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사의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은 단연 신소설이다. 비록 1910년대 초반을 기하여 그 위세가 저물고 점차 사라지긴 했지만 그러한 장르의 등장이 이후 한국의 근대 문학사가 형성되어 가는 데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많은 작가들이 어린 시절 이인직의 [혈의누]와 같은 작품을 재밌게 읽었다고 회고하고 있느니만큼, 그들의 창작활동에 신소설의 영향은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든 흐르고 있다. 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신소설의 위상이란 여전히도 견고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간 신소설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많이 축적되었다. 한편으로는 그 관심이 다소 시들해진 것도 사실인데, 그러한 정황 속에는 신소설이라는 장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장르 자체의 불완전성, 혹은 서사적 미숙함에 대해 갖게 되는 낮은 흥미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권보드래는, “모방이고 B급임에도”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모방이고 B급이기에” 흥미로운 양식으로 신소설을 바라본다. 이념적으로 허술하며 일관성 없는 등장인물들, 때론 앞뒤가 맞지 않고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서사들 속에서, 그것들이 건네는 말들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새롭게 그려지는 의미를 찾으려 한다. 번역과 모방이 신소설의 존재를 규정짓는 핵심적인 특징이라면 그로부터 당대에 대한 이해는 시작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면면히 문제적이었던 민족주의와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기원에서부터 되물어가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 민족과 애국이라는 기존 연구의 관점을 선회하여 성과 계급, 공화와 혁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신소설의 독해를 시도한 이 책은, 그리하여 다시, 왜 신소설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도록 이끈다. 그렇게 우리는 신소설을 통해 근대와 민족주의를 재사유할 수 있는 시각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Contents
책머리에
제1부 소설, 국가의 무의식
가족과 국가의 새로운 상상력-여성 주인공의 상징성
1. 가족?민족?국가라는 말
2. 나라와 집-은유와 환유의 놀이
3. 동등권의 의미와 모성(母性) 교육론
4. 부부 관계의 재구성과 계약
5. 가부장(家父長), 혹은 민족주의와 은유의 힘
서리(胥吏)의 딸, 길 위에 서다-신소설에 있어 성(性)과 계급의 문제
1. 여성 소설로서의 신소설
2. 여성의 모험과 여성 신체의 현실성
3. 서리(胥吏)의 딸, 개체성의 감각
4. 여성 주인공이 이른 지점, 그리고 그 너머
5. 여성성의 정치적 함의와 신소설
전쟁, 국가의 기원-‘1894년’으로의 회귀
1. 기원의 시간, 1894~1905년
2.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사건을 겹쳐 쓰기
3. 러일전쟁과 당대성-여성과 남성의 비대칭?
4. 1910년 이후, 더욱 큰 낙차
보론:동아시아의 소설과 국가-[호토토기스[不如歸]]의 번역?번안 양상
1. 메이지의 베스트셀러, [불여귀]
2. 스기하라 에비스[杉原夷山]의 [불여귀]-평석(評釋)의 장치와 도덕적 해석
3. 린슈[林?]의 [불여귀]-전쟁의 압도적 무게
4. 선우일의 [두견성]-국가 부재의 의미
5. [불여귀], 동아시아의 트랜스내셔널
제2부 소설, 근대 지(知)의 미디어
새 것과 옛 것-이해조 소설에 있어 양가성(兩價性)의 수사학
1. 빈상설(?上雪), 귀밑머리에 쌓인 눈?
2. 근대의 충격과 직유의 상상력
3. 신(新)?구(舊) 공존의 양상
4. 수사(修辭)의 전도와 세계상
5. 새로운 안정성과 불안정성
진화론과 기독교-[금수회의록] [경세종]을 중심으로
1. 진화론,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천택물경(天擇物競)
2. 강권주의의 문제와 저항의 형식
3. 부강과 평화, 기독교의 이중적 호소력
4. [금수회의록] [경세종]에 나타난 기독교
5. ‘권선징악’의 새로운 의미
신소설의 근대와 전근대-[鬼의 聲]에 있어서의 시간과 징조
1. 미개(未開)와 반개(半開) 사이-‘가정 소설’의 문제
2. 근대적 시간과 설화적 시간
3. 낡은 세계의 새로운 수사학
4. 미혹(迷惑)의 표면과 이면
5. 모순적 구조로서의 신소설
제3부 소설, 서사의 유희
만국지리(萬國地理) 속의 인간-신소설의 첫 장면
1. 연대기에서 지리적(地理的) 표상으로
2. 세계 내 인간, 원근법의 구도
3. 자연과 인간, 변역(變易)과 참된 이치
4. 자연의 소품화, 1910년대 신소설의 첫머리
5. 신소설 외부의 ‘자연’
자살과 광기-여성 주인공 비교론
1. 한국 근대문학에서 여성-광인의 계보
2. 순결성의 위협과 죽음으로의 도약
3. 미쳐버린 여인들의 시간
4. 여성의 광기와 남성의 광기
5. 자립과 싱글라이프
신소설의 피카로(Picaro)-악(惡)과 잔혹 취미
1. 선과 악-단순성과 치밀성
2. 악의 생생한 빛깔-시각성과 개인주의
3. 선의 권도(權道)-악에의 대처법
4. 잔혹과 폭력의 세계 질서
5. 폭력과 간지(奸智)와 권선징악
제4부 소설, 국가 이후
망국(亡國)과 공화(共和)-1900년대 역사?전기물에서의 정체(政體) 상상
1. 입헌과 군민공치(君民共治)
2. 프랑스혁명과 시역(弑逆), 그리고 나폴레옹
3. 암군(暗君)과 혼왕(昏王)-역성(易姓)의 가능성
4. 전제(專制)와 외세(外勢), 그 경중(輕重)
5. 잃어버린 ‘공화’, 1900년대의 결말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유교재무장과 ‘이처(二妻)’ 모티프
1. 새로운 강박-일부일처제
2. 자유결혼-관계의 투명성과 합리성
3. 열혈(熱血)의 애국주의와 개인의 영역
4. 열정의 두 가지 길과 이처(二妻)
5. 필연성의 신화, 그 외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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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권보드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금, 여기’의 기원을 19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문학과 문화 속에서 찾는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쓴 책으로는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연애의 시대》,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 《1960년을 묻다》(공저), 《신소설, 정치와 언어》, 《3월 1일의 밤》 등이 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북한문학 속의 세계문학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금, 여기’의 기원을 19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문학과 문화 속에서 찾는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쓴 책으로는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연애의 시대》,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 《1960년을 묻다》(공저), 《신소설, 정치와 언어》, 《3월 1일의 밤》 등이 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북한문학 속의 세계문학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