
1899(己亥)년에 위학僞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였는데, 선생이 직접 옥중에서 무고를 밝혀 석방이 되었다. 선생은 석방된 그 달에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선생의 나이 50세였다.
이상룡 선생의 『정역원의 正易原義』를 인용한 사람들 중에는 『정역주의』를 집필한 김정현 선생과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한 한동석 선생이 있다.
김정현 선생은 『정역주의』에서 기수奇數와 우수偶數에 대해 “解字之義는嘗聞於李斯文十淸而其理甚明故로 取而記之니라”고 하였으며, 한동석 선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간지干支에 주註를 달면서 “간지를 취상 해설한 것은 60년 전의 十淸 李斯文이거니와 이와 같은 正明은 진실로 신비경에서 왕래한 者의 특출한 明의 所作이라 할 것이다. 여하간 진리는 글자(漢字) 자체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 하여 『정역원의正易原義』「역설독법제자굴易說讀法制字窟」편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정역원의正易原義』는 하상역河相易(1859~1916)이 총독부의 승인을 받아 1913년에 두 차례 발간을 하였다. 1차 발행시에는 부록이 없었고, 3개월 후 2차 발행시에는 부록이 추가 되어 있다.
청도 청양 출신으로 휘諱는 곤, 자字는 경직景直, 초명은 상룡象龍, 호는 십청十淸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선생은 15세에 시詩·서書·역易을 통했으며, 24세에 다시 역리易理 연구를 십여 년간 하였다. 36세인 1885(乙酉)년에 비로소 김일부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선후천 변역의 이치(先后天變易之理)를 대각했다. 40세에 『정역원의正易原義』를 집필하였는데, 일부 선생문하에 입문한 지 5년째인 1889(己丑)년 이었다.
50세인 1899(己亥)년에 위학僞學으로 몰려 동지 11人과 같이 옥살이를 하였다. 옥중에서 선생이 직접 무고를 밝혀 석방은 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온 그 달에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향년 50세였다.
청도 청양 출신으로 휘諱는 곤, 자字는 경직景直, 초명은 상룡象龍, 호는 십청十淸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선생은 15세에 시詩·서書·역易을 통했으며, 24세에 다시 역리易理 연구를 십여 년간 하였다. 36세인 1885(乙酉)년에 비로소 김일부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선후천 변역의 이치(先后天變易之理)를 대각했다. 40세에 『정역원의正易原義』를 집필하였는데, 일부 선생문하에 입문한 지 5년째인 1889(己丑)년 이었다.
50세인 1899(己亥)년에 위학僞學으로 몰려 동지 11人과 같이 옥살이를 하였다. 옥중에서 선생이 직접 무고를 밝혀 석방은 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온 그 달에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향년 5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