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시절

파리가 스물다섯 헤밍웨이에게 던진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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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73570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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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5/02/28
Pages/Weight/Size 132*204*20mm
ISBN 9791173570896
Categories 에세이
Description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욱동, 문학평론가 전승민 강력 추천!

가난하고 미숙했던 스물다섯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마주친 것들

“나는 파리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을 모두 뼈저리게 경험했다.
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거주하며 겪었던 6년을 담고 있다. 1921년 헤밍웨이는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에게 “비용이 저렴하고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들”이 있는 파리를 추천받고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건너간다.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T.S 엘리엇 등 유명 작가들과 교류하고 난 이후 삶의 혼란스러움과 세상의 폭력성을 몸소 느끼고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을 시작한다. 파리 시절 가난한 동네의 월세도 빠듯했던 헤밍웨이는 식사를 거르면서도 미술관 가기를 빠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 거리를 배회했고 센 강을 따라 산책하기를 즐겼으며 책을 사지 못하더라도 서점에 들러 예술의 동향을 살폈다. 악독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경마에서는 돈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큰소리 떵떵 칠 때면 아내 해들리가 제발 그만하라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헤밍웨이에게 가장 영향의 줬던 파리의 장소는 당연코 카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 문인과 치열하게 예술론을 나누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에 헤밍웨이의 파리 생활을 읽어야 할 이유란 무엇일까.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욱동은 “이 책은 위대한 작가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헤밍웨이가 이룬 업적의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태어나기를 위대한 예술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배경이 필요한 법이고 헤밍웨이에게 파리는 문학 자양분이었다. 그러므로 헤밍웨이의 사소한 진면모까지 모두 알고 싶다면 그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파리의 생활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100년 전 파리로 돌아가 위대한 작가의 서툰 시절를 통해 흔들리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이다.
Contents
추천의 글 | 토끼 발과 카페오레
감수의 글 | 위대한 작가의 불완전한 시절
소개
서문

1부 길 위의 방황


생 미셸 광장의 좋은 카페
거트루드 스타인의 가르침
길 잃은 세대
가난한 소설가를 위한 서점
센강은 고독해

2부 파리를 헤매는 시간


봄날 아침
경주마에 거는 도박
배고픔에 대한 생각
작가들의 뒷담화
행운의 부적과 방해꾼

3부 펜 끝이 향하는 곳


위스키를 마시는 화가
에즈라 파운드의 후원 모임
잘 가시오, 스타인 선생
동명이인을 만나다
주머니에 시를 넣고 다니는 남자
악의 대리인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하여

4부 초조한 마음


미친 소설가 부부
크기의 문제
파리는 영원한 축제
Author
어니스트 헤밍웨이,정지현,김욱동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