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근 바오로 신부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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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85700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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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10/05
Pages/Weight/Size 152*225*35mm
ISBN 9791185700380
Categories 종교 > 천주교
Description
일제강점기 문서 선교에 큰 공로가 있는 한기근 신부의 라틴어 친필 서한이 오랜 기간의 수집, 판독, 주해(註解) 작업을 마치고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을 기념하는 첫 자료 총서로 『한기근 바오로 신부 서한집』(584면, 3만 원)을 간행하였다.
Contents
간행사 … 6
한기근 신부 연보 … 12
해 제 … 15
일러두기 … 22

제1부 한기근 신부 서한 한글 번역문 … 25

제2부 한기근 신부 서한 라틴어 판독문 … 186

부 록 한기근 신부의 여행 여정 일람표 … 313
1. 『경향잡지』에 연재된 한기근 신부의 「로마 여행일기」 … 318
2. 논문 : 「한기근 신부의 ‘로마 여행일기’」 | 윤선자 … 527

색인 … 570
Author
한기근
1868년 8월 4일(혹은 1867년 7월 12일) 경기도 양지에서 태어난 한기근 바오로 신부는 종현학당에서 공부하다가 1884년 2월 7일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토혈증으로 12월 10일 귀국하고 말았다. 건강 회복 후 여주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887년 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학업을 계속하였다. 1897년 12월 18일 약현 성당에서 뮈텔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1899~1900년에는 병인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 청원자를 겸임하였고, 1902년 2월에는 황해도 황주(黃州) 본당 초대 주임이 되었다. 본당 사목 중에도 번역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사성경』 간행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이때 한글 띄어쓰기와 보조 부호 사용 원칙인 「우리말 띄어쓰기의 원칙」을 작성하였는데, 출판물에 띄어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는 국문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1913년 5월 10일 경향잡지사 제3대 발행인 겸 성서 활판소를 담당하였고,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에 성직자 대표로 참석한 뒤 이탈리아·프랑스·팔레스티나 성지를 순례하면서 「로마 여행일기」를 『경향잡지』에 연재하였다. 1937년 경향잡지사 발행인을 그만두고 성서활판소 일만 전념하다가 1939년 10월 21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천식으로 선종하였다.
1868년 8월 4일(혹은 1867년 7월 12일) 경기도 양지에서 태어난 한기근 바오로 신부는 종현학당에서 공부하다가 1884년 2월 7일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토혈증으로 12월 10일 귀국하고 말았다. 건강 회복 후 여주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887년 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학업을 계속하였다. 1897년 12월 18일 약현 성당에서 뮈텔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1899~1900년에는 병인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 청원자를 겸임하였고, 1902년 2월에는 황해도 황주(黃州) 본당 초대 주임이 되었다. 본당 사목 중에도 번역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사성경』 간행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이때 한글 띄어쓰기와 보조 부호 사용 원칙인 「우리말 띄어쓰기의 원칙」을 작성하였는데, 출판물에 띄어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는 국문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1913년 5월 10일 경향잡지사 제3대 발행인 겸 성서 활판소를 담당하였고,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에 성직자 대표로 참석한 뒤 이탈리아·프랑스·팔레스티나 성지를 순례하면서 「로마 여행일기」를 『경향잡지』에 연재하였다. 1937년 경향잡지사 발행인을 그만두고 성서활판소 일만 전념하다가 1939년 10월 21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천식으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