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히틀러에 대한 유일한 내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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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06/24
Pages/Weight/Size 152*225*45mm
ISBN 9791186000342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만약 히틀러에게 절친이 있었다면, 바로 나일 것입니다.”

저자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전쟁 물자 생산을 총괄한 군수장관이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각료 중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해 20년 형을 선고받은 슈페어는 2만 2,000여 건의 문서를 바탕으로 회고록 『기억』을 완성했다.

『기억』은 매 쪽마다 내부자가 아니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에피소드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히틀러의 건강염려증과 사이비 의사에 대한 맹신, 기이한 식생활과 반려견에 대한 애정, 사치스러운 히틀러의 애인으로 알려진 에바 브라운의 속사정, 독특한 옷차림을 선호했던 괴링의 취향, 관료주의로 부패하고 있던 나치 정권의 이면 등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전모 역시 이 책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히틀러에 관한 가장 내밀한 묘사” 또는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자기변명”이라는 평을 받으며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Contents
1부

1 출생과 어린 시절
유년 - 고향에서 보낸 소년 시절 - 학교생활 - 인플레이션 - 테세노 교수의 조교로 임용 - 결혼

2 직업과 소명
아프가니스탄에서 날아온 제의 - 일거리 없는 건축가 - 보트 여행 - 1930년 9월 14일 선거 - 민족사회주의와 공과대학 - 히틀러의 첫 번째 전당대회 - 스포츠 궁전에서 있었던 괴벨스의 연설 - 나치당 가입

3 갈림길
베를린에서 주어진 첫 번째 당 임무 - 다시 만하임으로 - 히틀러의 베를린 시위대 - 당 청사 개축과 선전장관과의 첫 만남 - 1933년 5월 전당대회장 연출 - 나의 건축주 히틀러 - 히틀러의 초대

4 나의 자극제
히틀러의 손님 - 건축주 괴링 - 히틀러와 함께한 여행 - 히틀러의 야망 - 히틀러의 예술론 - 오래된 싸움꾼 - 오버잘츠베르크에서 에바 브라운과의 산책 - 환희와 망상 - 건축가 히틀러

5 건축적 과대망상
룀 사건 - 파펜을 쫓아버리다 - 힌덴부르크 장례식 - 첫 번째 승인 - 폐허 가치 이론 - 얼음 성전 - 정초식 - 뉘른베르크를 위한 계획 - 막강한 권력을 지닌 건축가

6 위대한 임무
베를린 계획 - 빈과 파리의 라이벌 - 히틀러와 그의 건축가들 - 파리박람회 독일 전시관 - 우리 시대의 신고전주의 - 미완의 프랑스 여행 - 노이라트의 완고함

7 오버잘츠베르크
보어만과 히틀러 - 오버잘츠베르크의 하루 - 티타임과 대화 - 히틀러 격노하다 - 린츠에서의 사임 - 히틀러의 예언

8 새 총리 청사
임명 - 히틀러의 병 - 모렐 박사 - 938년의 사건: 개각, 오스트리아, 뮌헨, 11월 9일 - 불길한 징조 - 새 총리 청사를 찾은 하하 대통령

9 총리 청사의 하루
기다림 - 별난 헤스 - 리더십의 ‘스타일’ - 급진주의자들, 보어만과 괴벨스 - 히틀러를 위한 농담 - 지루한 저녁시간 - 히틀러와 음악

10 절제되지 않은
“네가 완전히 미친 게로구나” - 대로 설계 - 과대망상 - 건축 완공 시일 - 비용 - 전역에서 건축 붐이 일다 - 히틀러의 스케치 - 괴벨스 가의 스캔들 - 이탈리아 익명 여행 - 히틀러의 50번째 생일 -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가족과 함께 - 괴벨스 부인

11 세계
히틀러 권력의 중심 -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 - ,000만 인구를 대표하는 제국의회 - 히틀러의 궁전 - 폭동에 대한 두려움 - 제국 스타일 - 세계

12 그럴듯한 시작
협정 - 오버잘츠베르크 너머 북쪽 불빛 - “피” - 전쟁과 평화 - 전쟁으로 나아가는 히틀러 - 수뇌부에서 - 정전 - 파리에서 히틀러와 함께 - 전시의 건축 프로그램

13 극단
개선문 아치 아래에서 벌인 승리 퍼레이드 - 영국으로 날아간 헤스 - 미술품 수집가 히틀러와 괴링 - 대소련 전쟁 시작 - 트론트하임과 동쪽 - 나의 마지막 예술 기행 - 러시아에서의 재앙 - 제국의 2인자


2부

14 새로운 임무
드네프로페트로프스키로 날아가다 - 수뇌부 방문 - 히틀러와의 대화 - 토트의 죽음 - 히틀러의 청중 - 장관으로 임명되다 - 괴링의 출연 - 첫 번째 공식 활동 - 장애를 극복하다 - 각료실

15 준비된 즉흥곡
새 조직도 구성 - 괴링이 사임을 종용하다 - 건축과 기술 - 산업계의 자기 분담 - 내각 구성 - 성공

16 태만
과학기술 전쟁 - 총동원령을 위한 노력 - 당에 반대하다 - 전쟁을 위해 더 많은 철광을 - 수송 위기 - 원자폭탄을 놓치다

17 총사령관 히틀러
히틀러와의 상황회의 - 나의 시스템 - 기술 분야에 대한 히틀러의 지식 - 무기 시험 - 남부 러시아 방문 - 엘브루스 등산 사건 - 히틀러의 상황 판단 - 연합군, 남아프리카에 상륙하다 - 괴링과 스탈린그라드

18 음모
보어만 - 각료회의 재개 - 긴축 경제의 필요성 - 괴벨스와의 토의 - 연합 - 보어만의 시스템 - 괴벨스와 총통지휘부에서, 괴링과 베를린에서 - 대실패 - 힘러의 위협

19 제국의 2인자
괴벨스와 보어만이 협력하다 - 히틀러가 괴벨스를 견제하다 - 수감자 활용 반대 - 아시아로 향한 다리 - 구데리안과 차이츨러의 동의 - 군수 및 전시생산 장관

20 폭격
새로운 국면 - 괴링의 기만 - 루르 댐 - 표적 전략 폭격 - 함부르크 공습 - 볼베어링 - 적의 전략상착오 - 베를린 폭격 - 갈란트에 대한 히틀러의 오해 - 현실 도피

21 1943년 가을의 히틀러
변화 - 히틀러의 경직과 쇠진 - 매일의 일상 - 히틀러와 그의 개 - 헤세 왕 - 무솔리니의 탈출과 속임수

22 퇴락의 길
점령지의 군사력 - 프랑스와의 협상 - 자우켈의 반격 - 관구장들 앞에서 연설하다 - 장군들에게 거짓말을 한 히틀러 - 라플란드 시찰 - 보병 프로그램 - 자우켈이 일으킨 문제 - 괴링의 생일


3부

23 병상에서
위험한 각본 - 회복기 - 공군 관계자들과의 싸움 - 히틀러의 감정과 새로운 소리 - 나의 후계자로 거론된 인물 - 사임을 고려하다 - 다시 베르크호프로 - 히틀러의 양보 - ??옵서버??의 찬사

24 세 번 진 전쟁
복귀 - 연료 생산공장에 대한 전략적 폭격 - 롬멜과 해안 방어 - 노르망디 침략당하다 - 비행기 생산 부문을 인계하다 - 업계 관계자들을 앞에 둔 히틀러의 연설

25 실책, 비밀무기, 친위대
폭격을 위한 제트기 - 페네뮌데 - 전시 산업에 동원된 강제수용소 - 힘러의 로켓 연구 참여 - 경제로 손을 뻗은 친위대의 계획 - 노동자들을 훔치다 - 아우슈비츠

26 발키리 작전
암살 공모 - 괴벨스 사무실에 도착한 소식 - 모반의 중심에서 - 벤틀러슈트라세 - 프롬과의 만남 - 힘러의 괴벨스 방문 - 칼텐브루노의 방문 - 공모자 리스트 - 암살 사건의 영향 - 체포 - 사형 집행 사진

27 무너지는 서부 전선
권력을 회복한 괴벨스 - 권위를 잃은 히틀러 - 전방 시찰 - 944년 가을: 군사적 무기력 - 히틀러의 파괴 계획 - 논리의 허점을 찌르다 - 크롬 부족 - 생산 감소 - 비밀병기와 선전

28 파멸의 나락
조직의 와해 - 긴급 프로그램 - 아르덴 공격 - 북슐레지엔 - “전쟁에서 패배하다” - 메모 - 얄타에 대한 반응 - 히틀러 벙커를 위한 독가스

29 최후의 심판
전후에 대한 걱정 - 보복 - 새로운 회람 - 히틀러의 대답 - 산업계에 내린 히틀러의 사형선고

30 히틀러의 최후통첩
위협받는 루르 - 열광적인 시찰 - 사보타지를 일으키다 - 히틀러의 24시간 최후통첩 - 미공개 편지 - 히틀러가 다시 양보하다

31 12시 5분
라디오 연설 - 신들의 황혼 - 피날레 - 루스벨트의 죽음 - 살인광선 개발에 뛰어든 라이 - 에바 브라운 - 비행 준비 - 자살 계획 - 히틀러의 마지막 망상 - “반역적 연설” - 하인리치와 협력하다 - 베를린은 반격하지 않을 것이다

32 전멸
히틀러의 상태 - 두려움과 연민 - 마지막 생일 - 베르히테스가덴으로 향한 괴링 - 나의 비행 - 함부르크 라디오 벙커 -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방문하다 - 상황회의 - 마그다 괴벨스, 에바 브라운과 영원한 작별을 나누다 - 히틀러와의 마지막 대화 - 힘러와 그의 생각 - 되니츠 - 눈물 - 책임감

에필로그

33 영어의 몸
플렌스부르크 - 몬도르프 - 베르사유 - 크란스베르크 - 뉘른베르크

34 뉘른베르크
심문 - 공동 책임 - 대질 심문

35 판결
판결 - 구형 - 나의 운명 - 회의론

글을 마치며
옮긴이의 글: ‘기억’의 미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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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알베르트 슈페어,김기영
1905년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가 테세노의 조교로 일하던 무렵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접하고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개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대 연출로 히틀러의 눈에 띄어, 이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주요 도시 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총리 청사를 건설하는 등 ‘히틀러의 건축가’로 활약했다. 1942년 3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군수장관 임명되었으며, 제국의 2인자로 불릴 만큼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다.
종전 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괴링, 히믈러, 로젠베르크, 카이텔, 리벤트로프, 슈트라이허 등과 함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슈페어는 나치 지도부의 집단 책임을 주장하며 연합군 검사 측으로부터 ‘최고의 피고인’, ‘선량한 나치’로 불렸다. 빼어난 자기변호와 죄를 시인하는 태도로 20년형을 선고받아 나치 독일의 장관으로서는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했다.
메모광이었던 슈페어는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편지, 일기,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회고록을 작성, 1966년 출소와 동시에 Erinnerungen라는 제목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81년 영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05년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가 테세노의 조교로 일하던 무렵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접하고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개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대 연출로 히틀러의 눈에 띄어, 이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주요 도시 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총리 청사를 건설하는 등 ‘히틀러의 건축가’로 활약했다. 1942년 3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군수장관 임명되었으며, 제국의 2인자로 불릴 만큼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다.
종전 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괴링, 히믈러, 로젠베르크, 카이텔, 리벤트로프, 슈트라이허 등과 함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슈페어는 나치 지도부의 집단 책임을 주장하며 연합군 검사 측으로부터 ‘최고의 피고인’, ‘선량한 나치’로 불렸다. 빼어난 자기변호와 죄를 시인하는 태도로 20년형을 선고받아 나치 독일의 장관으로서는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했다.
메모광이었던 슈페어는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편지, 일기,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회고록을 작성, 1966년 출소와 동시에 Erinnerungen라는 제목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81년 영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