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흄은 어려서부터 역사, 문학, 철학에 빠졌으며, 수학과 자연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미 20대 후반인 1739~40년에 『인간본성론』을 출간하였고, 이외에도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1748), 『도덕의 원리들에 관한 탐구』(1751),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1779; 사후 출간) 등 다양한 주제의 저술을 남겼다. 또한 총 여섯 권으로 구성된 『영국사』(1754~62)로 철학자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대중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한편, 흄은 평생 학자로만 살지는 않았다. 1763~65년에는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관의 대사 비서로 시작해 대리대사를 지냈으며,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지금의 외무부 차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흄의 주저인 『인간본성론』의 원래 기획에는 오성, 정념, 도덕에 이어 비평(criticism)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이 기획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의 미학이론의 핵심이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와 「비극에 대하여」 등에 담겨 있다.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흄은 어려서부터 역사, 문학, 철학에 빠졌으며, 수학과 자연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미 20대 후반인 1739~40년에 『인간본성론』을 출간하였고, 이외에도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1748), 『도덕의 원리들에 관한 탐구』(1751),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1779; 사후 출간) 등 다양한 주제의 저술을 남겼다. 또한 총 여섯 권으로 구성된 『영국사』(1754~62)로 철학자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대중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한편, 흄은 평생 학자로만 살지는 않았다. 1763~65년에는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관의 대사 비서로 시작해 대리대사를 지냈으며,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지금의 외무부 차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흄의 주저인 『인간본성론』의 원래 기획에는 오성, 정념, 도덕에 이어 비평(criticism)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이 기획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의 미학이론의 핵심이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와 「비극에 대하여」 등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